김학민 교장선생님은 유명한 음식칼럼니스트로, <한겨레21>에 <김학민의 음식이야기>를 수년간 연재했으며, 최근에는 같은 주간지에 <김학민의 주류인생>이라는 술 칼럼을 연재한 바 있습니다. 음식 칼럼집으로 <맛에 끌리고 사람에 취하다>가 있고, 곧 술 칼럼집 <태초에 술이 있었다>가 나올 예정입니다.
제5강의 요점은 이렇게 정리됩니다. (수업 일정은 현지 사정에 따라 일부 조정될 수 있습니다)
* 스쿨버스 안에서 교장선생님의 <백범일지 이야기> 특강
* 조계종 제6교구 본사 마곡사 관람과 <사찰음식> 공양
* 1백여 년 전 김구 선생이 걸었던 산책길 걸어...울울창창 소나무밭에서 기 받기
* 백제 역사문화의 살아있는 현장 무령왕릉 관람
* 공산성에 올라 층층절벽 아래 곰나루 바라본다...사곡 밤막걸리도 한 잔!
11월 20일 아침 7시 30분 서울에서 출발합니다. (7시 20분까지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옆 공영주차장에서 유진여행사 경기76아 6704호에 탑승바랍니다. 경부고속도로 죽전, 신갈 정류장에서도 탑승할 수 있습니다. 아침 간편식으로 김밥과 식수가 준비돼 있습니다.)
버스는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천안-논산 고속도로로 바꿔 타고 정안 톨게이트를 나와 9시 30분, 마곡사에 닿습니다. 주차장에서 내려 10분 정도 걸으면 천년사찰 마곡사의 고즈넉한 가람들을 만납니다. 마곡사는 삼태기처럼 둘러싼 태화산 중심에, 그리고 그 가운데 줄기 군왕대 아래 최고의 명당자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국가문화재와 보물이 즐비합니다.
[마곡사(麻谷寺)] 조계종 제6교구 본사(本寺)이다.〈태화산마곡사사적입안 泰華山麻谷寺事蹟立案〉에 따르면 640년(신라 선덕여왕 9)에 당나라에서 돌아온 자장(慈藏)율사가 통도사, 월정사와 함께 창건한 절로 여러 차례 화재가 있었으나 고려 중기에 보조국사 지눌(知訥)에 의해 중건되었다고 한다. 절의 이름에 대해서는 자장이 절을 완공한 후 설법했을 때 사람들이 '삼'[麻]과 같이 빽빽하게 모여들었다고 해서 마곡사라 했다는 설과, 신라 무선(無禪)대사가 당나라 마곡보철(麻谷普澈)선사에게 배웠기 때문에 스승을 사모하는 마음에서 마곡이라 했다는 설이 있다. 대웅보전(보물 제801호), 대광보전(보물 제802호), 5층석탑(보물 제799호)이 남북으로 특이하게 일직선상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그 주변으로 영산전(보물 제800호) 등의 부속건물이 있다. 이밖에 감지은니묘법연화경 권1(보물 제269호), 감지금니묘법연화경 권6(보물 제270호), 석가모니불괘불탱(보물 제1260호), 동제은입사향로(지방유형문화재 제20호), 동종(지방유형문화재 제62호) 등이 있다. 마곡사는 또한 백범 김구 선생이 일본 헌병 중위를 죽이고 잠시 피신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마곡사 관람을 마치고, 새벽 일찍이 예불로 하루를 시작하는 스님들의 일정에 맞춰 바깥세상에 비해서는 좀 이른 11시에 점심공양을 합니다. 정통 발우 공양은 아니지만 백여 년 전 김구 선생께서도 드셨을 마곡사의 정갈한 사찰 음식이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합니다. 공양 후에는 김구 선생이 삭발했던 개울가를 지나 소나무숲 산책길을 한 시간 가량 걷고 무령왕릉으로 향합니다.
▲ 마곡사 백범당은 백범 김구 선생이 머물다 간 건물이다. |
[무령왕릉(武寧王陵)] 충남 공주시 금성동(송산리)에 위치한 백제 무령왕의 능. 1971년 송산리 5, 6호분의 배수구를 마련하는 작업 중에 우연히 발견되었다. 고분의 축 조연대와 피장자가 분명하며 도굴의 피해를 전혀 입지 않은 상태로 껴묻거리가 고스란히 발견되어 삼국시대 고분 연구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왕과 왕비를 합장했는데 왕이 동쪽, 왕비가 서쪽에 놓였고, 머리 방향은 입구 쪽인 남쪽을 향하고 있다. 왕과 왕 비 모두 옻칠 목관에 각기 안치되어 있었는데, 목관 표면은 꽃 모양의 금·은제 장식으로 꾸몄다. 널길에는 돌로 만든 석수(石獸) 1마리가 입구 쪽을 향해 놓여 있었으며, 그 앞에 는 왕과 왕비의 매지권(買地券)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장신구로서는 왕의 것으로 금제 관장식, 심엽형 귀걸이, 뒤꽂이, 은제 허리띠[銙帶], 금동 신발 등이 있으며, 그밖에 각종 금·은제 장식이나 구슬이 발견되었다. 왕비의 것으로는 역시 금제 관장식과 귀걸이, 목걸 이, 금·은제의 팔찌 외에도 많은 수의 장식이 발견되었다. 또한 철모, 손칼 등의 무기류, 거울, 용기, 숟갈, 다리미 등의 청동제품, 청자, 백자 등의 자기류, 두침(頭枕)·족좌(足座) 등의 목제품 등 다양한 유물들이 부장되어 있었다.
1시 30분, 무령왕릉으로 가는 도중 사곡양조장에 들려 맛있는 사곡 밤막걸리 한 상자를 버스에 싣습니다. 서울로 돌아올 때까지 사이사이에 한 잔 하려는 것이지요. 무령왕릉은 잠깐이면 지나쳐가며 볼 수 있지만, 그래서는 안 됩니다. 우리나라 문화재 발굴사상 가장 극적인 사건이 무령왕릉 발굴이니까요. 공주시 문화해설사의 도움을 받을 생각입니다.
[공산성(公山城)] 둘레 2,200m의 산성. 웅진성(熊津城), 쌍수산성(雙樹山城)으로 불리기 도 했다. 475년 백제 문주왕이 웅진(공주)으로 천도하여 538년(성왕 16) 사비(泗沘:부 여)로 옮길 때까지 64년 동안 백제의 정치·경제·문화 중심지인 공주를 보호하기 위해 축 조되었다. 축성 시기는 국력이 안정된 동성왕 때 이루어진 것으로 짐작되며, 여러 차례 의 개축을 거쳐서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다. 성의 구조는 석축 약 1,810m, 토축 약 390m이다. 진남루(鎭南樓:남문, 공북루(拱北樓:북문)와 암문, 치성(雉城), 고대(高臺), 장대, 수구문 등의 방어시설이 있으며, 동문과 서문 터가 남아 있다. 성내에는 영은사(靈 隱寺)·광복루(光復樓)·쌍수정(雙樹亭)·명국삼장비(明國三將碑)·쌍수산정주필사적비(雙樹山 亭駐驆事蹟碑)와 주초석, 창고터, 연못터 등이 남아 있고, 만하루지(挽河樓址), 임류각지 (臨流閣址), 장대지 등이 발굴조사를 통해 밝혀졌다. 동쪽과 서쪽에는 보조 산성이 있어 공산성을 보호하고 있다. 공산성은 백제 멸망 뒤 백제부흥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던 곳이 며, 1623년 이괄의 난 때 인조가 이곳으로 피난했던 일도 있다.
오후 3시. 공산성에 도착합니다. 성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한 시간이면 성곽을 한 바퀴 돌 수 있습니다. 모처럼 자유 시간을 드립니다.
오후 5시, 공주 일정을 마친 음식문화학교는 서울로 향합니다. 막히지 않는다면, 사곡 밤막걸리 맛도 봐가며...7시 전에는 서울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음식문화학교 11월 참가비는 6만원입니다(교통비, 시주금, 문화재관람료, 여행자보험료, 운영비 등 포함). 버스 좌석은 참가 접수순으로 지정해 드립니다. 참가 신청과 문의는 사이트 www.huschool.com / 전화 050-5609-5609 / 이메일 master@huschool.com 으로 해주세요.
김학민 교장선생님은 <음식문화학교를 열며> 이렇게 취지를 설명했습니다.
<인간은 요리하는 동물>
최초의 인간은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자연 상태 그대로 먹었습니다. 그러다가 불의 발견을 계기로,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는 슬기를 발휘하여 서서히, 또한 독특하게 식생활 체계를 세웠으니, 이것이 음식문화입니다. 이로써 인간은 '요리하는 동물'로 진화되어, 각기 살고 있는 곳의 기후와 풍토에 따라 제각각의 음식문화권을 형성하게 됩니다.
이러한 음식문화의 자연스런 분화와 발전이 있었으므로, 인류의 보편적 정서와 규범을 흐트러트리지 않는 한, 한 인간이 무엇을 어떻게 먹든 그것은 그의 자유입니다. 또 특정한 먹을거리를 특별하게 먹게 된 것도 그 공동체 고유의 살아온 환경과 문화, 역사의 소산이므로 자기만의 잣대를 들이밀어 왈가왈부할 일도 아닙니다.
흔히 "모두가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라고 말합니다. 인간의 원초적 과제들을 의·식·주로 나누어 그럴 듯하게 분화하였지만, 그건 어느 정도 문명화된 시기의 이야기이고, 사실은 식(食)의 문제, 곧 먹을거리 문제가 인간 실존의 근원입니다.
먹을거리 문제는 질서와 규범 속에서 평화롭게 조절돼 가는 것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매일 매일의 사회면 기사의 행간을 뜯어보면 그 이면에는 모두 먹는 문제가 개재되어 있고, 국가 사이의 전쟁, 민족 사이의 분쟁도 땅과 자원의 문제가 대부분을 차지하니, 그 끝을 파보면 결국 먹는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아는 만큼 맛있다>
우리 사회는 이제 먹을거리 문제의 극단에서는 벗어나 있습니다. 그러나 먹을거리의 질과 독점을 둘러싸고는 계속 갈등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또 거대 식품산업이나 외식사업 등에서 양산되는 각종 인스턴트 식품들이 우리 식탁에 도전해 오고 있고, 세계 각국의 먹을거리들도 그 나라의 문화요소들과 함께 물밀듯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먹을거리의 홍수 속에서 음식문화학교는 우리 전통 먹을거리를 낳게 한 사회문화적 배경, 그리고 특정 먹을거리와 그를 갈무리하는 맛깔스런 음식점, 그리고 그 주인과 공동체에 얽힌 이야기를 탐구하고자 합니다.
곧 '먹을거리 이야기'를 넘어 '이야기가 있는 먹을거리'를 찾는 여정이 음식문화학교가 가고자 하는 방향입니다. 문화유산 답사의 개척자 유홍준 교수는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습니다. 유 교수의 어법을 빌려 말한다면, 음식도 아는 만큼 맛있습니다.
<음식문화학교는...>
음식문화학교는 요리법을 가르치는 곳이 아닙니다. 음식문화학교는 문화 속의 음식, 음식 속의 문화를 탐구하고자 합니다. 따라서 음식문화학교는 음식의 현장을 찾아가 문화를 즐기거나, 문화의 현장을 찾아가 음식을 즐기는 기행의 형식으로 진행합니다. 곧 '금강산과 식후경의 조화'가 저희 음식문화학교의 교훈입니다.
앞으로 김치, 젓갈, 된장, 두부, 등심, 갈비, 불고기, 육회, 토종닭, 홍어, 비빔밥, 산나물, 막걸리 등 숱한 우리 전통 먹을거리의 명품, 명소를 찾는 기행이 쭉 이어집니다. 전문가 또는 교장의 음식문화 강의 후 맛있는 음식을 즐기게 되며, 재래시장 장보기, 산나물 뜯기, 쭈꾸미 잡기, 콩 털기 등의 체험행사도 함께 하며 유명 음식축제 여행으로 변화를 꾀하기도 하겠습니다.
음식문화학교는 월 1회, 셋째 토요일에 여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사정(명절, 연휴, 장날, 음식축제 등)에 따라 날짜를 옮길 수도 있으며, 당분간은 당일 코스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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