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원은 소박하다.
"평일에 태국 통역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요게 바로 소원이니까.
일요일에는 일당으로 태국어 통역을 쓰지만, 평일에는 없다.
요건 무진장 속상한 일이다.
왜?
화성에만 태국인이 5천명으로 이들은 어느 나라 노동자보다도 많다. 말하자면 주력부대다. 헌데 이들이 악덕 기업주에게 가장 많이 당한다.
왜?
사람들이 순진한데다가 따지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왜 못 따질까?
말을 할 줄 알아야지!
한국말도 못하고 영어도 못하고.
내 이렇게 말 못하는 인생을 본 적이 없다.
따질 방법이 없으니 그냥 당한다.
헌데 당해도 왜 당했는지를 모르니까 더 답답하지!
내가 이래서 속상한 거고, 요 속상한 걸 푸는 게 소원이 된 거다.
근데 소원 풀 일이 생겼다.
*백주년기념교회에서 태국 통역을 쓰라고 인건비를 지원해준 것이다. 고마웠다.
하지만 돈이 있어도 통역 구하는 게 어려웠다.
태국말 잘하는 한국인이 없고, 한국말 잘하는 태국인이 없는 현실에서, 태국 통역은 희소가치를 갖고 있다. 따라서 서울에서도 잘 팔리거늘 뭐 하러 시골인 발안까지 오려고 하겠는가?
채용공고를 내도 오려는 사람이 없었다.
태국에서 초중고를 졸업하고 현지에서 대학을 다니는 한국 여학생은 태국 정정이 시끄러워 한국으로 들어오겠다는 연락을 해왔다. 하지만 정국이 안정되자 입국 자체를 취소했다. 1차 실패!
외대 태국어과를 졸업한 한국 여성은 출근하겠다는 약속을 첫날부터 어겼다. 2차 실패!
서울 이문동에 사는 태국 여대생은 발안으로 이사 올 것처럼 말하다가 가까운 직장이 생겼다며 미안하다는 전화를 해왔다. 3차 실패!
더 안 좋은 일이 생겼다. 일요일 통역을 해주던 000이 일요일 통역마저 거부하고 관광 가이드로 가버린 것이다. 가이드는 수입도 좋고 화려해 보이는 모양이다. 모두 실패!
해결책이 없어 머리를 싸매고 있을 무렵, 뜻밖에도 통역을 하면 딱 좋을 만한 사람이 나를 찾아왔다.
유와디는 한국에 노동자로 왔다가, 한국 남자와 연애 결혼하여 정착한 특이한 경력을 가진 여성이다.
그녀와 가까워진 것은 내가 퇴직금을 받아준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실질적인 사람으로, 무슨 문제가 있지 않으면 절대로 오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 왔으니 무슨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목사님, 사실은 제 여동생의 남자친구가 퇴직금을 못 받았거든요. 좀 도와주세요."
나는 옳다 됐다 하고 말꼬리를 잡고 늘어졌다.
"물론 퇴직금은 받아주지. 하지만 유와디도 나 도와줘야 해."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았다.
"뭐를 도와줘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한국말도 할 줄 알고 태국말도 할 줄 아는 사람이 꼭 필요하거든."
그녀는 남편과 상의해야 한다며 시간을 좀 달라고 했다.
혹시 빼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한 번 더 간청했다.
"비록 월급은 적지만, 콘타이(태국사람) 도와주는 일이니까 되는 쪽으로 생각 좀 해줘요.."
*그 말이 통했을까?
다음날 전화가 왔다.
"목사님, 내가 할 게요."
통역을 구한 것이다. 그것도 최고의 통역을!
왜 최고냐?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그녀 자신이 노동자 출신이므로 누구보다 그들의 고충을 알고
둘째, 한국 남자와 연애결혼에 성공할 정도로 한국말을 잘하고
셋째, 태국말은 원래 자기 *나와바리니까.
태국 노동자 많이 오게 생겼다.
*백주년기념교회 : 기독교가 들어온지 100주년이 되던 해를 기념하여 기독교 각 교파가 연합하여 세운 교회. 양화진(서울 마포구 합정동) 외국인 선교사 묘역 안에 세워졌다. 사회봉사 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그 말이 통했을까? : 그녀는 현재 어느 회사의 숙련공으로 월급이 상당히 많다. 월급이 훨씬 적은 통역을 택한 것은 콘타이를 사랑하는 그녀의 마음이 움직였기 때문이다.
*나와바리 : 관할구역이라는 뜻의 일본말. 관할구역이라면 맛이 전혀 안 살아서 일본말을 썼다. 외래어를 무조건 안 쓰기보다는 적당히 쓰는 것이 좋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야 한국말이 풍부해지니까. 더구나 외국인 120만 시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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