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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윤수의 '오랑캐꽃']<243>

우리 속담에 이르기를,
아주머니 떡도 커야 사먹는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아주머니 떡이 작아도 사먹는 사람이 있다.
의리와 체면을 봐서다.
이게 한국인이다.

동남아시아 인은 좀 다르다.
아주머니 떡이 작으면 안 사먹는다.
의리와 체면?
그런 거 안 본다.

우리 센터는 체불, 폭행, 산재, 비자 등 외국인 노동자들의 당면 문제를 해결해주는데만도 바쁘다. 문화나 행사 같은 거 하지 않는다. 초기엔 한글도 안 가르쳤다. 하지만 상담하러 온 노동자들이 하도 가르쳐 달라고 해서 그냥 상담실 한 귀퉁이에서 자원봉사자가 가르쳤다. 시끄러운데서 뭘 배우겠냐만 그래도 학생이 늘었다.
학생이 점점 많아져서 철거 직전의 옛 면사무소 건물로 옮겼다. 하지만 일 년도 안 돼 건물이 철거되어 경로식당으로 또 옮겼다. 경로식당이 웬 공부방? 공부방 맞다. 노인들이 밥 먹은 상을 행주로 훔치고 그 상에서 그냥 가르친 거다.
한글학교가 번창할 때는 출석 학생이 40명까지도 갔다. 학생 대부분이 내 도움을 받은 노동자들이었다.
하지만 재작년부터 학생 수가 점점 줄기 시작했다.
30명에서 20명, 다시 15명으로.
왜 줄까?
가장 큰 이유는 요 몇 년 사이에 한글학교가 너무 많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제는 각 지방자치단체, 문화센터, 다문화 또는 이주민 짜가 붙은 각종 기관, 교회, 절, 심지어 공립도서관에서까지 한글을 가르친다. 이렇게 너무 많이, 누구나 가르치다보니 한글학교는 이미 유행을 지나서 내리막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마치 객장에 장바구니 부대가 나타나면 주식시장이 내리막인 거나 마찬가지다.

▲ ⓒ한윤수

작년에 결정적으로 시청에서 지은 큰 외국인센터의 한글학교가 생겼다. 학생이 더 줄었다. 급기야 지난겨울에는 7, 8명 선으로 내려앉았다.
당시 길거리에서 우연히 결석생을 만나
"왜 안 와?"
하고 묻자 그는
"반찬 냄새 나서요."
하며 웃었다.
맞다. 반찬 냄새 나는 거. 월 전기료 5만원만 주고 빌린 어둡고 눅눅한 경로식당이니 반찬 냄새 나지!
그에 비해 저쪽은 청정하고 쾌적한 신축 건물이니 얼마나 가고 싶었을까.

봄에는 서너 명 선으로 줄었다.
그리고 어제는 단 한 명만 왔다. 그것도 문 닫으려고 할 때 뒤늦게 달려온 지각생이었다.
"그 동안 왜 안 왔어?"
하고 묻자 그는
"선생님 나이 많잖아요."
하며 수줍게 웃었다.
맞다. 나이 많은 거. 우리 선생님들은 무료 봉사하는 60대 밖에 없으니까.
그에 비해 저쪽은 강사료 주고 고용한 젊고 이쁜 선생님들이니, 얼마나 가고 싶었을까!

다 이해했다.
수고하신 선생님들께는 미안하지만 문을 닫았다.
2년 4개월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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