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에 시작된 그의 '민중미술'의 실천은 이렇게 삼십년이란 세월로 점철(點綴)됐다.
화가는 일찍이 미술이란 인간의 존재와 따로 떨어져 별도로 세워진 관념이나 형식을 따르는 게 아니라 살아있는 현재의 존재 자체를 표현해야 한다는 당연한 믿음을 지녔다. 이런 믿음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존재와 세계를 그림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노력들을 통해서 예술과 삶의 간극(間隙)이 메워지며 그럼으로써만 화가가 현실에서 존재하는 이유를 비로소 답할 수 있다고 화가 스스로 생각한 소이연(所以然)이다.
이런 의미에서 원래 존재를 가리키는 말이 '도(道)'라고 쓰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기실 '존재'와 '실천'이란 구분되거나 구별되지 않는 것이다.
▲ 황재형 화가 |
▲ 황재형 화가 |
'도'란 존재가 '길'을 가는, 실천의 삶을 묵묵하게 살아가는 태도이자 양식(良識)이다. 따라서 황재형의 화업(畵業)은 이미 구도(求道)이고 한편으로는 무위(無爲)의 걸음이지만 요체는 그가 삶과 미술작업을 치열하게 동시에 행위(行爲)하고 실천한 화가라는 사실이다.
밥을 담는 도시락 통을 대형으로 만들어 밥 대신 석탄을 가득 담아 설치한 미술작품을 광주비엔날레(2002년)에서 전시한 바 있는 화가 황재형의 소재(所在)는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에게는 낯설었다. 그도 그럴만한 사정이, 화가는 화가 이력 40년 가까이 딱 여섯 번만의 개인전을 열었고 1991년 서울 가나화랑에서 있었던 전시 이후 16년 만에 있었던 2007년 그의 전시 때는 나는 한국에 있지 않아 그의 작품을 직접 볼 기회가 없었다.
닷새 전이었다. 80년대 중반부터 간간이 풍문으로만 듣던 황재형 화가의 그림을 나는 이번에 처음으로 직접 볼 수 있었다.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2월 5일-2월 28일) 열리고 있는 그의 초대전 <쥘 흙과 뉠 땅>에서였다.
대면한 그의 그림은 나에게 감동과 '울림'으로 다가왔다.
이미 평자들이 그의 미술을 보고 얘기한 '민중미술의 실현'이나 '리얼리즘 미술의 본령'등의 수사는 그의 미술 표현에서 드러난 현상이나 요소에 주목한 것이지만 정작 내가 본 그의 회화의 깊이는 화가가 지니고 있는 사상이나 입장의 의미가 내게는 훨씬 크고 넓게 다가왔다.
전시 제목인 <쥘 흙과 뉠 땅>은 '손에 쥘 흙은 있어도 고단한 몸을 뉠 수 있는 땅'이 없는 현실을 뜻한다. 이는 노동하고 수고하는 사람들에게는 지옥(地獄)에 다름 아니다. 26년 전인 1984년 그의 첫 번째 개인전시 때 제목이 <쥘 흙과 뉠 땅>이었는데 세월이 흘러 2010년 오늘도 그대로 같은 제목이었다.
따라서 화가 황재형의 현실인식의 소산인 그림은 오늘 2010년의 '세상의 위기'를 태백(太白)이라는 탄광촌을 배경으로 온몸으로 드러내어 말하고 있으면서 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오늘 정작 인간의 본질이 무엇이냐는 물음을 그림을 통해 제기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이 질문에 대한 배경이자 화가의 삶과 그림이 이루어진 광산 도시 태백을 잠깐 살펴보자. 원래 태백지역은 소수의 화전민이 살던 한적한 시골이었고 강의 물줄기가 발원한 강원(江原)이자 태백이라는 지명이 말하듯이 하늘에 맞닿은 신성하고 청정한 생태 본연의 지역이었다. 이런 태백지역에 석탄광이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1926년 일본식민지시대 때 석탄 광맥이 발견되면서 부터였다. 일본 군국주의는 1936년 삼척 개발 주식회사라는 석탄 개발회사를 만들고 1936년 강원도 철암에서 동해시 묵호까지 철암선을 개통하여 석탄 수탈(收奪)을 원활하게 하면서 태백에 사람들이 이주 정착하기 시작했다. 이후 1952년부터는 민영탄광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고 그 후 태백에는 검은 노다지를 찾으려는 개발 업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렇듯 태백지역은 자연적 인구증가나 도시의 기능적 분화를 통해 성장하거나 발전한 도시가 아니었다. 오랫동안 탄광 밀집지역으로만 취급되다가 국가의 필요에 의해서 81년에 삼척군 장성읍과 황지읍을 인위적으로 통합하여 태백시로 만들어진 도시이니 정상적인 도시 구조나 기능이 전혀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로 도시가 형성 되었다. 태백시는 단일 업종인 석탄 산업의 영향으로 에너지원의 전환 추세에 따른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구조적 취약성을 지닌 도시다. 따라서 태백시는 국제 원유가의 변동, 생산 원가로 인한 채탄성의 악화, 에너지 사용 유형의 변화로 정부는 비경제적인 탄광들을 폐광시키는 소위 석탄합리화정책이란 것을 추진하였고 그 결과는 태백시의 산업구조의 변화, 인구의 변동을 가져왔고 폐광으로 인한 인구 감소, 빈 사택 증가, 환경오염, 교육 및 의료시설 부족 등과 같은 각종 도시 문제를 한꺼번에 발생시켰다. 이렇듯 태백은 '근대적 공간의 한계'가 극명한 현장이자 철저하게 이익에만 매몰된 인간들이 모였다가 흩어진 그런 도시였다.
이런 도시에 화가는 스스로 찾아들어가 그곳에서 인간을 보고 현장을 체험하며 그곳을 그림으로 그리기 위해서 삼십년 가까이 긴 시간의 삶을 살았다.
그럼, 그곳 태백에서 화가는 무엇을 보았을까? 태백에서 화가는 무엇을 그림으로 그렸나? 인간을 그렸다. 그리고 인간의 환경과 무너지고 깨어져나가는 자연을 그렸다.
화가가 본 사실들은 기업의 이윤 극대화 앞에 인간의 존엄이 걸레처럼 취급당하는 현실을 보았고, 열악하고 비인간적인 노동환경에서 어떻게 노동자들이 죽음으로 내몰렸는지를 그는 살폈고, 오늘 태백의 위기가 세상 끝 막장의 위기일 뿐 아니라, 그 본질은 지난 100년간 인간이 살아온 삶의 방식으로의 정치 경제학이 일제히 무너지는 세상의 위기임을 화가의 살아있는 신경 촉수(觸手)는 예민하게 감지한 것이다.
수 만 년 수 천 년 자연의 생태가 불과 100년도 안되어 인간의 탐욕으로 약탈되었고 사람과 자연이 어떻게 조화롭게 공생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이익의 기계적인 효율성을 어떻게 극대화할 것인가에만 집중적으로 골몰하면서 경제적 과정을 조직하는 기본원리에서는 사람이나 자연은 부수적인 투입요소로 그저 자원으로만 취급되었다. 이는 인간이 '존재의 차원'이나 '의미의 차원'이 아닌, 상대적으로 '자원의 차원'으로만 추락되면서 인권이나 생명은 너무나 하찮게 취급당했다. 인간의 노동은 그저 필요한 시기에 투입되고 철수되는 식의 자원으로만 이해된 것이니 목적과 수단이 근본에서부터 뒤집혀진 극명한 현실이다.
여기에 화가 황재형은 그림을 통해서 우리들 인간의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고 그림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상처를 드러내어 보여주고자 했다. 존재로서의 인간, 영혼을 지닌 한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해 그는 그림으로 얘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잔혹한 현실에서 인간의 본질에 대한 질문은 결국 자본의 광포함 앞에서 사람이 먼저 나서서 스스로 짐승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 정치 경제적 현실에 대해서 그의 마음과 몸은 끊임없이 아파하고 괴로워하며 분노했다. 이것이 화가로 그의 정체이고 그의 그림이 보여주고 있는 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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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바로 이것이다. 현실을 그리되 현실의 사실을 뛰어넘는 그림의 진실을 포착하는 화가의 능력이란 그림을 보는 사람들에게 온전하게 큰 '울림'을 준다. 이때 붓의 표현이나 그림의 형식은 차라리 부차적인 것일 뿐 오직 정직한 자기 내면에의 처절한 길을 간구(懇求)하여 진실을 드러내고자 하는 화가의 태도에서 나는 매우 엄격하고 격렬한, 그의 정신의 준열(峻烈)함을 본다.
화가의 이런 태백 체재 삼십년 가까운 시간의 점철이란 화가 황재형의 삶에서 차지하는 그의 사상과 미술표현이 세상을 드러내는 날줄과 씨줄로 촘촘하고 질긴 직조(織造)의 사실적인 회화(繪畵)로 구현되어 나타났다.
따라서 황재형 회화의 사상(思想)은 그의 회화와 그의 삶이 그의 존재와 그의 그림의 언어에서 보이는 것처럼, 오늘 날 경제의 위기도 사실은 인간 세상의 위기를 말하는 것이며 이는 단지 금융, 경제, 사회, 환경의 위기일 뿐 아니라 인류 생태의 위기이며 본질적으로는 자본의 시장이 인간까지 마구 삼켜버린 자본의 파시즘적 현상에 대항하여 인간의 위기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위기를 드러내어 말하고 있는 황재형의 그림은 현실인식과 직관과 표현에서 그의 회화의 통찰(洞察)은 의외로 따뜻할 뿐만 아니라 구원과 희망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는 사람들이 슬픔이나 절망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해내거나 잘 이해할 수도 없고, 또 받아들일 수도 없는 빈곤의 현실에서 스러져나가는 사람들, 그들의 한숨만을 그림으로 그리고 있지는 않았다. 설사 지옥을 그리고 있다고 하여도 지옥에서 살아 숨 쉬는 마지막 인간들에 대한 믿음만큼은 그의 그림에서는 끝내 떨쳐내지 않고 있었다.
이는 해탈(解脫)일까? 아니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와 무위의 자기 존재를 반듯하게 자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태백의 탄광촌, 생선비늘처럼 반짝거리는 석탄의 검은 빛은 태백의 산맥에 드리운 겨울 빛에 흰 빛으로 반사되어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그 검은 땅에서 화가는 흰 빛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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