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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경 체'의 화가 이진경과 '쌈지농부'의 화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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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경 체'의 화가 이진경과 '쌈지농부'의 화가들

[김정헌의 '예술가가 사는 마을']<8> 홍천 내촌면

우리는 점심 후에 이목수와 헤어져 그의 목공소 바로 뒤에 있는 '이진경체'의 화가 이진경의 화실로 갔다. 그녀와는 답사 떠나기 전날 전화도 했지만 이목수의 집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 동안에 그녀가 왔기에 점심 먹은 후 곧장 집으로 가마 하고 약조를 했었다.

그녀의 화실 앞 비탈길에 차를 겨우 세우고 내리니 그녀가 집 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영국에서 막 돌아 온 참이다. 1년 반 동안을 영국에서 지내고 런던에서 전시를 마치자마자 귀국해 더 정신이 없어 보인다. 원래는 리버풀에 레지던시로 갔다가 3개월 만에 집어 치우고 런던으로 나갔다고 한다. 런던에서 돌아와 짐도 다 풀지 못 한 채 우리가 들이 닥친 셈이다.

▲ 이진경 작가의 작업실 겸 집으로 초대를 받았다. 이 작가는 영국에서 귀구한지 며칠 안 되어 정신없는 와중에도 일행을 환대해주고 이런 저런 이양기를 들려주었다. 왼쪽부터 장윤주, 박명학, 이진경
나는 먼저 우리들 소개와 우리들 답사에 대해 설명했다. 풀지도 못한 짐 사이로 우리들 자리 만들랴 차 끓이라 더 정신이 없어한다. 오랜만에 집에 와서 물건 있던 자리도 다 잊어 먹었다고 히죽 히죽 웃는다.

진한 커피가 나오면서야 자기 글씨체 모양 느리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먼저 나나 박 전 처장이 위원회에 있었다고 하니까 위원회에 지원신청서 쓰는 법을 알려달라고 계속 조른다. 작년에 영국에서 있었던 전시를 지원신청 했는데 떨어졌다고 한다. 우리 일행 중 독립큐레이터인 채은영이 앞으로 지원신청서를 쓸 때 도와주겠다고 약속해서야 지원신청서 '타령'이 끝이 났다.

집 안에는 그녀가 쓴 '이진경체'가 곳곳에 눈에 띄었다. 내가 원주의 장일순 선생이 쓴 글에서 글씨 중 가장 아름다운 글씨로 군고구마 장수가 써 붙여 놓은 '군고구마'라고 한 것을 읽었다고 하니 그녀도 그 선생님의 글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그녀의 글씨체는 이 동네에서도 한 몫을 하는 모양이다.

▲ 이작가가 자신의 전시 도록을 주어 몇 권 얻어왔다. 그림도 재미있지만, 그녀의 독특한 글씨는 그 자체로 작품의 이미지가 되고 메시지가 된다.
면사무소 동네에 있는 철물점 간판과 옆집의 토종꿀 병에 붙인 라벨도 그녀의 글씨로 그녀가 디자인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대가로 토종꿀을 서너 병 얻었다면서 우리들에게도 맛을 보여 주고 한 병 가져가란다. '이진경체'는 장일순 선생한테 영감을 받아서 시작했지만 이 글씨체가 널리 알려진 건 쌈지 덕분이다. 웬만한 쌈지 상품들과 '쌈지길'의 간판들은 거의 이 글씨체로 쓰였다. 인사동을 거닌 사람들에겐 꽤 친숙한 글씨체가 되었다.

차를 마시면서 이 작가는 우리의 정치지도자들을 익명으로 싸잡아 비판한다. 그녀는 윗분들이 작고 느린 가치에 대해 너무 무지하거나 무시한다며 '부자 되세요', '경제대통령' 이라는 말부터 끔찍하단다. 정부가 국민들에게 싸구려 가치를 선전 선동하여 아주 천박한 사회로 만들고 있다고 개탄한다.

▲ 이웃 주민의 요청으로 이작가가 라벨을 만들어주고 얻었다는 토종꿀은, 너무 달지 않고 씹히는 질감도 좋아 모두가 감탄하며 숟가락으로 떠먹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꽃을 피우던 일행 모두가 말 그대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차를 마신 후 우리들은 폐교된 학교를 사들여 작가 레지던시로 쓴다는 '쌈지농부'에 갔다. '쌈지농부'는 같은 내촌면 와야리에 있었다. 기와집이 많은 동네라 하여 와야리로 이름 붙여졌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동네가 꽤 넉넉해 보였다.(한때는 어떤 스님이 이 기와집 많은 부자동네에서 시주를 바랐는데 시주가 적게 나와 실망하여 '망전'이라 불러 지금도 '망전 버스정류장'식으로 '망전'이라는 이름을 아직도 쓴다)

으레 그렇듯이 이 폐교에도 '독서하는 소녀상'이 교정 한 가운데 서 있고 금년 초에 폐교가 되어 비교적 건물들이 깨끗해 보인다.

▲ 올해 초에 폐교가 되었다는 학교는 입구에 쌈지 농부공간이라는 자그마한 문패만 걸려있고 외관상 크게 바뀐 것은 없어서 아직도 아이들이 뛰어놀 것 같다. 실제로 이 학교에 다니던 아이들이 자주 놀러와서 입주해있는 작가들을 따른다고 한다.

우리는 마중 나온 네 작가들-한윤정, 박승예, 이효진, 백현주-과 인사를 나누고 사무실로 쓰는 교실로 안내 되었다. 이효진, 한윤정 작가는 2009년 7월부터 1기 작가로 계속 있고 10월에 박승예, 백현주 작가가 입주했다고 한다.
우리들도 우리들 소개와 마을 탐방의 취지를 설명했다.

▲ 한 교실당 한 명의 작가가 작업실로 사용한다. 도시에서 하던 작업을 그대로 하는 작가도 있고, 이곳에 와서 작업이 바뀐 작가도 있다고 한다. 각자가 쌈지 농부 레지던시에 기대했던 바는 다르겠지만, 작가들은 다 이 곳, 이 마을사람들이 좋다고 입을 모은다.

같이 온 이진경 작가는 영국에 있을 때 이 레지던시 얘기를 들어 아직도 '쌈지농부'의 의도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고 한다.

▲ 강당 겸 식당에서 난로를 중심으로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쌈지농부레지던시에는 총 4명의 젊은 여성 작가들이 입주해있었다. 예상과 달리 직접 농사를 짓지는 않는다고 한다. 왼쪽부터 한윤정, 박승예, 이진경, 김영혜, 이효진, 백현주, 박명학

옆에 놓여 있던 '쌈지농부' 전단과 이 네 작가들의 말을 종합해 보건대 우리 <예마네>와 '쌈지농부'의 취지가 거의 비슷한 것 같다. 그 전단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쌈지농부, 농사가 예술이다 - 쌈지농부는 마을이 지닌 아름다움에 주목하고, 마을 사람들과 소통하며 독창적인 예술을 탄생시키는 쌈지농부 아트프로젝트 레지던시를 폐교가 된 와야리 와야분교에서 시작합니다."


단지 우리<예마네>는 마을에 더 중점을 두고 '쌈지농부'는 아트에 방점을 찍었다고나 할까.


네 젊은 여성작가들은 이미 작업을 진행시키고 있었다. 물론 개인 작업이 위주지만 가능하면 마을과 마을주민들과의 교류를 염두에 두고 작업을 하는 것 같았다.


분교 출신 어린이들과 같이 한 마을 버스정류장에 마을지도그리기, 동네 어린이들의 목소리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든 음악 작업, 마을에서의 하루를 담은 드로잉 달력, 마을 어른들의 증명사진 찍어주기 등.


그들은 주로 이 분교 출신 어린이들과 공동 작업장을 차린 듯했다. 어린이가 있는 동네 분들은 작가들을 선생님으로 깍듯이 모신단다. 동네 주민들은 특히 폐교가 되어 어둠에 묻혀있던 학교가 불을 밝히고(건물을 비추는 조명을 얼마 전 '쌈지'에서 설치해 놓았다) 그 안에 젊은 미녀 작가들이 자기들 아이들과 놀아주니 얼마나 좋겠는가?

▲ 학교 뒷집에 사는 이웃 주민의 집을 방문했다. 작가들은 마을주민들이 자신들을 자식처럼 여기고 챙겨주어 고맙다고 하고, 주민들은 오래된 학교가 문을 닫지 않고 밤에도 예쁘게 불을 밝혀주니 고맙고 작가 선생님들이 너무 좋다고 입을 모은다. 개인작업을 하러 온 작가들이 이제는 마을에서 삶을 나누고 있다.
얼마 전 옆집에서는 증명사진 찍어 줬다고 토종닭과 장뇌삼 즙까지 해서 이 네 작가들에게 보신을 시켰다고 한다. 마을 축제 때도 '쌈지농부' 부스를 만들고 동네 분들 사진을 찍어드렸다고 한다. 앞으로는 동네 이주 여성들과 관계된 프로그램도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런 식으로 동네 주민들과 이 네 작가들은 점점 친해지고 있었다. 동네 주민들과의 친교는 같이 참여해서 같이 나누는 것 이상이 없다.
그런데 이 레지던시가 3개월로 한정 돼있어 네 작가가 이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었다. 보아하니 싱글들인 모양인데 사정이 다 길게 갈 수는 없어도 그래도 사시사철을 한 바퀴 돌아야 작가들이 무언가를 알고,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이 문제는 '쌈지농부'를 만든 쌈지의 천호균사장과 진지하게 의논해 볼 것을 권했다.

▲ 평창으로 가는 길이 너무 늦어져서 아쉽지만 서둘러 길을 떠나야 했다. 그들이 각자 이 마을, 이 자연에서 얻은 그 무엇으로 작업을 풍성하게 하길 바라며 떠나기 전에 학교 앞에서 작가들과 기념사진을 남겼다.

우리는 작가들의 개인 작업실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다 개성 있는 작가들이다. 우리가 답사 떠나기 전 주민들과의 만남을 주선해 달라고 해서 기다리고 있는 학교의 옆집(이 집이 바로 작가들에게 토종닭과 장뇌삼으로 보신을 시킨 집이다)과 앞집에 가서 저녁까지 평창의 '감자꽃 스투디오'까지 가야만 하는 다음 일정 때문에 기다리고 있던 주인장들께 잠시 인사만 하고 헤어졌다. 일정 때문에 주민들과 많은 얘기를 나누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학교 앞에서 작가들과 다 같이 기념사진을 찍고 '쌈지농부'들과 헤어졌다. 이 젊은 예술가들이 마을에서 자연이 베푸는 예술적 영감을 얻기를 바라면서.

(예술과마을네트워크 까페 http://cafe.naver.com/yem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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