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풍호의 경치가 끝나고 산길로 접어들어 굽이굽이 좁은 산길을 넘어서 마중 나온 이은홍 작가를 따라가니 그야말로 아담한 산골마을이 나타난다.
마당에 들어서니 부인인 신혜원 작가가 산골 아낙네 차림으로 우릴 맞는다. 우선 신작가를 따라 그녀가 조성해 놓은 텃밭을 구경한다. 벽돌을 깔아 계단식으로 텃밭을 조성했는데 쿠바의 아바나식 도시농업을 본 뜬 것이라고 한다. '하이힐을 신고도 농사를 지을 수 있다'며 신작가가 말하자 모두들 한바탕 웃음판이 벌어졌다.
작업장을 겸한 집 안 거실로 들어갔다. 가운데 신작가의 작업대가 놓여 있고 이은홍은 옆 쪽 구석이다. 신작가의 작업대 한 가운데는 재봉틀이 놓여 있다. 그녀는 재봉 일을 할 줄 아냐는 물음에 '내가 일급 미싱사 자격증까지 있는 걸요'라며 집안 여기저기를 가리키며 직접 만든 옷이며 요 따위를 가리킨다. 아마도 옛날 젊었을 때 어느 봉제공장에 위장취업을 했던 모양이다. 그녀는 동네 아줌마들과 이주민 여성들을 모아 재봉교실을 열 계획이라고 귀띔한다.
육칠 년 전 이 마을에 처음 들어와 부부는 동네에 지천으로 깔린 꽃을 갖다 심었다고 한다. 동네 할머니, 아줌마들이 혀를 끌끌 찾다고 한다. '돈도 안 되는 일을 뭐 하루 하노' 그래도 좋아서 계속 심고 가꾸었다. 봄이 되어 집 마당에 꽃이 활짝 피어나니 아름다웠다. 동네 할머니 한 분이 '나도 어릴 적에 꽃을 참 좋아했는데, 산에 그렇게 꽃들이 많은데도 몰랐네, 집에 피어있으니 예쁘네' 하며 꽃을 얻어 갔다. 그 뒤 동네 분들이 한 분 두 분씩 꽃을 얻어 집 마당에 심어 가꾸신단다. "이제는 마을 분들께 꽃을 나눠드리고 있어요." 신혜원이 유쾌하다는 듯 웃는다. 이 두 작가는 '꽃나눔'으로 동네 주민들과 만났다.
꽃으로 사람들과 사귄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인심과 사랑을 제일 빨리 얻는 방법이다. 이 두 작가는 마을에 들어가 이렇게 꽃으로 마을의 인심과 사랑을 얻게 된 것이 아닐까?
그들은 우리를 면소재지에 있는 다문화센터로 안내했다. 이 다문화센터는 이 지역에 점 점 늘어나고 있는 이주여성들의 문화공간이다. 들어서는 건물 벽에는 이주여성들의 솜씨로 자기 고향의 꽃과 나무와 전통의상을 입은 고향사람들이 서툰 솜씨지만 정성들여 그려져 있어 마치 우리가 남쪽 어느 나라에 온 느낌이 들었다.
이 센터는 전직 역사 선생님이었던 한석주 소장이 자기 사비를 털어 만들었다고 한다. '누리어울림센터'라는 이 다문화공간은 인근에 있는 대안학교인 간디 학교를 운영하는 (사)간디공동체의 산하 '간디교육연구소'와 협동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주여성과 그들의 2세, 농촌다문화가정을 위한 공동육아와 급식, 숙제지도, 책읽어주기 등 다양한 교육, 문화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다. 조만간 이 센터 옆집을 사들여 이주여성들의 솜씨로 만들어내는 빵집을 운영할 계획이란다. 한소장은 이를 통해 이주여성들의 일자리와 센터 운영에 조금이라도 보탬을 얻고자한다고 했다. 여러 가지 이주 여성들에 대한 한소장의 설명을 듣고 우리들 일행도 후원 한 구좌씩을 등록했다.
함께 점심을 먹고 마을 가게에서 겨울용 털신을 샀다. 작가부부 2켤레는 사서 선물로 주고 예쁘다고 우리 연구소용으로 두 켤레를 더 샀다.
그 후에 작가 아들이 졸업학년으로 있는 간디학교로 견학을 갔다. 이 두 작가는 아들도 학교를 다니지만 학생들에게 만화와 일러스트를 가르친다고 했다. 옛날 폐교를 빌려 내부 공간을 여러 교실로 잘도 꾸며 놨다. 교실에 있던 학생들이 볼 때 마다 인사를 잘한다. 모두들 자신감에 차 있는 얼굴 들이다. 작가의 아들은 학교에서 밴드 활동을 하고 있었다. 운동장 저편에 놓여 있는 콘테이너 박스가 그들의 연습실이라고 했다. 문을 두드리자 훤하고 밝게 생긴 학생이 문을 연다. 기타를 치며 연습 중에 있었다. 그들에게 즉흥곡을 한곡 부탁하자 짧지만 열심히 연주를 해 주었다. 그들의 밴드 이름이 '파파물'이라고 한다. '파라다이스에서 파닥이는 물고기'라는 조금은 장난스러운 명칭이다.
이은홍 신혜원 작가 부부는 마을에서는 꽃 나눔을 통하여 또 지역에서는 교육공동체인 간디학교와 결합하며 열심히 살고 있었다. 우리는 그들이 마을과 함께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잘 살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은 아직도 젊은 편이고 예술적 상상력으로 무장을 하고 있으니까.
우리는 그들과, 제천 신원리 마을에 작별을 고하고 급히 봉화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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