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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도와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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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도와줘요?

[한윤수의 '오랑캐꽃']<131>

구한말 서울 장안에 *호열자가 창궐할 때 얘기다. 집집마다 시체와 환자들이 즐비했다. 하지만 관리와 의원들은 자신한테 옮을까봐 무서워 대부분 도망간 상태. 신음소리와 썩는 냄새만이 진동할 그 무렵, 외국인 선교사 9명이 팔을 걷고 나서 시체를 치우고 환자들을 간호하기 시작했다.
한국인들은 의심했다.
"저것들이 어린애 눈깔을 빼내서 사진기를 만든다는데, 사진기 많이 만들려고 저러나?"
심지어 간호해주는 선교사에게 이렇게 묻는 사람도 있었다.
"왜 도와줘요?"
선교사들은 탄식했다.
"사람이 순수하게 남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을 왜 이들은 모를까?"

지금 이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몽골 노동자 바스카는 일을 잘못해서 사장님의 부아를 돋구었다. 사장님은 화가 나서 말했다.
"너 당장 나가!"
몽골인들은 단순해서 나가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알아듣는다. 바스카는 나가도 되는 줄 알고 회사를 나왔다. 그러나 사장님은
"이놈이 나가란다고 진짜 나가?"
하며 고용지원센터에 이탈 신고를 해버렸다.
졸지에 불법체류자가 된 바스카는 A(가명)시의 외국인근로자복지센터를 찾아가서 다시 합법체류자가 되게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담당자는 난색을 표했다.
"회사에서 이탈신고를 했으면 끝이에요. 방법이 없어요."
그는 좌절했다. 하지만 옆으로 다가온 몽골인 하나가 그런 문제는 S시의 노동청이 잘 해결한다며 그리 가보라고 귀띔해주었다.
그는 다시 S노동청을 찾아갔다.
바스카를 담당한 K감독관은 체불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해 주었다. 하지만 인정 많은 K감독관도 불법체류 문제만은 속수무책이었다. 어떻게든 합법으로 회복시켜주고 싶은데! K감독관이 외국인의 체류 문제에 특별히 관심을 갖는 것은 선친이 미국에서 불법체류자로 일하다가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돌아가셔서 한국으로 운구되어 오셨을 때의 처연한 심정은 필설로 어찌 표현하리오.

K감독관이 바스카의 체류 문제를 해결해 볼 도리가 없어서 고민하던 그 무렵, 가던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우리 센터의 N간사가 다른 사건 때문에 S노동청에 들렀다. K감독관은 평소 알고 지내던 N간사에게 부탁했다.
"혹시 이 근로자가 다시 합법으로 회복되는 길이 없을까요?"
"글쎄요. 우리 목사님은 알 것도 같은데. 발안에 돌아가면 한번 상의해보죠." 이래서 바스카의 체류 문제는 A시의 복지센터에서 S시의 노동청으로, 다시 S시의 노동청에서 촌구석인 발안으로 넘어와서 나에게 숙제로 떨어진 것이다.

나는 바스카에게 전화를 걸었다.
"바스카, 어디 있어요?"
"A시에 있어요."
"발안에 올 수 있어요?"
"왜요?"
"도와주려고."
이때 그 노동자로부터 기막힌 얘기를 들은 것이다. 그는 의심이 가득한 말투로 물었다.
"왜 도와줘요?"
구한말에 선교사들이 들은 말과 똑같지 않은가. 기가 막혔지만 퍼뜩 생각나는 게 있어 한 마디 했다.
"돈 안 받아."
그제서야 그의 목소리가 순해졌다.
"정말 안 받아요?"
나는 왜 그가 날 의심했는지를 알아차렸다. 그는 나를 브로커로 안 것이다. 도와주려는 사람을 브로커로 아는 것. 이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왜 이 지경이 되었을까? 한번 추론해보자.
도움이 필요한 노동자가 외국인을 무료로 돕는 기관에 간다. 그러나 기관은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부족할 뿐더러 의지도 약하며, 더더구나 친절하지도 않다. 외국인은 좌절한다. 그가 좌절해 있을 때 *브로커가 접근한다. 브로커는 바로 이런 틈새를 노리는 거니까. 브로커는 친절하다. 하지만 상당한 돈을 요구한다. 외국인은 경계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누가 도와준다고 하면 이런 말이 자연스레 나오는 것이다.
"왜 도와줘요?"

환장할 일이다.

*호열자 : 콜레라

*브로커 : 바스카가 왔는데 보니 혼자 온 게 아니라 한국말 잘하는 몽골 친구 하나를 데려왔다. 나는 그 친구가 그냥 친구가 아니라 브로커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K감독관도 똑같은 말을 했다. "저한테 올 때도 둘이 같이 왔어요.. 브로커 같아요."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뙤놈이 받는다더니, 일은 우리 센터에서 해주고 돈은 브로커가 받게 생겼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브로커에게 아무 공로가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바스카를 A복지센터에서 S노동청으로, 또 S노동청에서 발안 센터로 데리고 온 공이 있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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