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큐멘터리의 시작과 끝을 지배하는 것은 기획"이라고 강조하는 최우철 PD ⓒ김종석 |
일상과 경험이 다큐멘터리 소재의 원천
<MBC> 교양제작국의 산 증인이나 다름없는 최우철 시사교양PD는 그 많은 '작품'의 아이디어를 어디서 얻었을까? 이런 호기심에 대한 그의 답변은 의외로 평범했다. 자신의 일상과 경험에서 아이디어를 얻는다는 것이었다. <사투리 기행> <한국인의 얼굴> <베트남 전쟁> 등 그의 다큐멘터리 소재가 다양하면서도 친근한 것은 바로 그런 소재의 원천에 비롯되는 듯했다.
"제가 국민학교를 다섯 군데 다녔어요. 이곳 저곳 할 줄 아는 사투리도 많았죠. 서울에 전학 와서는 사투리로 놀림 받는 게 싫어서 담임선생님한테 약속을 받아냈어요. '1학기 지나기 전까지는 저한테 책 읽는 것 시키지 말아주세요' 근데 또 시키더라고요. 제가 읽기 시작하니까 애들은 웃기 시작하고…, 선생님이 원망스럽더군요."
어린 시절 사투리에 대한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 <사투리 기행>이라는 다큐멘터리를 기획하게 됐단다. <한국인의 얼굴>은 얼굴과 관상에 대한 평소 관심이, <베트남 전쟁>은 베트남에 파병되는 군인들에 대한 어린 시절 기억이 계기가 됐다. 그가 기획하는 다큐멘터리에는 이처럼 그의 관심과 체험이 그대로 드러난다.
처음부터 그가 다큐멘터리 제작에 뜻을 뒀던 것은 아니었다. 드라마가 좋아 드라마PD를 꿈꿨던 그는 입사면접 즈음에 MBC에 교양제작국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다큐멘터리PD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고 한다.
"MBC에는 처음에 정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조차 없었어요. 많은 시행착오 끝에 나온 게 <MBC 스페셜>이었죠. 교양국의 숙원이 이뤄진 겁니다."
▲ 다큐멘터리에 얽힌 화제를 털어놓으며 밝은 표정을 짓는 최우철 PD. ⓒ김종석 |
'중구난방' 회의에서 발전한 아이디어, <어미 새의 사랑>
최우철 PD는 다큐멘터리의 시작과 끝을 지배하는 것은 '기획'이라고 말한다. 그는 프로그램의 첫 단계인 기획이 두터우면 두터울수록 많은 것을 커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기획은 집단적 산물이라고 강조했다. 자신의 경험과 관심사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자칫 자기 만족적 프로그램이 되지 않으려면 여러 사람에게 검증과 보완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큐멘터리 팀 전체회의를 하다 보면, 이런 저런 얘기가 중구난방으로 나오는데 결국 혼자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아이템이 발전해요. 자기 혼자 기획을 다듬다 보면 안 되는 것도 고집하게 되거든요. <어미 새의 사랑>이 그런 과정에서 나온 것입니다."
KBS 2TV <인간극장>은 우리 주변 사람이 사는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낸 휴먼 다큐멘터리로 이름 높지만, '휴먼 다큐멘터리는 절박하거나 가슴 아픈 사람의 사연을 다룬다'는 일종의 '고정관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MBC <휴먼 다큐멘터리 사랑>과 같은 것도 이런 '고정관념'에 충실해서 호평 받은 다큐멘터리 중 하나다. 그는 다큐멘터리가 지극히 일상적인 것만 보여준다면 시청자에게 문제의식이나 화두를 던질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저는 상황이 약하면 사람을 다루지 말라고 해요. 시청자가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저런 상황에서 나라면 어땠을까' 라고 생각하고 자기를 뒤돌아 보게 하는 순간을 많이 만들어 주는 것이 다큐멘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방송 보는 이의 상상력을 기획해야 합니다"
최우철 PD는 다큐멘터리가 그 역할을 잘 수행하려면 기획단계에서 방송 수요자의 '상상력'을 동원할 수 있도록 기획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추구하는 다큐멘터리의 진화방향은 '상상력 기획'이다. 기존의 설명적이고 계몽적인 지식 나열식 다큐멘터리 기획에 반하는 것이 바로 '상상력 기획' 이다. 지금까지 많은 다큐멘터리가 수요자보다 공급자 입장에서 만들어졌다는 비판이다.
"활자를 그대로 영상화하는 건 제작자가 그냥 설명하는 거예요. '상상력 기획'은 수요자 쪽에 서서 방송만이 보여줄 수 있는 영상을 만드는 거죠. <MBC 스폐셜-메이드 인 차이나 없이 살아보기>도 한 사례가 될 수 있겠네요. 한미일 3개국 가족이 일상을 점령하고 있는 중국산 제품을 사용하지 않고 생활하는 모습을 생생히 보여줬는데, 많은 시청자들이 중국제품이 우리 생활에 얼마나 많이 파고들어와 있는지 실감했을 겁니다."
"담담하면서도 답답하지 않은 시선"
그가 이토록 강조하는 기획과 상상력. 하지만 다큐멘터리 제작에 진짜 중요한 요소 한 가지를 더 보태고 싶다고 했다. 바로 주변 사람 또는 동료와 함께 일하는 '협동'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다큐멘터리 소재를 묻고 듣는 과정을 그는 '주변 사람에게 숙제를 내준다'고 표현했다. 후배 PD들과 함께 이런 '숙제'를 하면서 단순한 아이디어가 생각지도 못한 작품으로 진화할 때 가장 기분이 좋다는 최우철 PD. 다큐멘터리에 대한 그의 애정을 표현하기에 두 시간은 너무 짧은 듯했다. 언젠가 한 인터뷰에서 그가 한 말이 생각났다.
"다른 장르를 폄하한다고는 생각지 말아주세요. 재연이나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르뽀도 좋지만, 제가 하고 싶은 건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담담한 시선으로 사물이나 사람, 사건을 바라보는 거예요. 담담하면서도 답답하지 않게 말이지요, 사안을 해석하고 분석하고 선악을 가르기보다는 여백의 여운으로 감동을 줄 수 있는 그런 것이지요."
덧붙이는 글: 한국 언론의 새로운 표준과 가치를 모색해보려는 '저널리즘 특강'에 독자 여러분, 특히 언론인과 언론인이 되고자 하는 분들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서울에서 진행되는 특강에 참여하기를 원하는 분은 사전에 연락해주시면(043-649-1148) 제한적이나마 자리를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특강일정표와 장소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홈페이지(http://journalism.semyung.ac.kr) 공지사항에 게시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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