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기지 백지화를 위한 제주 강정마을의 '강정평화대행진'이 29일 전야제를 시작으로 8월4일까지 7일간의 대장정에 들어갔다. 제주를 동서로 나눠 5박 6일간 도보로 행진해 1만명이 제주시로 모이는 '강정평화대행진'의 첫 발걸음은 강정포구의 푸른 저녁 하늘 아래 평화로운 전야제로부터 시작됐다.
김선우 시인을 비롯한 전석순, 이은선, 나미나 작가가 공동으로 작업한 동화 <구럼비를 사랑한 별이의 노래>가 강정마을에 헌정됐고 동화의 일부가 여러 성우들에 의해 현장에서 구현됐다. 문정현 신부는 노래를 불렀고 22명의 목숨을 잃은 쌍용차 노조원과 가족을 위한 심리치료 '와락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정신과 의사 정혜신씨와 남편 이명수씨(심리기획자)도 함께 했다.
유난히 푸르고 고요했던 강정 포구 전야제 밤은 파도와 바람과 달빛이 스며들며 오랜 시간 고통당해 온 강정주민들의 상처와 구럼비의 아픔을 치유하는 장이였다. 전야제부터 다음날 강정마을 강정천 운동장에서 시작된 '강정평화대행진' 출정식 풍경까지 사진으로 담았다. 글은 강정 현장에서 시인 김선우씨가 보내왔다. <편집자>
다시, 강정이다.
나는 늦게 시작한 사람이다. 남쪽 섬 작은 마을, 5년 넘게 한 나라의 작은 마을에서 이토록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동안 나는 도대체 무얼 한 걸까. 강정을 살뜰히 지켜보지 못했다. 고작 작년에야 강정의 소식을 들었고 처음엔 그저 마음 아파했을 뿐이다.
내가 그저 마음 아파하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싸웠다. 그분들은 여전히 굳건히 이 마을의 한 축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한 축은 지쳐가고 있다. 지쳐가는 분들이 그만 쓰러져 쉬는 자리에 이제 내가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이 여름이 이대로 지나고 가을을 맞게 된다면 강정싸움의 활로를 찾기가 점점 힘들어질 거라는 생각이 어느 날 절박하게 들었다. 무엇이든 해야 한다고 생각한 즈음, 동료작가들과 함께 동화를 썼다. 두 달간 꼬박 매달린 작업이다. 총선 이후 언론에서 거의 완전히 사라진 강정마을의 이야기를 책으로라도 독자들에게 전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적처럼 책이 나왔다. <구럼비를 사랑한 별이의 노래>. 인쇄소에서 막 나온 책을 들고 강정으로 헌정공연을 하러 왔다. 평화대행진의 전야제이기도 한 이 공연에 강정의 뮤지션은 물론 전국 각지에서 온 가수들이 함께 했다. 부끄럼 많이 타는 거리의 신부님이 수줍어하면서 우리를 맞았다. 극단 <종이로 만든 배>가 이 책의 가제본으로 연습한 낭독공연이 이어지는 동안,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강정포구에 쉴 새 없이 번져갔다. 강정소년 한별이와 구럼비의 이야기를 들으며 별처럼 초롱하게 웃는 강정포구의 아이들과 엄마들, 전국에서 온 시민들의 머리 위에 달과 별이 빛났다. 살그머니 감은 눈으로 강정을 내려다보는 말갛고 영롱한 달. 그리고 별들. 시와 노래를 실은 파도와 바람.
평화는 어떻게 오는가. 진짜 평화가 오는 길을 우리는 알고 있는데, 왜 저들은 모르는가. '안보'라는 말로 사기를 치는 저들, 우리의 평화를 위협하는 '힘 있는' 이들을 향해 무력해 보이는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이 너무나 많은 질문들을 던지고 있는데, 힘 있는 자들은 왜 이토록 우리의 '질문들'에 무지몽매한가.
솔직히 고백하자면, '지더라도 해야하는 싸움이 있다'는 심정으로 강정에 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싸움이 '지더라도 해야 하는 싸움'이 아니라, '꼭 이겨야만 하는 싸움'이라는 것을 강정에 오면 올수록 알게 된다. 이 작은 마을조차 이 엄청난 국가폭력으로부터 지켜내지 못하면 큰 마을도 지킬 수 없다. '나라'는 물론이다.
당신이 왔다. 먼저 싸운 사람들이 지쳐 쉬고 있는 동안 이제 내가 서있겠다고.
우리가 왔다. 이제 더 이상은 외롭게 홀로 두지 않겠다. 우리의 평화는 우리의 손으로 지킬 수밖에 없잖은가. 한 걸음. 이렇게 한 걸음! 우리 함께!
☞ <이미지프레시안>에서 사진 더 보기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