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한 사람과 이상한 힘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한 사람과 이상한 힘

[사람을 보라]<9> 오은 시인

한진중공업 김진숙의 외롭고 절박한 투쟁, 이를 응원하는 시민들의 자발적이고 뜨거운 발걸음을 기록해 사진가들이 책 <사람을 보라>(아카이브)를 펴냈습니다. 이 연재는 이에 호응하는 젊은 시인들이 사진을 보고 보내온 글입니다. 책의 인세는 희망버스 주유비로 쓰입니다. <편집자>

ⓒ정택용

지금, 왜 우리는 한 사람을 위해 모였는가. 왜 하필 여기에 모이게 되었는가. 바쁘다고 투덜대기 바빴던 우리가 한날한시 한자리에 모이다니. '이럴 수는 없는 일'이 일어났고, 그 때문에 '이럴 수밖에 없는 일'이 일어났다. 처음의 일은 고압적으로 행해졌고, 나중의 일은 자발적으로 발생했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제대로 분노하는 수밖에 없었다.

처음의 일과 나중의 일에서 한 사람의 위상은 확연히 달라졌다. 처음의 일에서 한 사람은 그저 피고용인일 뿐이었다. 한 사람은 다른 한 사람들처럼 해고를 당했다. 한 사람은 이 부당함을 견딜 수 없었다. 한 사람은 다른 한 사람들이 좌절하고 괴로워하고 발을 동동 구르며 살 길을 찾는 동안, 총대 대신 촛대를 메고 크레인 위로 올라갔다. 하나밖에 없는 작은 입으로 세상을 향해 지저귀었다(twitter). 그 지저귐은 많은 사람들을 웃고 울렸다.

나중의 일이 진행되는 동안, 한 사람은 어느새 어떤 아이콘이 되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사회에서 끊임없이 부당함을 호소하는 한 사람의 모습은 그 자체로 하나의 집념이었다. 사람들이 그 한 사람을 보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에서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우리는 우리 자신만 아는 사람들인 줄 알았는데, 정말 이상했다. 정말이지 이상했다. 이상한 힘에 이끌려, 우리는 휴가를 내고 피서를 미루고 한곳으로 향했던 것이다. 그곳은 최소한의 양심이 있는 곳 같았다. 우리가 꼭 가져야 했지만, 어찌어찌하다 보니 각박한 세상에서 잃어버리고 만 어떤 것.

ⓒ정택용

그렇게 한 사람은 아래에만 있던 자들에게 빛이 되었다. 희망이 되었다. 입때껏 우리는 군수가 되고 동장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고 대통령이 되는 게 올라가는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어왔다. 그것만이 꿈의 요건을 제대로 갖추었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한 사람 때문에, 우리는 올라가서 할 수 있는 일, 올라갔을 때 응당 해야만 하는 일에 대해 찬찬히 되돌아보게 되었다. 우리는 우리에 대해, 노사관계에 대해, 강자와 약자, 있는 자와 없는 자에 대해, 궁극적으로 힘을 어떻게 모으고 써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최소한의 양심이 있어야 최소한의 정의가 실현될 수 있음을 절절히 깨달았다.

그래서 우리는 또다시 여기에 왔다. 아직까지, 한 사람이 저 위에 있다. 여전히, 씩씩하다. 이곳은 너무 멀고 한 사람은 너무 높이 있지만, 우리의 마음은 벌써 저기에 가 있다. 한 사람이 웃고, 우리도 따라 웃는다. 지고 있는데, 수세에 몰려 있는데, 공중에서 홀로 쓸쓸한데, 우리는 왜 웃으면서 손 흔들 수 있는가. 당당하기 때문에. 한 점 부끄럼도 없기 때문에, 우리는 환하게, 더 환하게 웃을 수 있다. 이상한 힘에 사로잡혀서 우리는 뭉클해지고, 내일이 되면 세상이 좀 덜 아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꽃 위에 서서 외친다. 모든 "사람은 꽃"이라고, 그리고 개중에 어떤 사람은 꽃보다 아름답다고. 어떤 외압에도 쉬 시들지 않는다고.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