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태훈 |
"1킬로미터마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이별을 일일이 체험할 힘이 우리에게는 없다"*라고, 요절한 독일 작가 볼프강 보르헤르트는 말했습니다. 그는 혹독한 전쟁의 체험과 투병 생활을 겪었으나, 그가 말하고 싶어 했던 것은 이별을 통한 만남, 즉 희망이었습니다.
처음 김진숙, 그녀의 이름을 들었을 때는 아찔한 높이가 먼저 귀를 파고들었습니다. 35미터라고요? 저는 그녀를 상상했습니다. 그녀는 막연하고 희미했습니다. 너무 높았기 때문에, 혹은 너무 낮았기 때문에. 그러나 때로 삶은 너무 높거나 낮아집니다. 분명히 그런 순간이 옵니다. 그것은 만남과 이별처럼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제 가슴에서 나는 소리를 두려워하며, 도둑처럼 그 자리에서 몸을 숨기는" 것을 택합니다.
우리의 삶에는 이별이 없고, 아무 만남도 없으며, 평탄함을 가장한 고독과 슬픔이 우리의 표정을 지웁니다. 표정이 지워진 얼굴, 그런 얼굴로도 우리는 모든 것을 보고 싶어 합니다. 모든 아침을, 모든 밤을, 그러나 그것이 정말 모든 빛과 모든 어둠이던가요?
우리는 눈이 멀까봐 스스로 눈을 감았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보지 않으려 한 곳에 정말 눈이 먼 사람들이 살고 있어서 저는 놀랐습니다. 눈 먼 그들은 눈을 뜨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곧바로 이별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과 이별했고, 모든 것과 만났습니다. 그들의 표정은 좁은 어깨나 땀에 젖은 등 위에서 생생했습니다. 분노도, 사랑도, 비명도, 그들의 좁은 어깨 위에서 당당해지고 분명해졌습니다.
저기, 바닥보다 더 낮아진 고공 85호가 있습니다. 기억되지 않는 분노들이, 빛바랜 사랑들이 있습니다. 저는 지금 그녀를 전보다 조금 더 잘 볼 수 있지만, 아직 뚜렷이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런 시간이, 눈이 멀까봐 똑바로 볼 수 없는 시간이, 멈추어 있습니다. 시간이 멈춘 고공 85호에서, 김진숙은 두 손을 흔듭니다. 캄캄한 이별처럼, 하얀 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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