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의 이종란 노무사는 "박지연씨는 가난 때문에 삼성의 입막음용 돈을 받아 백혈병을 산재로 인정받지도 못하고 삶을 마감했다"며 눈물을 보였다. 김주현씨의 아버지 김명복씨도 "최소한의 안전 조치도 없이 아들의 죽음을 방조한 책임이 있는 삼성이 그 아버지를 몇 푼의 돈으로 회유하려 했다"며 삼성 측에 강한 책임론을 제기했다. 김주현씨의 장례는 사망 80여일이 지나도록 치러지지 않고 있다.
기자회견 도중 삼성 측 직원들은 회사 이름이 새겨진 간판석을 흰색 천보자기로 덮어 보이지 않도록 했다. 잠시 후 다시 걷었지만 '입막음용 돈', '몇 푼의 회유'가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거대하고 휘황찬란한 빌딩 숲 사이에 모인 사람은 불과 10여명. 이보다 더 많은 수의 경찰과 삼성측 경비들의 경계 속에 기자회견은 불과 30여분만에 끝났다.
삼성 계열사 공장에서 일하다 희귀질환을 얻은 피해 사례는 반올림에 접수된 것만 100여건이 넘고 이 중 30여명은 이미 사망했다. 산업재해가 인정된 경우는 이 중에서 아직 한 건도 없다.
▲ 故(고) 김주현씨의 아버지 김명복씨 ⓒ프레시안(최형락) |
▲ 23살의 나이에 백혈병으로 사망한 故(고) 박지연씨의 사진 ⓒ프레시안(최형락) |
▲ 故(고) 황민웅씨의 부인 정애정씨 ⓒ프레시안(최형락) |
▲ 삼성에서 해고된 박종태씨. ⓒ프레시안(최형락) |
▲ 기자회견 도중 삼성측 직원들이 흰 보자기로 '삼성전자'라고 새겨진 간판석을 덮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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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고) 박지연씨의 생전 사진. ⓒ프레시안(최형락) |
낮기온이 16도까지 올라 완연한 봄날씨를 보인 31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이지연씨는 박일환 시인의 '매화는 봄을 불러오지 않는다'를 낭독해 좌중을 숙연케 했다.
다음은 故(고) 박지연씨 추모시 전문.
더이상 믿지 않기로 했다.
매화가 피면 봄이 멀지 않다는 사실.
만고불변의 진리라 해도 아닌것은 아닌것.
이제부터 기대와 소망 따위 품지 않기로 했다.
남쪽에서 매화가 한창 북상중이던 3월의 끄트머리를 밝고 네가 가버린 그날 그 순간부터 꽃피는 봄날이라는 말 함부로 읖조리지 않기로 했다.
어떤 눈보라가 쳤던건지 어떤 비바람이 불어왔던건지 살아생전 대답도 듣지 못한 채 너는 가버렸고
속절없이 꽃이 핀들 눈길은 너를 더듬어 하늘로만 향하는데...
드디어 봄이야.
고운 네 목소리로 들려주지 않는 한 봄이 어찌 봄이겠는가.
꽃이 어찌 꽃이겠는가.
네가 없는 지상에선 차마 한 줌 햇살마저 부끄러워.
꽃이 무더기로 피었다 치더라도 봄바람이 대책없이 살랑대더라도 꽃 같은 것 예뻐하지 않기로 했다.
봄 같은 것 쳐다보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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