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찜찜하다. 현장에 있던 목격자들의 목격담 때문이다. 목격자 이모 씨는 '지인과 술 마시는 도중 한 남성이 이천수에게 사인과 사진 촬영을 요구했고 이천수가 지금 그럴 기분 아니니 가세요라고 거부하자 시비를 걸었다'는 내용의 글을 온라인에 올렸다. 또 다른 목격자는 '술에 취한 상대방이 이천수에게 니가 축구를 잘하면 얼마나 잘하냐고 조롱하면서 뒤통수를 치는가 하면 이천수의 볼을 어루만지면서 때릴 수 있으면 때려봐라 어디 돈 한 번 빨아보자고 시비를 걸었다'는 목격담을 온라인에 올렸다. 목격자들의 증언으로만 본다면 이천수는 피해자다. 그러나 스포츠 스타이기 때문에 이천수는 폭행여부의 진위가 가려지기 전에 여론재판에 올려졌다.
▲ 이천수 선수. ⓒ연합뉴스 |
스포츠 스타도 공인이다. 그들에겐 명성과 인기에 걸맞는 처신과 언행이 요구된다. 당연하다. 공인의 영향력은 지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인은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도 신중함이 필요하다. 그러나 공인이라고 같은 공인은 아닌 것 같다. 유명 정치인, 사회 저명인사와의 우연한 만남은 겉치레라도 덕담으로 마무리된다. 그러나 연예 스타, 스포츠 스타와의 우연한 만남엔 왕왕 불상사가 빚어진다. 포장마차에서 만난 가수에게 노래 한 번 해보라는 취객, 식당에서 마주한 개그맨에게 웃겨보라는 손님, 술집에서 만난 스포츠 스타에게 패전의 책임을 뒤집어 씌우며 조롱하는 자칭 팬에 관한 얘기는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아직도 연예와 스포츠는 천한 것일까? 아니면 연예 스타와 스포츠 스타는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웃음과 즐거움을 선사해야 하는 것일까? 무례를 넘어 모욕까지 치닫는 자칭 팬들의 폭언과 막무가내를 참아내는 것까지 공인의 의무는 아닌듯 싶다. 스포츠 스타에 대한 몰지각한 팬들의 무례와 모욕은 이제 도를 넘은 느낌이다.
9월 7일 LG-삼성전이 열린 잠실구장. 5이닝 무실점으로 시즌 13승을 거둔 삼성 에이스 배영수가 경기를 마치고 구단버스로 걸어가는 도중 느닷없이 뒤통수를 심하게 얻어맞았다. 뒤돌아보며 '왜 때리냐'고 묻는 배영수에게 폭행을 가한 사람은 '화이팅하라고 때렸다'고 답했다. 이 장면을 목격한 주변의 팬들 사이에선 그저 재밌다는 웃음소리만이 들렸을 뿐이다. 이들에겐 2013시즌 14승으로 다승 공동선두에 오른 삼성 에이스 배영수가 어떤 의미였을까? 프로야구선수들이 그저 웃고 즐기고 욕하고 분노하며 한 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 감정소비품이지 않았을까? 공인이 의무를 다해야 할 대상이 어디까지인지 의문스럽다.
2011년엔 기아 타이거즈 이종범이 외야타구를 쫓아 달려가는 도중 관중석에서 날아 온 맥주캔에 맞을 뻔했다. 외야로 뻗어 가는 공을 쫓아 전력질주하는 선수에게 맥주캔을 던지는 야구팬을 진정한 야구팬이라고 할 수 있을까? 흥분한 이종범은 경기 도중 관중과 언쟁을 벌였다. 관중과의 언쟁으로 이종범은 '팬에게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했다'고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그러나 맥주캔을 던진 관중이 제재를 받았다는 뉴스는 듣지 못했다. 야구팬은 예의와 규정위에 군림하는 존재인가? 아니면 스포츠 선수는 이유불문하고 무조건 팬들게에게 사과해야 하는 것일까?
99년 플레이오프에선 롯데 외국인 타자 펠릭스 호세가 홈런을 치고 더그 아웃에 들어가는 도중 관중이 던진 생수병에 급소를 강타당했다. 분을 참지 못한 열혈남 호세는 배트를 1루 관중석에 집어던졌고 이로 인해 출장정지 처분을 당했다. 그러나 생수병을 던진 관중에겐 어떤 제재도 취해지지 않았다. 메이저리그와 유럽축구에선 폭력적인 행위를 한 관중에겐 즉시 퇴장과 경기장 출입 금지 조치가 취해진다.
이천수의 폭행여부는 경찰조사로 가려지게 된다. 궁금하다. 폭행이 없었다면 김모 씨는 왜 폭행을 주장했을까? 왜 휴대전화를 부쉈다고 주장하며 재물손괴라는 섬뜩한 법적용까지 자초했을까? 폭행이 사실이었다면 이천수가 그에 상응한 징계를 받으면 될 일이다. 그러나 폭행이 없었다면? 그래도 이천수가 "어쨌든 공인의 입장에서 물의를 일으킨 점은 죄송하다. 팬들에게 사과드린다"는 마무리용 예의를 지켜야할까?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모 씨가 공연히 공인임을 약점으로 잡아 행패를 부린 것이라면 최소한 명예훼손정도의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축구선수가 공인으로서 그라운드밖에서 져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면 최소한의 보호받아야 할 인권과 사생활도 있기 마련이다. 주장하는 것처럼 폭행이 없었고 양심에 거리낌이 없다면 이천수는 당당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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