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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호선 "국정원, 이대로 두면 대통령 공격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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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천호선 "국정원, 이대로 두면 대통령 공격할 수도"

[인터뷰] "남재준 해임해야…이석기 사태, 진영논리 벗어나야"

15일로 노숙 농성 25일째.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태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직접적인 해결을 촉구하며 서울광장에 천막을 쳤다. 대통령 앞으로 공개서한도 보내봤다. 그러나 "대선 때 국정원으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은 게 없다"는 박 대통령의 태도는 요지부동. 야당 대표들이 거리에서 먹고 자고 정치를 해야 하는 비정상은 정상화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16일로 예정된 대통령과 여야 대표의 3자회담이 돌파구가 될까? 박근혜 정부 들어 오히려 정치의 복판으로 들어온 국정원의 행태와 남재준 국정원장에 대한 박 대통령의 무한 신뢰, 여기에 채동욱 검찰총장의 석연찮은 사의 표명 사태까지 겹치며 국면은 더 복잡해졌다. 당 대표 취임 한달 만에 거리로 나선 천호선 정의당 대표의 노숙 농성이 쉬이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정의당 내부도 시끌시끌하다.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에 정의당 의원들이 찬성표를 던진 뒤, '사상의 자유'를 옹호하는 주장과 폭동 모의에 대한 '정치적 판단'을 강조한 주장이 뒤엉켰다. 천 대표도 당 게시판에 두 번이나 글을 직접 올려 판단의 배경을 설명했다. 진영 논리로부터 벗어나 국민적 신뢰를 얻는 게 새로운 진보정치의 길이라는 거다.


폭우가 쏟아지던 지난 13일, 천 대표의 노숙 농성장을 찾아가봤다. 실타래처럼 꼬인 이 정국의 핵심에 있는 박 대통령에 대한 경고가 쟁쟁하다. "정보기관에 의해 권력을 잡고 정보기관에 의지해 정권을 유지한 사람은 정보기관에 의해 망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그랬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젠 교훈을 얻어야 한다. 괴물을 키운다면 결국 주인에게 달려들지도 모른다. 진심으로 드리는 충고다." <편집자>

▲ 천호선 정의당 대표 ⓒ프레시안(최형락)
"남재준 해임없는 정국 정상화? 국민 납득하겠나"

프레시안 : 좀 더 두고 봐야겠지만 추석을 앞두고 경색됐던 정국이 풀릴 조짐도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에 3자 회동을 제안했고, 민주당도 수용 의사를 밝혔다. 3자 회동에서 전향적인 결론이 난다면 정의당의 천막 농성도 해제되나?

천호선 : 상황이 풀리는 기준이 무엇인지가 고민이다. 민주당이 앞서 특검을 요구했다. 일단 우리는 특검이 이 상황을 해결하는 적절한 대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특검 자체는 여야 합의를 통해 실행할 수 있지만, 여야가 합의한다고 하더라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의미가 없다. 과거의 특검 역시 대부분의 경우 뚜렷한 성과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결국 대통령의 결단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지 특검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정의당이 특검을 반대하지는 않지만 적극적으로 의제화하지 않은 이유다.

결국 핵심은 남재준 국정원장으로 상징되는 책임자 해임과 국정원 개혁이다. 한 가지 우려되는 지점은, 회동이 이뤄지더라도 대통령의 유감 표명과 국정원 개혁은 국회가 알아서 하라는 수준의 결론만 나올 것 같다. 결국 대통령의 사과 대신 유감 정도의 수준에 그칠 것 같고, 남재준 원장 역시 쉬이 해임할 것 같지 않다. 회동 자체는 민주당 입장에선 흔쾌히 수용할 수 있는 것이지만, 국정원 개혁에 대한 국민적 요구는 야당보다 촛불을 든 시민들에 의해 먼저 시작된 것 아닌가. 그런 면에서 국민의 여망에 부응하는 일은 아닌 것 같다. 정의당 역시 그 정도 수준이라면 쉽게 타협할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 있는 태도로 받아들일 수 없다.

프레시안 : 국회 내에서 국정원 개혁특위를 설치하는 방향으로 마무리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천호선 : 국회에서 개혁하라? 그건 결국 아무 것도 안 하겠다는 것이다. 국정원이란 조직의 특수성을 일단 고려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국정원은 대통령에게 충성하는 조직이다. 분석관들이 정보원들이 수집한 정보를 청와대에 보고할 때, 오로지 '이건 대통령이 본다'는 생각을 갖고 일한다. 오로지 대통령에 충성하는 조직인 셈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는 제도만 바꾼다고 해서 국정원이 개혁되진 않는다고 본다.

결국 대통령이 개혁 의지를 갖고 있느냐가 관건인데, 남재준 원장의 해임 여부가 굉장히 상징적인 판단 근거가 될 것이다. 남 원장을 해임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나에게 계속 충성하라, 때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된다'는 메시지가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박근혜 정부의 4년 반 남은 임기 동안 국정원의 횡포는 아무도 막지 못하는 수준으로 치달을 것이다. 심지어 요즘엔 정보를 가지고 협박을 하기도 하고, 헛된 정보를 흘리지 않나. 이석기 사건 수사 과정만 봐도 공식적인 발표는 하나도 없이 상황을 몰고 갔다. 지금 방향을 틀지 않는다면 5년 동안 국정원이 정국을 쥐락펴락 할 것이다. 지금은 야당과 정치적 반대자들에 대한 조사에 머물고 있지만, 좀 더 지나면 고위공직자, 더 나아가선 여당 의원들이나 대통령에게도 달려들 수 있다. 그건 국정원의 속성이다.

정보기관에 의해 권력을 잡고 정보기관에 의지해 정권을 유지한 사람은 정보기관에 의해 망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그랬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젠 교훈을 얻어야 한다. 괴물을 키운다면 결국 주인에게 달려들지도 모른다. 진심으로 드리는 충고다.

프레시안 : 국정원 개혁 요구를 담아 박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 서한을 발표했다. 사실 국정원 개혁은 매 정권마다 과제였지만, 기대를 충족할만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도 의욕에 비해 결과에 대해선 낮은 평가를 받았다.

천호선 : 참여정부의 경우 국정원의 구조 자체를 개혁하는 게 아니라, 국정원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는 방식이었다. 대통령이 국정원을 정치적으로 활용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예컨대 참여정부 초대 국정원장이 고영구 전 원장이었다. 변호사 시절부터 노무현 대통령에게 하늘같은 선배였고, 노 대통령을 위해 자신의 신념을 버릴 분이 전혀 아니었다. 두 번째 원장인 김만복 전 원장의 경우 밑에서부터 올라온 케이스다. 말단부터 시작해 원장이 된 최초의 사례다. 쉽게 말해 대통령이 '내 사람'을 심은 게 아니란 얘기다.

두 번째로 국정원의 단독 주례보고를 대통령이 받지 않았다. 국정원이 난리가 나니까, 나중엔 어쩔 수 없이 보고를 받았지만 혼자 받는 게 아니라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을 배석시키고 같이 논의했다. 당시 제가 있던 국정상황실까지 그런 정보가 공유됐다. 결국 참여정부는 국정원 구조 개혁을 하지 않았고, 노 대통령 본인이 국정원을 정치적으로 활용하지 않은 것이었다. 지금 후회가 되는 대목이다. 그렇게 중립성을 보장해 봤자, 정권이 바뀌니 다시 되돌아 가더라. (참여정부 방식에) 한계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정의당이 지난 6일 국정원 개혁안을 내놨다. 일단 가장 큰 문제는 광범위한 정보 수집과 수사권의 결합인데, 정보 수집과 수사권을 분리시켜야 한다. 수사는 검찰이나 경찰에 맡기거나 제3기관을 따로 만들고, 국정원은 정보 수집만 하도록 해야 한다. 여기서 정보 수집의 범위는 해외 정부나 대북 정보, 그것과 관련된 국내 정보로만 제한해야 한다. 국정원 요원들이 지금 기업에까지 출입한다. 이들이 과연 정보만 수집했을까? 국내 정보 수집도 대북 문제나 안보 문제에 국한시키고, 일상적인 정보 활동은 폐지해야 한다.

물론 수사권을 분리한다면, 검찰과 경찰 역시 정치적 중립성을 담보해야 할 것이다. 어떻게 보면 국정원 개혁 하나 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정보기관들을 종합적으로 재정비해야 하는 문제다. 동시에 통치자의 선의에만 기대서도 안 되지만, 구조 개혁과 더불어 대통령의 개혁 의지도 분명해야 한다. 박 대통령이 결심하지 않는다면 새누리당이 결코 협조하지 않을 것이고, 설령 협조한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비밀 업무를 수행하는 국정원을 통제하기 어렵다. 국회가 어느 정도는 통제해야 한다고 본다.

"'폭력 모의'는 사상의 자유가 될 수 없다"

프레시안 : 이른바 '이석기 내란음모' 사태를 바라보는 진보진영의 고민이 깊은 것 같다. 당 지도부가 체포동의안 찬성 당론을 정한 후, 당 게시판부터 시작해 당원들의 문제제기가 만만치 않았다.

천호선 : 물론 국정원이 이번 사건에 대한 공개적 수사를 시작한 시점, 국회에 체포동의안을 제출한 시점만 놓고 볼 때 정치적 의도가 다분해 보인다. 더구나 국정원은 현재 정치적 중립성과 객관성까지 완전히 잃은 상태다. 그래서 (당원들 사이에서도) 국정원의 수사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정서가 깔려 있는 것 같다.

ⓒ프레시안(최형락)
그러나 사건의 '내용' 자체를 보자는 것이다. 체포동의안은 본래 사법적 판단에 앞서 정치적 판단을 요구하는 것이다. 사법적인 관점에서 볼 때는 당연히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돼야 하지만, 국회는 국회의원의 불체포 특권을 유지시킬 것인가 말 것인가 정치적 판단을 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무죄추정의 원칙만을 절대적으로 강조한다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모든 체포동의안은 반대하는 게 맞다. 제도 자체가 무의미해 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판단의 기준은 두 가지가 될 수 있다. 첫째는 제기된 혐의 내용이 사실에 가까운 것인지에 대한 정치적 판단이고, 둘째는 그 혐의 내용으로 볼 때 국회의원의 특권을 유지시킬 필요가 있는지 결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통합진보당은 국정원이 공개한 녹취록을 처음엔 부인하다가 결과적으로 내용 대다수를 사실상 인정했다. 기껏해야 "'절두산 성지'가 (녹취록에서) '결전 성지'로 둔갑했다"는 주장을 어떤 의원이 했지만, 그건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몇 개의 표현을 제외하고는 녹취록의 전체적 맥락 자체를 부인하진 않았다. 녹취록의 내용이 대개 사실이었음을 당사자들도 결과적으로 인정한 셈이다.

또 하나, 이 녹취록에 담긴 내용을 '사상의 자유' 범주로 볼 것이냐의 문제가 있다. 물론 북한 사회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사회주의를 꿈꾸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 정도 수준이라면 문제가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해당 회동에선 분명 폭력적인 방법에 대한 논의가 있었고, 그건 이미 사상의 자유를 벗어난 수준이었다. 이 두 가지 모두를 판단해 체포동의안 찬성 결론을 낸 것이다.

그래도 국정원의 의도를 고려한다면 기권을 하거나 반대했어야 한다는 반론도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진보정당은 그래선 안 된다. 국정원 수사의 객관성 문제는 별개로, 이 사건 자체가 어느 정도 사실에 부합하고 그 내용이 사상의 자유를 벗어난 수준이었다면,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을 내려놓는 것에 찬성해야 한다. 이게 의원단과 대표단 다수의 판단이었다.

이런 얘기를 하는 분들도 계신다. 외부에서 볼 때 과거 한솥밥 먹은 사람들 등에 칼 꽂은 것 아닌가? 전혀 그런 문제가 아니다. 시도당위원장 대다수는 (체포동의안 처리에) 반대했다. 고충을 이해한다. 이 분들은 지역에서 사업을 하고 활동을 하셔야 하는데, 대개의 진보진영 인사들은 기존의 시각대로 찬성 결정을 잘 이해 못한다. 지금도 다수가 그렇다. 어떤 분은 며칠 동안 지역의 대외적인 활동에도 나가지 못했다고 하더라. 이런 고민들을 갖고 더 깊게 토론하고 결정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은 아쉽다.

"진보진영에 칼 꽂았다? 진영논리 이제 벗어나야"

프레시안 :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이 때로 '방탄 국회' 논란을 부르기도 했지만, 어쨌든 법에 불체포 특권이 명시된 이유는 집권세력의 정치적 반대자들에 대한 탄압 내지 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취지도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국정원의 정치적 의도를 전제하면서도 이 방어 기제를 걷어낸 것은 모순 아닌가?

천호선 : 모순이라는 생각 자체가 너무 단순하다고 본다. 물론 수사의 주체는 국정원이고 다분히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지만, 드러난 사실을 놓고 볼 때 과연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근거 없는 탄압인가? 그렇게 단순하게 볼 수는 없다. 당사자들도 녹취록 내용을 전면 부인한 것이 아니라면, 억울하고 불리하더라도 수사를 받고 그 과정에서 진실을 밝히라는 것이다. 특권 뒤에 숨을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통합진보당이 공개된 녹취록이 사실이 아니라고 전면 부인했다면, 우리의 판단 역시 달랐을 것이다. 국정원의 일방적 주장이라고 판단했을 것이고, 체포동의안에 찬성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또 사제폭탄 같은 폭력적 수단에 대해 애기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정세가 어렵다. 미국이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 수준의 논의였다면 (체포동의안에) 당연히 찬성하지 않았다. 이게 모순된다면 체포동의안은 언제, 어떤 상황이 와도 항상 반대해야 한다.

야권에 대한 탄압이 아니냐는 진보진영의 고민은 이해한다. 그러나 항상 진영 논리가 문제가 되지 않았나. 우리 진영은 옳고, 우리 진영은 다른 잣대로 봐야 하고, 그래서 덮을 것은 덮어두자는 식이라면 진보가 갖고 있는 서민에 대한 헌신이나 노력이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할 것이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내란음모죄 적용의 적절성 여부에 대한 논란도 있다.

천호선 : 우리 당원들도 그런 의문을 가진 분들이 많다. 국가보안법 적용에 대해서도, 진보진영은 국보법 폐지를 주장하고 있지 않느냐는 반론도 나온다. 그런데 법 적용도 문제고 국보법도 문제라는 관점으로만 보게 되면, 이 엄청난 사건은 마치 아무 문제가 없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더욱이 법 적용 문제는 순수한 사법적 판단의 문제다. 국회는 이 사건이 수사를 받을만한 사안인지, 불체포 특권을 유지시킬 것인지 말 것인지 정치적 판단을 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개개인이 각자 정치적 의사를 표명할 수는 있지만, 나는 내란음모죄가 아니라고 판단하기 때문에 체포동의안에 거부한다? 이건 상당히 무책임하고 위험한 발상이다. 개인은 그렇게 판단할 수 있지만, 공당의 책임 있는 판단은 아니다. 어떤 혐의가 적용되어야 하는 것까지 미리 예단해서 하는 것이 오히려 더욱 위험한 행위고 입법부의 권한 역시 넘어서는 일이다.

"진보-보수에게 같은 잣대 들이대야"

프레시안 : 다소 결이 다르긴 하지만 통합진보당 특정 계파의 문제는 지난해 경선부정 사태 당시부터 노정돼온 고질병이란 지적이 나온다. 진보의 자기 혁신이 실패했다는 반성 역시 유사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반복됐다. 그럼에도 진보의 자체 혁신이 지연된 이유는 무엇 때문이라고 보나?

천호선 : 제가 진보정치를 하는데 있어 가장 큰 기준은, 남에게 들이대는 잣대와 나에게 들이대는 잣대가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진보에게 들이대는 잣대와 보수에게 들이대는 잣대 역시 달라선 안 된다.

어떤 분들은 이런 얘기를 한다. 세상이 너무 한 쪽으로 구부러져 있기 때문에, 똑바로 세우기 위해선 때로 반대쪽으로 세게 구부려야 한다고. 진보가 우리사회에서 이렇게 탄압받고 소외받고 있는데, 우리가 조금 잘못됐다고 해서 똑같은 잣대로만 본다면 결국 우리는 실패하게 될 거라고. 이런 문제의식이 진보진영에 있다. 진보가 갖고 있는 진영논리의 하나의 축이 이런 일종의 불균형론이다. 사회적 소수자가 가질 수 있는 인식이고, 그 문제의식이 무엇인지도 충분히 공감은 한다. 그러나 정당이 그렇게 움직이면, 국민의 지지는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줄어든다.

이번 사건으로 사상의 자유를 이야기하는 분들이 많다. 그러나 바꿔서 보자. 쿠데타 모의는 괜찮은가? 우익에게도 사상의 자유는 허용된다. 그렇지만 폭력적인 방법을 모의한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예컨대 진보정권 하에서 우익세력에 대한 예비 검속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이에 우익들이 모여 혜화동 전화국 타격 등을 모의했다면 진보진영은 사상의 자유기 때문에 불구속 수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할 건가? 역지사지로, 같은 잣대로 봐야하는 것이다.

저는 NL도 옳고 PD도 옳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NL도 틀리고 PD도 틀리다고 생각한다. 이 두 세력은 궁극적 지향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과 문제를 푸는 방식에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이제 진보가 NL과 PD를 벗어나야 한다는 것은 그런 의미다.

어떤 운동 세력이, 폭력적 방법까지도 포함되는 사상과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지난해 부정경선 사태 때 굉장히 다른 입장을 취했을 것이다. NL 노선이 있고 주체사상을 따르는 그룹도 일부 남아있을 수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개인적 수준이지, 모여서 조직을 만들고 정당의 깃발 밑에서 이런 식의 논의를 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이석기 사태, 진보 전체가 자기성찰 해야"

프레시안 : 결과적으로 이번 사건으로 인해 진보정치는 더욱 어려워졌다. 진보의 재구성 논의 역시 다시 나오고 있는데, 진보정치의 혁신의 방향을 어디서 찾고 있나?

천호선 : 지난해 부정경선 사태를 겪으면서 진보정치의 근본적 숙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 당시 우리는 이념과 사상 이전에,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에 대해서 납득하지 않는다면 사상을 떠나 함께 공존하기 어렵다고 봤다. 더욱이 그걸 폭력적인 방식으로 하지 않았나. '나의 권력이 강화되는 것이 진보가 발전하는 것'이라고 믿고, 그 과정에서 수단과 방법은 큰 문제가 아니라고 여기고…그 때 이후 지금까지도 단 한 번도 무게감 있게 사과하는 걸 본 적이 없다.

이번 정의당의 체포동의안 찬성 당론이 논란은 많지만, 진보진영 전체와 국민들에게 문제의식을 던진 측면도 분명히 있었다고 본다. 우리가 어떤 점들을 진지하게 고민했는지 그 과정과 결과물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체포동의안 처리 당시, 이것이 헌법에 기초한 정당으로서 옳은 것이냐, 아닌 것이냐 이것 하나만 놓고 판단했다. 앞으로도 진보진영의 관성과 진영 논리를 끊임없이 극복해야 하고, 그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본다. 이번 사건이 진보진영에 쓰나미처럼 덮쳤지만, 이 역시 결국 다 지나간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특정 세력의 문제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이 사태가 오기까지 진보진영 전체가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천호선 : 진보진영 모두 크고 작은 책임이 있다. 그런데 이 책임은 야권연대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니다. 야권연대를 문제 삼아 공격하는 것은 새누리당의 억지 논리고, 특히 이석기 의원의 경우 비례대표 아니었나. 야권연대는 진보정당 후보들이 민주당 후보들과 당당하게 경쟁을 한 결과였다. 그야말로 세상을 '이석기 편'과 '이석기 편이 아닌 것'으로 나누는 억지 논리다.

다만, 진보진영이 무겁게 느껴야 할 책임이 있다면 오랫동안 진영논리에 빠져 의문이 있어도 문제를 덮어 뒀고, 때로 진보에겐 다른 잣대를 들이댔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정의당을 포함해 진보진영이, 이번 사태 이후 우리가 무엇을 혁신할지는 보여주지 못하면서 '저들이 나쁘다'라는 식으로만 대응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지금 문제가 된 그룹은 진보정치 내에 작은 세력이 아니라 가장 큰 세력이었고, 그들이 실제 진보정치를 주도해 왔다. 진보진영 전체가, 그걸 결과적으로 용인해왔다. 그리고 그 잘못을 진보진영 전체가 성찰하지 않으면 그들과 함께 몰락할 것이다.

다만 당부하고 싶은 것은, 정의당이 체포동의안에 찬성한 것을 두고 '어떻게 진보진영이 그럴 수 있느냐', 이렇게 단순하게 생각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가정을 한 번 해보자. 정의당이 당론으로 체포동의안에 반대했다고 가정해보자. 우리가 비록 작은 정당이지만, 체포동의안에 반대하는 것이 국정원 주도의 정국을 깨고 국정원 개혁을 이끄는데 과연 도움이 됐겠나? 도움이 안될 가능성이 더 컸을 것이다. 새누리당이나 보수 쪽에선 '진보는 다 똑같다'라고 반격을 했을 것이고, 다시 종북 논쟁이 지난하게 반복됐을 것이다.

왜 정의당이 저런 고민을 했는지, 그렇게 간단하게 비판하지 말아 달라. 사실 이번 사태 이후 진보진영 전체가 무슨 반성을 했나. 노동운동 진영의 일부를 포함하여 강단의 진보주의자들의 사고방식은 상당히 실망스럽다. '왜 우리 편 등에 칼을 꽂았느냐, 왜 국정원 손을 들어줬느냐'는 식이다. 그렇게 단순하게 판단할 것이 아니라, 진보진영 자신의 책임은 없는지 모두 돌아봤으면 좋겠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권영길 전 대표 말씀대로 진보정치는 사망이다. 10년 후에도 진보정치는 없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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