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정치권이 국회의원 면책특권까지 활용할 의사를 내비치며 국가기록원에 소장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원문을 공개키로 합의했지만, 야권 일각에선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가 기밀에 해당하는 정상회담 대화록 원본을 정쟁을 이유로 공개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무소속 안철수 의원은 2일 자신의 트위터에 "대통령기록물 원본을 공방의 대상으로 삼아 공개하는 것은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나 정치 발전을 위해서나 바람직하지 않다"며 새누리당과 민주당 양당의 결정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정상회담 회의록 원본은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른 대통령지정기록물로, 15년의 보호기간 동안 비공개가 원칙인 만큼 예외적으로 대화록을 열람하더라도 공개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다.
관련법상 국회 재적의원 3분의2 이상이 찬성 의결을 하면 예외적으로 열람과 사본제작 및 자료제출이 허용되지만, 이 같은 절차를 거쳐 열람하더라도 '비밀 누설 금지 조항'이 있는 만큼 내용을 공개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여야는 "열람만 하고 공개하지 않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국회의원 면책특권을 활용해서라도 대화록을 공개하는 방안을 향후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논의키로 결정한 상태다.
앞서 민주당 박지원, 진선미, 김동철 의원도 '대화록 공개'에 대해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박지원 의원은 전날 "어떤 경우에도 공개에 원칙적으로 반대한다"며 "정상회담 관계 서류는 규정대로 30년간 비밀로 보호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박 의원은 "(국정원의 대화록 사본) 초법적 공개로 인해 외교 후진국으로 낙인 찍히게 됐다"며 "어떤 정상이 우리나라 정상과 대화할 때 마음을 열 것인가. 또 앞으로 남북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마치 이걸 초등학교 3학년 대의원 대회처럼 감정적으로 해선 안 된다"며 공개 결정을 내린 여야 정치권을 싸잡아 비판했다.
진보정의당 심상정 원내대표 역시 이날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원본 공개에 분명한 반대의 뜻을 표한다"며 "일각에서 제기하는 것처럼 차제에 NLL(서해 북방한계선) 발언과 관련한 색깔론을 확실하게 털고 가야 한다는 주장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지난 주 국정원이 불법적으로 공개한 회의록 전문을 통해 대다수 국민들은 NLL 포기 발언이 사실이 아님을 판결했다. 이제 더 이상 국가 기밀 자료가 정쟁의 수단으로 쓰여서는 안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통합진보당 역시 사실상 당론으로 '대화록 공개'를 반대하기로 결정, 이날 열릴 본회의에서 통합진보당과 진보정의당 의원들은 각각 반대 토론에 나설 예정이다.
한편, 양당은 이날 오후 2시30분으로 예정된 본회의에서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자료 제출 요구서를 표결에 부치기로 했다. 본회의 전엔 각각 의원총회를 열어 대화록 공개에 대한 당론을 결정할 예정이다. 표결 역시 '당론 투표'로 하기로 합의해 재적의원 3분의 2를 넘길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요구서가 본회의를 통과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대화록' 논란은 대통령지정기록물 공개라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지만 논란이 종식될지는 미지수다. 여야가 기존의 논리를 고수할 가능성이 크고, 승복의 기준을 만들어내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여야는 대화록 공개를 요구하며 "진실 왜곡과 논란을 말끔히 해소하고 심각한 국론 분열을 방지하기 위해"라고 명분을 세웠지만, 정쟁의 논리에 의해 국가 기밀 자료가 공개되는 선례가 될 수 있어 부적절하다는 평가다.
노무현 정부 때 외교부 장관을 지낸 송민순 전 장관은 현재 벌어지는 논란에 대해 "국내 정치의 하루 하루, 정치적 계산에 의해 생긴 것 아니냐"며 "나라가 저급한 나라가 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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