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민주화되고 있는 사회의 여파일까? 이런 비참한 현실이 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에서 재연되고 있다. 대학 언론들이 학교 당국의 부당한 간섭에 신음하고 있다. 발행이 중단되거나 학보 전량이 수거되고, 기자·편집국장이 해임되거나, 예산 감축의 위협을 받고 있다. 대학 언론은 학교의 홍보지인가 아니면 대학 구성원을 위해 진실을 전달하는 소통 매체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다시 제기해야 현실에 직면한 것이다. 군사독재 시절 정권의 요구를 대변하던 학교당국·주간교수와 대학 언론인 사이의 갈등이 수십 년의 공간을 뛰어 넘어 21세기에 다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대학 언론을 둘러싼 갈등은 결국 학내 갈등으로부터 비롯한다. 학내 민주화를 요구하는 구성원과, 대학을 고등 교육을 위한 비영리재단이라기보다는 사유물로 생각하는 재단 사이의 갈등이 대학 언론의 비판적 내용을 둘러 싼 갈등으로 표면화하는 것에 불과하다. 즉 언론 본연의 기능이 억압받고 있는 것이다.
중앙대는 교지가 강제 수거되는 갈등을 빚었다. 2009년 '학교는 학생들의 것이 아니다'라고 얘기하는 형식의 총장 풍자 내용을 문제 삼아 교지를 수거한 후 중앙대는 교지 예산을 전액 삭감하는 조치를 취했다. 또 비록 공식 언론은 아니지만 현대차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주장하는 대자보는 현대차에 대한 간접 광고(?) 소지가 있다고 금지시켰다. 온갖 기업 광고가 난무하는 대학 벽보판의 현실 속에서 나온 기막힌 변명이다. 교양과목 폐지·등록금 문제 등을 언급하면서 재단과 관련 있는 두산을 거론한 것은 기업이미지 실추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금지시켰다. 소위 재단 이사장의 눈치를 본 것이리라.
▲ 지난 2010년 2월 중앙대 학생들이 교지 <중앙문화>, <녹지>에 대한 학교의 예산 전액 삭감 방침에 항의하며 '대학 언론 장례식'을 열고 있는 모습. ⓒ프레시안(선명수) |
같은 사립대라 하더라도 종교재단이고 신부가 총장인 가톨릭대까지도 총장을 비판하는 기사를 문제 삼아 주간 교수가 지난 5월 31일 신문 제작 일정을 전면 중단시켰다. 이 기사에 총장의 지도력을 비판하는 교수들의 목소리를 담았기 때문이다. 교수들이 비판하는 것은 실적 위주의 학사 행정, 신임 교수 '백지 계약서' 등의 내용이었다 한다. 내용 상 도저히 교육기관에서 벌어질 수 없는 일들에 대한 정당한 비판이지만, 백번 양보하더라도 논란의 소지가 있는 사항이니 비판을 전달하는 것은 언론으로서 당연히 수행해야할 기능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일 아닌가? 물론 주간교수는 내용이 아니라 시의성이 떨어지는 의미 없는 기획이라 막았다고 했단다. 정말?
건대에서는 <건대신문>의 등록금 관련 학생총회 무산 기사를 주간교수가 기사 가치가 떨어지니 실지 말라고 하면서 갈등을 야기하고, 건대 성폭행 사건 오보를 이유로 편집국장 해임을 통보하는 보복 조치를 했다고 한다. 사실 갈등이 겉으로 불거지는 학교는 그나마 다행이라는 역설도 생각해볼 수 있다. 얼마나 많은 대학의 언론이 주간교수의 검열 속에 대학의 홍보지로 전락하고 있을까?
대학 당국이 대학 언론을 대학 전체 구성원들의 언론이 아니라 그들의 언론이라 착각하고 있거나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런 잘못된 인식의 결과는 대학들이 예산을 지렛대로 대학언론을 탄압하는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다. 대학이 주는 예산으로 감히(?) 총장이나 재단을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가 깔려 있다. 대학의 예산이 총장이나 재단의 사유물일까? 또 학내 언론 구독료를 자율적 납부라는 방식으로 전환한 연세대,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가 자율납부안으로 전환한 중앙대 등은 또 다른 탄압 사례다. 일반인들에게 구독료는 당연히 자율적으로 납부해야 하는 것이라는 착시도 있을 수 있지만 원래 예산으로 집행했던 것을 구독료로 전환한 이상 구독료는 물리적으로 학보를 접할 수 없는 학생을 제외한 모든 학생이 내는 시청료 개념으로 보아야 한다.
예산 삭감을 경험했던 중앙대 교지 <중앙문화>는 당시 인쇄 재원을 위해 1인 광고라는 방식을 동원했다고 한다. 1974년 동아일보에서 정권이 중정을 앞세워 광고 탄압한 것에 대응해서 국민들이 광고 투쟁을 벌였던 광경이 재연됐다.
예산을 빌미로 간섭하고 탄압하는 학교 당국에 대응해서 자치 언론들이 등장하고 있다. 학교의 예산을 쓰지 않고 기업의 광고비로 발행하는 연세대의 <연세통>, 해임된 기자들의 주도 아래 사비를 털어서 2000부 정도를 발행하고 있는 국민대의 <국민저널>를 비롯해 성균관대의 <고찌(고급찌라시)>, 중앙대 <잠망경>, 숙명여대 <퍼블리카>, 경북대 <복현> 등의 자치언론이 등장하고 있다. 요즘에는 각 대학의 전현직 기자들이 중지를 모아 대학언론협동조합준비위원회를 띄웠다고 한다. 협동조합법 통과 이후 새로운 활로를 찾은 셈이다.
이들 자치 언론의 존재와 시도는 값지지만 그러나 이러한 시도가 대학 언론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다. 이런 활로는 대학언론은 누구를 위한 언론인가라는 본질적인 의문을 피해가기 때문이다. 대학 언론이 대학의 홍보매체가 아님은 물론이며, 언론에 관심 있는 학생들의 자치 활동이 아니라 대학의 민주적 운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언론'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대학 언론은 대학 구성원이 마련한 재원에서 그 예산이 집행되어야 정당하며, 그 운영에서는 언론이 갖춰야 할 기본 요건인 독립성을 전제로 한다. 그 기사의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하지만 사전 검열이나 통제가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 대학 언론은 대학 구성원 전체의 목소리를 담아야 하며 대학의 민주적 운영을 위해 자성의 기회를 제공해야 하는 것이 존재 이유다. 특정인에 대한 비판이 불허되는, 즉 성역을 인정하는 행위란 사실상 헌법이 금지하는 검열 행위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민주주의를 학습해야 하는 대학 현장에서 이런 일이 점점 더 빈번해지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나라 사학 문제와 궤를 같이 한다. 법적으로 비영리재단임에도 마치 설립자나 그 가족들 또는 특수관계인의 사유물인 양 운영되는 대학 현실과 이를 방조하는 교육 관계 당국 그리고 이런 현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일반 사회의 오해 등이 사학의 비리나 독단을 양산하고 있다. 이런 대학의 갈등이 이를 비판하려는 언론과 갈등을 빚는 양상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지금 나타나는 대학 언론의 갈등은 대학 언론인과 대학 또는 이를 대리하는 주간교수의 개인적인 갈등이 아니라 대학 모순의 발현이라는 뜻이다. 탄압받는 대학언론의 현실에서 사학 개혁의 필요성을 또 다시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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