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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멜로처럼 사르르 녹는 연탄불 '꼼장어'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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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멜로처럼 사르르 녹는 연탄불 '꼼장어'구이

[강제윤의 '통영은 맛있다'] <29> 바다의 갱, 장어

"장어(長漁)는 뱀처럼 머리를 잘라내지 않으면 죽지 않는다." 손암 정약전의 <자산어보> 기록이다. 과장이지만 그만큼 장어의 생명력이 강하다는 이야기다. 장어는 경골어류 뱀장어목의 몸체가 긴 물고기다. 뱀장어, 갯장어, 붕장어가 모두 장어 종류다. 흔히 먹장어(곰장어)도 장어라 부르지만 먹장어는 실상 어류가 아니다. 턱뼈가 없어 무악류로 분류된다.

회로 즐겨 먹는 아나고는 붕장어의 일본말이다. 일반적으로 바다 장어라고 하면 이 붕장어를 말한다. 붕장어의 속명(conger)은 그리스어 congros에서 유래했다. 구멍을 뚫는 고기란 뜻이다. 일본 이름 아나고(穴子) 역시 모래 바닥을 뚫고 들어가는 장어의 습성을 따서 붙여진 것이다.

장어류는 야행성이다. 그래서 어부들은 밤에 장어 낚시를 다닌다. 특히 붕장어는 다른 물고기들이 잠든 사이 습격해서 닥치는 대로 집어삼킨다. 그 난폭함 때문에 '바다의 갱'으로 불린다. 붕장어(아나고) 회는 다른 생선회와 달리 무채처럼 가늘게 썰어서 물기를 꼭 짜낸 뒤 먹는다. 괜히 그러는 게 아니다. 핏속에 있는 크티오톡신이라는 독을 제거하기 위해서다.

▲ 도시에서는 붕장어(아나고)를 회로 많이 먹지만 해안 지방에서는 구이로 즐긴다. ⓒ강제윤

요즈음은 바다 장어구이 집들이 많이 생겨 바다 장어구이가 친숙해졌지만 육지 사람들에게 바다 장어탕은 아직도 낮선 음식이다. 하지만 섬 태생인 나그네는 어릴 적부터 장어탕을 즐겨 먹었다. 밤에 나가 아침까지 장어낚시를 하면 보통 수십 마리씩 낚아오곤 했다. 생장어는 바로 손질해서 된장을 풀고 탕을 끓여먹었다. 보약이 따로 없었다. 나머지는 전부 다 배를 따서 장대에 매달아 말렸다. 그것을 두고두고 불에 구워먹었다. 그 고소한 맛은 잊을 수가 없다.

또 마른 장어를 쌀뜨물에 끓여먹기도 했다. 방송에 자주 소개되다 보니 도시 사람들도 이제는 마른 우럭탕이 별미란 사실 정도는 안다. 하지만 마른 장어탕을 맛본 사람은 손에 꼽을 것이다. 섬이나 해안 지방 사람들은 우럭이나 장어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생선을 말려두고 끓여먹거나 쪄서 먹었다. 지금도 여전히 섬과 해안 지방 사람들은 마른 생선 요리를 즐긴다. 생물과는 다른 깊은 풍미에 중독성이 크다.

통영의 장어탕과 내 고향 완도 지방의 장어탕은 끓이는 법이 다르다. 완도 지방에서는 된장을 많이 풀고 진하게 끓인다. 통영의 장어탕은 맑다. 장어가 익을 정도로 살짝 끓여낸다. 여수의 장어탕과 비슷하다. 나그네는 진한 맛의 완도식 장어탕이나 맑고 시원한 통영식 장어탕 어느 것이든 다 좋아한다. 장어가 워낙 맛있는 생선이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신선도다. 장어탕이든 장어구이든 살아 있는 싱싱한 장어로 끓이고 구워야 맛이 있다.

통영의 장어 집들은 늘 살아 있는 장어를 쓰는 까닭에 언제 먹어도 실패가 없다. 장어구이를 처음 접해본 사람들은 양념구이가 먹기 좋다. 마른 장어도 시들한 것이 아니라 싱싱한 것을 바로 말려야 맛있다. 건조한 다른 생선들 또한 마찬가지다. 마른 생선이라고 반가워서 샀는데 낭패를 보는 경우가 있다. 여러 날 두고 팔다 남은 '맛이 간' 생선을 말린 것이기 때문이다. 마른 생선을 살 때는 빛깔을 꼼꼼히 잘 살펴보고 냄새도 맡아보고 주의해서 사야 한다.

"사람도 물어 삼킨다"는 하모

통영에서는 여름이면 꼭 '하모'회를 먹어야 여름을 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통영에서는 여름철 하모회가 삼계탕이나 보신탕, 민어탕 같은 보양식으로 통한다. 예부터 장어는 보양이나 약용으로 많이 쓰였다. <자산어보>에도 "오랫동안 설사를 하는 사람은 이 고기로 죽을 끓여먹으면 이내 낫는다."고 했다.

나그네는 통영에 와서 하모회를 처음으로 맛봤다. 통영에서는 가늘게 썬 하모회를 야채와 곁들여 양념장에 싸먹는다. 회맛은 고소했다. 하지만 나그네의 입맛에는 양념이 너무 달다는 느낌이었다. 하모는 일본말이다. 우리말은 갯장어다. 하지만 하모란 말이 많이 쓰인다.

갯장어는 개장어, 개붕장어, 해장어 등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갯장어는 성질이 사나워 몸통을 잘라내도 머리를 쳐들고 물려고 덤빈다. <자산어보>에도 그 생김 때문에 "입은 돼지 같이 길고 이는 개와 같아서 고르지 못하다. 뼈가 더욱 견고하여 능히 사람을 물어 삼킨다"고 했다. 잘 무니까 조심하란 이야기다. 하모란 이름도 아무것이나 잘 무는 성질 때문에 '물다'라는 뜻의 일본어 하무에서 비롯됐다. 그만큼 에너지 넘치는 어류이니 보양식 대접을 받는 것이 아니겠는가.

▲ 야들야들하고 부드러운 연탄불 '꼼장어' 구이. ⓒ강제윤

무전동 연탄불 '꼼장어' 구이 골목

먹장어는 흔히 '꼼장어'라 부른다. 껍질을 벗겨놔도 살아 꼼지락거리는 그 생태 때문에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먹장어는 눈이 껍질에 파묻혀 밖으로 보이지 않으니 유순하고 멍해 보인다. 하지만 알고 보면 먹장어는 아주 나쁜 물고기다. 겉모습이 다가 아니다! 다른 물고기에 달라붙어 살을 파먹다 마침내는 몸속으로 들어가 살을 다 파먹어 뼈만 남게 하는 무서운 녀석이다. 그러니 사람이 녀석들을 먹는다고 미안해할 일은 아니다. 모든 생명은 다른 생명을 먹어야 살아갈 수 있도록 운명 지어져 있지 않은가.

먹장어는 지방마다 '꼼장어', 묵장어, 꾀장어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나그네의 고향인 보길도에서는 푸장어라 한다. '꼼장어'에서 묻어나는 끈적끈적한 풀 같은 것 때문에 생긴 이름일 것이다. 통영에는 중앙시장을 비롯한 곳곳에 '꼼장어' 집들이 있지만 특히 무전동 '꼼장어' 골목의 연탄불 '꼼장어' 구이는 일품이다. '꼼장어' 골목은 무전동 구 통영시외버스터미널 부근에 있는데 아직도 연탄불로 '꼼장어'를 구워주는 목로들이다. 옛날에는 그 부근에 나이트클럽이 있었다 한다. 새벽까지 나이트클럽에서 놀던 통영의 청춘들이 찾아들던 '꼼장어' 집들. 본래는 지금의 문화마당 앞 여객선 터미널 근처에 있었는데 여객터미널이 옮겨가면서 신도시가 들어선 이곳으로 옮겨왔다.

예전에는 골목 전체가 '꼼장어' 집이었지만 지금은 야간열차, 유람선, 내향 꼼장어, 삼수갑산 등이 '꼼장어' 골목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래도 '꼼장어' 구이의 맛만은 여전하다. 특히 소금구이 맛이 뛰어나다. 맛이 부드럽고 쫄깃쫄깃하면서 꼬들꼬들하다. 미끈한 맛 때문에 싫어하는 사람도 여기에서는 아주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소금 간을 하지 않아도 '꼼장어'는 간이 딱 맞다.

손질을 한 '꼼장어'는 민물에 씻지 않고 석쇠에 올려 즉석에서 연탄불로 구워준다. 양파와 당근을 썰어 바닥에 깔고 그 위에 구운 '꼼장어'를 올린 뒤 통깨를 뿌려서 내준다. 전혀 비린 맛이 없다.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다. 나는 통영식 연탄불 '꼼장어'를 통영의 이진우 시인과 그의 딸 지윤이가 중학교 3학년일 때 함께 가서 처음 먹어봤다. 이 시인은 술을 안 마시는 까닭에 혼자만 '꼼장어' 안주로 술을 마셨다.

▲ 산 '꼼장어'를 즉석에서 잡아 연탄불에 구워준다. ⓒ강제윤

노부부가 운영하는 '꼼장어'구이 집. 할아버지가 산 '꼼장어'를 잡아서 손질해주면 할머니는 연탄불에 굽는다. 할머니는 '꼼장어'를 구우면서 부채질을 하고 자주 뒤집어 준다. 부채질을 하는 것은 불길을 일으키려는 뜻이 아니다. 나쁜 냄새를 날려 보내려는 뜻이다. '꼼장어'의 지방이 불에 떨어지면 지방이 분해되며 유해가스가 발생한다. 이런 냄새가 '꼼장어'에 붙지 못하도록 날려버리는 것이다.

잘 구운 '꼼장어'를 접시에 담아 내주는데 양도 푸짐하지만 그 맛이 환상적이다. 지금껏 먹어본 '꼼장어'는 '꼼장어'가 아니었다! 전혀 다른 차원의 맛이었다. 굵은 산 '꼼장어'를 얇게 잘라서 구워냈다. 지윤이는 그 맛을 마시멜로 같다고 표현했다. 나그네는 촌스럽게도 마시멜로가 먹는 것인 줄 몰랐다. 지윤이가 설명해주고서야 알았다. 유감이지만 나는 여전히 마시멜로라는 사탕을 맛보지 못했다.

지윤이는 마시멜로처럼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다는 뜻에서 그리 말한 것이다. 지윤이는 쫄깃쫄깃하면서 꼬들꼬들한 이 맛을 또 꼬깃꼬깃하다고 표현했다. 식감에 딱 맞는 언어다. 시인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은 때문인지 지윤이의 언어 감각이 예사롭지 않다. 지윤이 덕분에 나는 생전 처음으로 꼬깃꼬깃한 맛을 알게 됐다. 나의 미각 언어도 그만큼 풍요로워졌다.

<안내>
강제윤 시인 포토에세이 <여행의 목적지는 여행이다>(호미) 출간 기념 시낭송회
일시: 2013년 6월 12일(수) 저녁 7시30분
장소: 소극장 '베짱이홀'(지하철 상수역 1번 출구, 02-322-4241)
참가 문의: 인문학습원(010-9794-8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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