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 이면도로에서 곱창집을 운영하는 A씨는 2010년 하반기에 권리금 2억7500만 원, 인테리어 비용 1억 원을 들여 지금의 장소에서 개업을 했다. 장사를 시작한 지 1년 동안은 손님이 들지 않아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1년이 지나면서 손님이 크게 늘어 지금은 성업 중이다. 그런데 요즘 A씨에게 커다란 근심거리가 생겼다. 임대인이 바뀌면서 임대인이 A씨의 계약갱신청구를 거절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에 의하면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임대인은 임차인의 계약갱신청구권을 거절하지 못하며 최장 5년간 이를 보장해야 한다.
문제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이 모든 상가임차인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단적인 예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은 서울의 경우 보증금이 3억 원을 초과하지 않는 상가건물 임차인들만 보호대상으로 한다. A씨가 영업을 하고 있는 건물의 새로운 임대인은 급기야 A씨를 상대로 명도소송을 구하였는데 A씨는 보증금이 상가건물임대차보호 범위 밖에 있다고 판단될 위험에 놓여 있는 상태다. 만약 법원이 A씨를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임차인으로 판단할 경우 A씨는 가게에 투자한 거의 모든 돈을 고스란히 잃고 쫓겨날 처지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지만 이건 정말 이상한 일이다. 어째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은 보증금의 상한을 정해놓고 그 이하의 임차인들만 보호하고 이를 초과하는 보증금을 가진 임차인은 배제시키는 것일까. 보호대상이 되는 보증금의 상한도 터무니없이 낮다. 보증금이 서울의 경우 3억 원 이하, 수도권정비계획법에 따른 과밀억제권역(서울제외)에서는 2억5000만 원 이하, 광역시(군지역과 인천제외), 안산, 용인, 김포, 광주시에서는 1억8000만 원 이하, 그 밖의 지역에서는 1억5000만 원 이하인 상가임차인만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의 적용이 되고 있는데 이는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것이다.
서울만 하더라도 서울시 상가 중 3/4이 보증금 3억 원 이상으로 법의 보호대상 밖에 존재한다. 특히 주의할 점은 보증금 이외에 차임이 있는 경우에는 월차임을 연12%의 금리를 적용하여 보증금으로 환산한 금액(월차임에 100을 곱한 수와 같다)을 보증금과 같이 보아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의 적용범위에 포함하도록 되어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보증금 1억 원에 월 200만 원이 차임인 경우, 1억 원 + 200만 원의 100배(2억 원) = 3억 원이 되어, 서울의 경우에만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의 적용범위에 해당하고 서울 이외의 지역에서는 위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게 된다.
서울시의 경우 3억 원의 임차보증금을 낸 상가건물임차인은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의 보호를 받는 반면, 3억100만 원의 임차보증금을 낸 상가건물임차인은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이게 납득이 가는 일인지 모르겠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보다 먼저 제정된 주택임대차보호법의 경우에는 보증금의 상한이 없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은 허술하고 문제가 많은 법이다. 이 법은 보호대상이 너무나 협애하고, 임대차계약 갱신 시 인상할 수 있는 임대료의 상한폭이 너무 높으며, 재건축 등으로 인해 보장되지 못하는 임차인의 계약갱신청구권에 대한 보상규정이 전혀 없고, 우선변제 받을 임차인의 범위가 좁고, 보장받는 보증금 액수가 너무 적은 등의 치명적인 난점들을 지니고 있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은 시급히 개정되어야 한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자영업자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가 임대인에게 현저히 기울어져 있는 임대차관계이기 때문이다. 수없이 많은 자영업자들이 불안정한 임차인 지위에 전전긍긍해하며, 치솟는 임대료에 신음하고, 재건축 등으로 인한 권리금 망실에 절망한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선의 출발점은 임대보증금의 상한을 없애 거의 모든 상가임차인들을 법의 보호 안으로 포섭하는 일이다. 대신 제외 업종(보호의 가치가 적은 사행업종, 임대인과 대등한 교섭이 가능한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등)만 명시하면 충분히 입법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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