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과 북한에서 단독정부가 각각 들어선 후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불과 2년도 되지 않은 기간 동안 38선 인근에서는 남한과 북한 사이에 숱한 무력충돌이 벌어졌다. 당시 신생 대한민국은 두개의 전선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하나의 전선은 38선 주변에 형성돼 있었고, 다른 하나의 전선은 남한 내 곳곳에 펼쳐져 있었다. 대한민국은 38선 인근에서 북한과 무력 충돌하는 한편, 영토 곳곳에서 준동하는 야산대(野山隊) 토벌에도 골몰하고 있었다. 49년이 되면 남한 내에 존재했던 야산대는 거의 소멸된다.
이제 대한민국은 북한과의 전투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북진통일의 일념으로 가득 차 있었던 남한군과 차근차근 전력을 증강시킨 북한군은 49년 여름 급기야 옹진반도 인근에서 연대급 전투를 벌이기에 이른다. 이 전투에서 얻은 자신감이 김일성과 북한 엘리트들로 하여금 전면 남침 결정을 내리는데 큰 역할을 한다.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전쟁은 한반도를 피의 수렁으로 몰아넣었고, 한국전쟁은 여전히 남한과 북한의 발전을 저해하는 질곡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전에 남한과 북한이 실질적인 교전상태였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의 상황은 49년과는 다르다. 남한과 북한 간에는 이렇다 할 무력충돌이 발생하지 않고 있으며 전면전이 발발할 가능성도 매우 낮다. 전면전은 북한에게는 김정은 체제의 종말을, 미국에게는 우방인 대한민국의 완벽한 몰락과 최우방인 일본에 대한 치명적 위험을 각각 의미하기 때문에 발발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다만 최근 벌어지고 있는 북한의 일련의 무력행사와 긴장고조행위가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겨냥한 것이라고 할 때 북한이 남한 등을 대상으로 한 국지적 도발을 할 확률은 무척 높아 보인다. 또한 국지적 도발을 위해 북한이 동원할 수 있는 군사적 옵션은 무궁무진하다.
분명한 것은 지금과 같은 남북 간의 대치국면과 긴장상황이 남한에 백만 배는 불리하다는 사실이다. 중국이 외면하지 않는 한 북한은 남북 간의 극한대치 국면에서 잃을 것이 거의 없다. 반면 북한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정치, 사회,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는 남한은 지금과 같은 비상(非常)상황이 일상(日常)이 되는 걸 감내하기 어렵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박근혜 정부는 지금이라도 공허한 언사를 남발하거나 사태를 수수방관할 것이 아니라 미국과 북한 간의 관계 개선을 통한 사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미국 오바마 정부와 북한 김정은 체제 사이의 중재자 겸 매개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기실 북한의 핵개발과 장거리 미사일 개발도 한미연합사에 비해 열세인 재래식 전력의 만회라는 목적과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지렛대라는 목적의 중첩된 목적을 지니고 있다.
지금은 박근혜 정부가 한가하게 오불관언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당장 박근혜 정부는 북한과의 대화를 시작으로 미북 관계 개선에 중재자로 나서야 한다. 자칫 실기해 북한이 군사적 도발을 하고 여기에 남측이 과잉대응을 하는 경우, 통제불능의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다. 상대방이 있는 무력의 사용은 그 속성상 에스컬레이션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별로 없다. 박근혜 정부는 결단하고 행동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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