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의 실질적인 오너인 이건희 회장이 삼성생명과 삼성전자 등으로부터 1200억 원이 넘는 현금배당을 받을 것이라고 한다. 이건희 회장(이하 직함 생략)은 매일 3억3000만 원을 써야 올해 받은 현금배당금을 다 소비할 수 있다. 이건희가 보유한 삼섬그룹주의 시가총액이 12조 원을 넘었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런가 하면 대형 마트에서 하루 10시간씩 내내 서서 일해도 150만 원 미만의 급여를 받는 사람들이 지천이다. 전 재산에다 빚까지 얻어 낸 카페를 재건축으로 인해 통째로 날릴 위기에 놓인 가장도 있다. 그 가장은 지금 건물주를 상대로 절망적인 싸움을 벌이고 있다. 변두리에서 카페 얻을 보증금이라도 보전받기 위해서 말이다. 임대차 계약을 체결할 당시 건물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미리 고지하지 않은 건물주의 행동은 도덕적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위법하지도 않다. 노동시장에 아예 진입조차 하지 못하는 청춘들이 거리 한 켠에서 시들어가고 있다. 이들에게 연애와 결혼은 다른 나라 이야기다.
무언가 심각하게 잘못돼 있다. 이건희가 벌어들이고 있는 천문학적인 부가 그의 재능과 노력과는 무관한 것처럼, 그 반대편에서 고통으로 신음하는 사람들의 불행도 그 사람들의 재능과 노력과는 크게 상관이 없다. 백보 양보해 이건희가 남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나다 해도 이건희가 남보다 1만 배 (누군가가 받은 연봉 1200만 원과 이건희가 올해 받을 배당금 1200억 원의 차이) 혹은 10만 배 (누군가의 전 재산인 전세보증금 1억2000만 원과 이건희가 보유한 삼성그룹주 12조 원의 차이) 뛰어날리 만무하다. 그건 누구도 불가능하다.
핵심은 '출생'이다. 누구의 자식으로 태어났는가가 그 사람의 운명을 거의 결정짓는다. 후천적인 노력은 출생의 규정력을 전복시키기 어렵다. 이건희는 대한민국 제1의 부자인 이병철의 아들로 태어나 삼성그룹의 경영권을 승계했기에 남들이 감히 넘볼 수 없는 부를 누리는 것뿐이다.
게다가 그가 누리는 부의 아주 큰 요인, 어쩌면 가장 큰 요인은 국가와 사회의 지원과 협력과 인내다. 국가와 사회의 전폭적 지원과 협력과 인내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삼성이 존재할 리 만무하다. 출생이 개인의 운명을 거의 규정짓는다고 전제할 때 자산과 소득에 대한 차등과세와 누진세는 출생의 불평등을 교정할 지극히 정당한 정책수단으로 승인되어야 마땅하다. 토지에서 발생하는 지대(임대료)나 배당, 주식양도차익 등의 불로소득에 대한 과세야 더 말할 것이 없다.
출생의 불평등을 교정할 세제를 완비해 마련된 재원을 가지고는 대한민국 국민 누구에게나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기본소득은 국민이라면 누구나 아무런 조건 없이 지급되는 급부로, 사회적 기본권을 구체화시키는 정책수단일 뿐 아니라 인간적 존엄을 실질적으로 구현하는 최적의 도구다. 뿐만 아니라 기본소득의 지급을 통해 실질적인 평등도 크게 진전될 것이다.
국민경제 차원에서도 기본소득은 긍정적이다. 소득이 늘어나는 국민들이 지출을 늘리면 내수경제가 살아날 것이고, 생산가능인구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지금과 같이 저임금 근로와 한계 상황의 영세자영업에 뛰어들 유인이 줄어들게 되어 노동시장 및 영세 자영업 시장의 과당경쟁도 일정 부분 해소되는 효과가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출생은 전적으로 운(運)의 영역이다. 이건희처럼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참혹하기 이를 데 없는 처지를 천형처럼 안고 태어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좋은 혹은 돈 많은 부모를 만난 행운으로 인생을 너무나 편하게 하는 것이 정의롭지 않은 것처럼, 나쁜 혹은 지독하게 가난한 부모를 만난 불운으로 인생을 불우하게 사는 것도 부당하다.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운을 인간이 만든 제도와 법률로 어느 정도 공평하게 나누는 건 정의롭다. 기본소득은 통제불가능의 영역에 있는 운을 나름 공평하게 분배하는 장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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