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당선인이 평소 '법치주의'와 '대통합'을 핵심 기조로 삼아 인선 작업을 벌여왔다는 점에서 또 다시 법관 출신 인사들이 물망에 오르지만, 전직 법관의 총리 발탁이 3권 분립을 저해하고 사법부의 권위를 떨어뜨린다는 비판도 높아 향후 박 당선인의 선택이 주목된다.
김용준과 대비되는 김능환의 '소신'
당장 이런 비판은 총리 하마평에 오르내린 당사자의 입에서도 제기됐다. 대법관 출신으로 진작부터 총리 후보군으로 거론돼온 김능환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30일 "대법관을 지낸 사람이 또 다른 조직에서 직책을 맡을 수는 없다"며 공개적으로 쐐기를 박았다. 전직 최고 법관이 행정부의 2인자가 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논리다.
▲ 김용준 인수위원장의 낙마로 최근 새 총리 후보 물망에 오른 김능환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30일 '총리직 고사'의 뜻을 분명히 했다. ⓒ뉴시스 |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작심한 듯 "중앙선관위는 헌법 기관으로서 대통령 선거 등 모든 공직선거를 관리하는 자리이자, 현직 대통령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하는지에 대해 늘 감시해야 하는 자리"라며 "어떻게 그런 자리에 있던 사람이 대통령의 지휘를 받아서 총리의 자리에 앉을 수 있겠느냐"고도 반문했다.
사법부 수장의 행정부 '이직', 문제는?
김능환 위원장의 이 같은 언급은 대법관 출신인 김용준 위원장의 낙마 이후 자신을 포함한 또 다른 대법관 출신 인사들이 총리 후보로 지명돼선 안 된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우리 헌법은 국회와 대법원, 헌법재판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정부와는 독립된 별도의 헌법기관으로 인정하고 있다.
현재 하마평에 오르는 대법관 출신 인사들은 김 위원장 외에도 안대희 전 중앙선대위 정치쇄신특별위원장, 조무제 전 대법관 등이 있다. 일부에서 유임론이 제기되는 김황식 총리 역시 대법관 임기를 절반 이상 남긴 상태에서 총리로 발탁됐었다.
이런 비판은 대법관·헌법재판소장 출신인 김용준 위원장이 첫 총리 후보로 발탁될 때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개인의 능력과는 별도로 사법 기관의 수장을 지낸 인사가 국무총리로 기용되는 것이 3권 분립을 존중하는 헌법 정신에 맞는가 하는 논란이 대두됐던 것.
사법부의 수장이 행정부의 2인자 자리로 가는 것은 사법부의 권위를 떨어뜨린다는 지적도 나와,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을 지낸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는 지난 28일 "헌재소장을 지낸 분이 총리를 다시 한다는 게 순리에 맞느냐"며 "헌재소장 출신이 임명직 공무원을 한다면 헌법재판소의 권위와 지위에 상당히 흠을 입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번에도 법관 출신?…박근혜, 두 번째 선택은?
김능환 위원장의 '공개 총리직 거부' 선언으로, 박근혜 당선인 입장에선 선택지가 하나 더 줄어들게 됐다. 김용준 위원장이 부동산 투기 및 아들 병역 의혹 등으로 낙마하면서, 당초 정치권에선 '청백리' 대법관으로 유명했던 김능환 위원장을 유력한 총리 후보자로 거론해 왔다. 그는 대법관이던 지난해 3월 공직자 재산 공개 당시 신고 재산이 2억여 원 정도로, 집 한 채를 제외하곤 재산이 거의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2006년 대법관 인사청문회 당시엔 "퇴임 후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고 동네에 책방 하나 내고 이웃 사람들에게 무료 법률 상담을 해주면서 살고 싶다"고 밝혔다. 그의 부인 역시 지난해 여름 김 위원장이 대법관에서 퇴임하자 강북에 작은 편의점과 채소가게를 열어 화제가 된 바 있다.
김용준 위원장의 사퇴 후 '도덕성'이 후보자 인선의 가장 큰 기준으로 부각되면서, 박 당선인이 '법치 총리'라는 컨셉트를 포기하고서라도 '청빈형 인물'을 찾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사상 초유의 첫 총리 후보 낙마로 이미 이상적인 정부 출범 스케줄이 무너져 버린 상황에서, 정치적 효과는 다소 포기하더라도 전방위적 검증을 통과할 만한 '무난한 인사'를 최우선적으로 찾겠다는 것이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는데…총리 '구인난' 심각
그러나 김용준 위원장의 낙마 이후 '총리 구인난'이 더 심해졌다는 평도 나온다. 김 위원장이 검증의 벽을 넘지 못하고 불명예 사퇴함으로써, 가뜩이나 적은 후보군이 더욱 "몸을 사리게 됐다"는 것이다.
박 당선인은 김용준 위원장에 앞서 몇몇 인사들에게 총리직을 제안했으나, 여러 이유를 대며 고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 인수위 관계자는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가 총리라고 하지만, 생각보다 욕심을 내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며 "한 마디로 구인난"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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