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남일당에서 끔찍한 일이 발생한 지 벌써 만 4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발생한 '용산참사'는 이명박 정부의 잔여 임기 동안 벌어질 일들에 대한 예고나 징조였다.
임기 초반에 중산층이었던 시민들을 폭도 혹은 도심 테러리스트로 몰아 소탕한 이명박 정부는 임기 내내 재벌과 소수의 부동산 부자들만을 위한 정책을 초지일관 밀어붙였다. 이명박 정부 아래서 재벌과 부동산 부자들은 더욱 살이 쪘고, 대다수의 중산층과 서민들의 삶은 팍팍해졌다. MB가 다스리는 대한민국에서 재벌 총수와 부동산 부자들의 기본권과 중산층과 서민의 기본권은 동등하게 취급되지 않았다. 2009년 초의 엄동에 용산에서 벌어졌던 일이 범위와 유형과 강도를 달리해서 대한민국 전체에서 재연됐다. 용산 남일당은 대한민국의 축소판이었던 셈이다.
'용산참사'로 불리는 일련의 사태는 세 가지 층위에서 아직도 진행 중이다. 먼저 사건으로서 '용산참사'의 실체적 진실이 아직도 전혀 혹은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물론 '용산참사'에 대한 검찰의 수사와 기소, 법원의 재판은 종결됐다. 사법 절차는 끝난 것이다. 하지만 '용산참사'의 실체적 진실이 밝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재판 과정에서 검찰의 기소 내용의 문제점(그것도 사건의 본질에 해당하는)이 수없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사건으로서 '용산참사'의 실체적 진실은 아직도 감옥에 갇혀 있다. 용산참사로 인해 구속된 수감자들과 함께.
도심 재생 사업을 추진함에 있어 소유권 절대주의에 기반을 둔 제도와 법률이 온존하는 것도 '용산참사'가 현재진행형이라는 증거 중의 하나다. 4년 전 용산 남일당에 올라가 농성을 벌인 시민들의 선택은 용역깡패들에게 쫓긴 결과였다. 정든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빼앗긴 데 대한 보상도, 각종 영업권에 대한 적절한 보상도 보장하지 않고 법을 들이대며 폭력적으로 구축하려는 자본과 용역깡패들에게 시민들이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은 남일당에 오르는 길뿐이었다. 그 대가는 다들 알다시피 너무나 가혹했다. 이해관계가 난마처럼 얽힌 도심 재생 사업의 방향을 일거에 바꾼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다만 엄정하고 합리적인 기준과 정밀한 로드맵을 마련해 주거권과 영업권 등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하고, 공공의 역할을 늘리는 방향으로 도심 재생 사업의 방향을 바꾸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용산참사'를 외면했던 시민들의 집단적 심성이 4년 동안 변화되었는지도 의문이다. '용산참사'에 냉담했던 시민들의 태도는 불과 몇 개월 후에 일어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쏠린 집단적 추모 열기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국가 폭력이 불법적으로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시민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음에도 왜 절대 다수(그중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사에 애통했던 수많은 시민들도 대부분 포함된다)의 시민들은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거나 침묵을 지켰을까? 혹시 부동산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를 은밀히 나눠가졌거나(이기적 탐욕) 용산 철거민들과 자신은 다르다(차별과 배제 원리의 내재화)고 생각했기 때문은 아닐지?
분명한 것은 '용산참사'를 가능케 했던 법률, 시민들의 집단적 심성과 문화, 공정하지 않은 사법 체계가 건재한 한 '용산참사'는 더 음험하게, 형태를 달리하여 계속 발생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남일당을 태우던 화마는 아직도 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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