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달 전에는 뼛속까지 쇄신할 테니 표를 달라고 구걸하더니 이제는 배 째라는 식입니다. 바뀐 게 하나도 없습니다. 가장 엽기적인 것이 '국회의원 연금'입니다. 그동안 여야는 총선과 대선 과정에서 국회의원 연금을 폐지하겠다고 여러 차례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대선이 끝나자마자 사이좋게 이 참담한 제도를 유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2. 국회의원 연금은 어떤 사람들에게 얼마씩 주는 건가요?
⇨ 국회의원 연금은 65세 이상의 전직 의원들에게 월 120만 원씩 지급되는 연금입니다. 국회의원을 단 하루만 해도 평생 이 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일반인은 월 120만 원의 연금을 받으려면 월 30만 원씩 30년을 납입해야 하는데, 전직 국회의원들은 납입금이 전혀 없이 국민들의 고혈을 빼 가고 있습니다.
3. 선배들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존경 때문 아닐까요?
⇨ 그렇게 선배들을 사랑하고 존경하면 세비에서 갹출하는 게 원칙입니다.
4.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정부안보다 3700억 원 증액한 것도 황당했습니다.
⇨ 대선 과정에서 이들은 SOC 지출 축소와 재정 개혁으로 매년 10조 원 이상을 확보하겠다고 공약했습니다. 그런데 10조 원 감축은커녕 오히려 3700억 원을 증액했습니다. 특히 여야 정당의 지도부는 자신들의 지역구 토건 예산을 크게 늘렸는데요. 여야 정당 지도부 8명은 자신들의 지역구 예산을 정부안에 비해서 1000억 원 이상 증액했습니다. 여야 지도부가 나서서 구태를 선도한 겁니다.
5. '쪽지 예산'도 가장 많은 해였다고요?
⇨ 국회의원들이 예결위 위원들에게 특정 사업과 관련된 '청탁'을 쪽지에 써서 전달하는 관행이 '쪽지 예산'인데요. 평년에는 2000~3000여 건이었던 것이 올해에는 역대 최대 규모인 4500여 건에 달했습니다. 국회의원 1인당 평균 15건씩 예산청탁을 한 겁니다.
6. 대선 과정에서 여야는 국회의원 세비를 30% 감축하겠다고 공약했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나요?
⇨ 일부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세비 30% 삭감 법안은 관련 상임위원회에 상정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국민들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들에게 반 푼어치라도 쇄신 의지가 있는지.
7. 전체 복지 예산 총액은 정부안에 비해서 3000억 원 정도 늘었는데, 일부 서민 복지 예산은 오히려 줄었다고요?
⇨ 기초수급자의 의료비 보조금이 2800억 원 삭감되었고, 건강보험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예산이 3200억 원 삭감되었습니다. 여야 정당의 보편복지 지향 속에서 저소득층의 복지가 줄어든 케이스인데요. 여야 정당은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보편복지와 선별복지를 적절히 전략적으로 결합해야 할 것입니다.
8. 보편복지와 선별복지를 전략적으로 결합한다는 것은 안철수 전 대선후보가 자신의 책, <안철수의 생각>에 담은 핵심 화두 아닌가요?
⇨ 맞습니다. <안철수의 생각>은 상당히 흥미로운 책입니다. 책 내용 중 90%를 진보진영 지식인들의 생각으로 채우고, 나머지 10%를 이들과 약간 다른 자신의 소신으로 채웠습니다. 제게는 90%보다는 10%가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보편복지와 선별복지를 전략적으로 결합한다는 것도 이 중 하나입니다.
9. <안철수의 생각>의 90%가 진보진영 지식인들의 생각으로 채워졌다고 하면 안 전 후보가 동의할까요?
⇨ 아마 동의할 겁니다. 그는 수도 없이 "국민들의 뜻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역설해왔습니다. 여기에서 국민들의 뜻은 진보와 중도의 뜻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평소 소신(중도진보적인 소신)을 고집하기보다 자신보다 더 왼쪽에 있는 진보의 뜻을 존중하려 애를 쓴 겁니다. 그리고 그 노력의 결실로 <안철수의 생각>이 나온 겁니다.
10. 안 전 후보가 중도진보라는 근거가 있나요?
⇨ "이념보다도 상식이 더 중요하다"고 자주 역설해왔다는 점, 박원순과 문재인에게 후보 자리를 양보했다는 점, 이 두 가지가 그의 소신이 중도진보에 있음을 증명합니다. 그는 김성식 전 의원과 가장 유사한 이념적 지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11. 법륜 스님은 안 전 후보로 단일화되었다면 진보가 이겼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 법륜 스님의 주장이 맞다고 봅니다. 안 전 후보로 단일화되었다면 진보가 이겼을 겁니다. 그럼에도 저는 개인적으로 문재인 후보로 단일화되기를 바랐습니다. 집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집권 후에 성공한 정권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안 전 후보와 주변 인사들은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미숙함을 노출했습니다. 이런 미숙함으로는 집권해도 결코 성공한 정권이 될 수 없습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안 전 후보가 대단한 학습능력을 가졌다는 겁니다. 재보선에 나가 승리하고 국정경험을 쌓는다면 5년 뒤 대선에서 승리하여 성공한 정권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12. <안철수의 생각>에 담긴 핵심 화두는 보편복지와 선별복지를 전략적으로 결합한다는 것인데요. 이 화두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해야 하나요?
⇨ 저는 그의 생각에 100% 동의합니다. 솔직히 저는 지난해 하반기 민주당이 '무상복지 시리즈'를 내놓았을 때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이 시리즈의 핵심은 보편적 복지를 확대한다는 것인데, 유감스럽게도 제가 가지고 있는 통계들은 우리나라가 보편복지 과소국가가 아니라 과잉국가라는 것을 시사하고 있었습니다.
13. 우리나라가 보편복지 과잉국가라는 근거가 있나요?
⇨ 조세연구원에 성명재 박사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조세연구원 내에서는 가장 진보 쪽에 가까운 사람입니다. 그가 2008년에 내놓은 <조세·재정지출의 소득재분배 효과>라는 보고서를 보면 흥미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 보고서는 통계청의 <가계조사> 원자료를 활용한 것인데요. 이에 따르면 2006년 한 해 동안 소득 최하위 10% 계층은 정부와 공공기관으로부터 연간 414만 원의 복지혜택을 받은 반면 최상위 10% 계층은 842만 원의 복지혜택을 받았습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은 우리나라 복지 중에서 교육 복지와 건강보험 복지, 그리고 공적연금 복지 등 보편적 복지 비중이 유난히 크기 때문입니다.
▲ (주-1) 2006년 기준 (주-2) 1분위 : 최저소득층, 10분위 : 최고소득층 ⓒ성명재 외(2008), <조세·재정지출의 소득재분배 효과> 자료 재구성 |
▲ 2006년 기준 (주-2) 1분위 : 최저소득층, 10분위 : 최고소득층 ⓒ성명재 외(2008), <조세·재정지출의 소득재분배 효과> 자료 재구성 |
14. 정부와 공공기관 예산에서 보편복지 비중은 어느 정도 되나요?
⇨ 복지는 크게 교육 복지와 협의의 복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 중 지난해 교육복지 투자액이 45.5조 원인데 대부분 다 보편복지입니다. 협의의 복지를 보더라도 보편복지 비중이 매우 큽니다. 복지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건강보험 복지인데 지난해 건강보험 지출액이 40조 원에 육박합니다. 이것도 대부분 보편복지입니다. 그 다음으로 비중이 큰 것이 공적연금 복지인데 지난해 그 지출액이 31조 원에 달합니다. 이것 역시 보편복지입니다. 막연하게 우리나라를 '선별복지 과잉, 보편복지 과소' 국가라 치부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15. <경향신문>이 최근 보도한 바에 따르면 대학 등록금을 소득에 따라 차등 지원하는 것에 대해 국민들 중 2/3가 찬성했다고 합니다.
⇨ 국민들이 현실을 제대로 본 것입니다. <경향신문>이 지난 1일 보도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학 등록금을 소득에 따라 차등 지원하는 것에 대해 국민들 중 68.7%가 찬성했습니다. 반면 소득과 무관하게 반값 등록금을 지원하는 것에 대해서는 29.6%만이 찬성 의견을 냈습니다.
16. 소득 차등화 반값 등록금과 소득 무관 반값 등록금의 양극화 해소 효과는 얼마나 다른가요?
⇨ 같은 액수를 지원하는 경우 소득 무관 반값 등록금의 양극화 해소 효과는 소득차등 반값 등록금의 해소 효과의 절반에 불과합니다. 보통 진보진영은 보수진영보다 훨씬 더 양극화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런데 진보진영이 지나치게 보편적 복지를 강조한 나머지 양극화 해소 효과에 대한 고민이 적어진 느낌입니다. 2011년 우리 사회 상위 10% 계층의 가구소득은 1억430만 원에 달한 반면, 하위 10% 계층은 998만 원에 그쳤습니다.
17. 정부 복지 지출의 양극화 해소 효과는 어떻게 측정하나요?
⇨ 정부 복지 지출 등 소득재분배 정책의 양극화 해소 효과는 시장소득 지니계수와 가처분소득 지니계수 차이로 측정됩니다. 여기에서 지니계수는 널리 통용되는 소득분배 불평등지수 중 하나이고, 시장소득 지니계수는 정부의 소득재분배 정책이 영향을 끼치기 전의 지니계수를 말하며, 가처분소득 지니계수는 정책 영향이 나타난 이후의 지니계수를 말합니다. OECD에 따르면 2000년대 후반 우리나라의 소득재분배 정책을 통한 지니계수 개선율은 8.7%로 34개 회원국 중 멕시코, 칠레에 이어 세 번째로 낮은 수준이었습니다. OECD 평균(31.3%)의 1/4 수준입니다.
▲ (주) 소득재분배 정책을 통한 지니계수 개선율 = [(시장소득 지니계수-가처분소득 지니계수)/시장소득 지니계수] x 100 |
18. 같은 액수의 소득 차등화 보편복지와 소득 무관 보편복지를 비교할 경우, 전자가 지니계수 개선율 OECD 평균에 근접하는 속도가 후자보다 2배 빠르다는 것인가요?
⇨ 그렇습니다.
19. 일부 진보 지식인들은 보편적 복지를 우선시해야 고소득층이 거부감 없이 세금을 낸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 그 정도 근거로 대다수 국민들을 설득할 수는 없습니다. 그 정도 근거로 68.7대 29.6인 소득 차등화 반값 등록금과 소득 무관 반값 등록금의 지지율을 역전시킬 수 없다는 뜻입니다.
20. 국민들이 압도적으로 소득 차등 반값 등록금을 지지한 이유가 뭘까요?
⇨ 국민들이 냉철한 직관을 통해 소득 차등 반값 등록금이 옳다는 것을 알아차린 겁니다. 민주통합당이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국민들 중 절반이 문재인 후보에게 표를 준 것은 민주통합당의 묻지마식 '무상' 구호가 옳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들이 문 후보를 지지한 것은 이명박 대통령의 실정에 너무나 화가 났고, 또 박근혜 후보가 그를 닮았기 때문입니다.
21. 국민들은 압도적으로 무상급식을 지지했습니다.
⇨ 국민들이 의무교육비로 2~3조 원 더 투자하자는 데 동의해 준 겁니다. 그러나 30조 원 이상의 복지를 무상으로 공급하자고 하면 대다수 국민들은 반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국민들은 재원 조달이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또 같은 액수를 지원하는 경우 소득 무관 보편복지의 양극화 해소 효과가 소득 차등 보편복지보다 작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22. 민주통합당이 국민의 사랑을 받으며 재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지난달 27일 <한겨레>의 송채경화 기자는 기사에서 박·문·안 캠프에 대해 "객관적이고 냉철한 사람도 조직 논리에 물들어 자신들만 옳다고 할 때는 집단최면 걸린 종교집단" 같았다고 술회했습니다. 정확한 지적입니다. 민주통합당이 재기하려면 가능한 한 빨리 '집단최면'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또 뼛속까지 반성하고 뼛속까지 패배 원인을 분석하며 뼛속까지 쇄신해야 합니다. 그럴 각오가 없다면 안 전 후보에게 당을 헌납하는 게 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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