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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황장수 토론, 주최 측이 문제다

[기고] 주최 측, 토론 규칙 만들고 양측 동의 얻어내는 절차 거쳐야

내게 있어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것 중 하나가 '토론'이다. 발언 시간과 발언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진다면 토론만큼 즐거운 것도 드물다. 상대방의 발언 중에서 동의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해 주고, 다른 것에 대해서는 반론을 제기하면 된다.

토론과 논쟁을 자주 하다 보면 노하우도 생긴다. 상대가 충분한 근거를 제출한 것에 대해서는 빨리 동의해 주고 넘어가는 것이 좋다. 또 양측의 근거가 팽팽하게 맞서는 것에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는 것이 좋다. 토론에서 이기려면 상대의 근거가 빈약하고 나의 근거가 충실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켜야 한다.

그러나 간혹 발언 기회가 공평하지 않은 토론을 의뢰받는 경우도 있다. 이런 토론은 거부하는 게 상책이다. 1대3의 토론을 하고도 이기면 멋질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런 토론은 관객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토론자에게는 관객에게 시간 낭비를 안겨주지 않을 의무가 있다. 1대3의 토론은 진실보다는 누군가를 '왕따'시키고 싶어 하는 인간의 저질스러운 내면의 욕망을 이끌어낸다.

지난 18일 인터넷으로 중계된 진중권 동양대 교수와 황장수 미래경영연구소 소장의 토론을 보았다. 이 토론은 발언 시간과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는 토론이 얼마나 엉망으로 전락할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이런 토론은 애초부터 시작하지 않는 게 좋다.

토론을 할 때 가장 짜증나는 토론자는 다른 사람의 발언 시간과 기회를 빼앗는 사람이다. 그런데 진중권-황장수 토론은 주최 측이 애초부터 그것을 무한정 허용하고 있었다. 명분이 무엇이었을까? 유일한 명분은 지상파와 자신들이 다르다는 것이다. 지상파와 다르기 때문에 그것이 무한정 허용되어도 되는 것일까?

자유와 절제의 균형은 우리의 영원한 숙제다. 방송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일부 중소 방송사들은 대·중소기업의 상생을 위해서 대기업의 절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도 자신들의 방송에는 무한한 자유를 달라고 한다. 모순이다. 대기업에게도 절제가 필요하고 중소기업에게도 절제가 필요하다.

▲ '사망유희' 진중권-황장수 토론. ⓒ곰TV 화면 캡처

'사망유희 토론'이 내실 있게 진행되려면 사전에 토론 규칙 정해야

진중권 교수와 다수의 보수논객들이 참여하는 '사망유희 토론'이 내실을 거두려면 양측이 사전에 만나서 몇 가지 토론 규칙을 정하고 이를 준수해야 한다. 나는 지상파 방송 토론을 할 때 한 번 정도 상대방 말을 끊고 끼어들기를 하는 것을 개인적인 원칙으로 삼고 있다. 그게 약간 있어야 시청률이 올라간다고 하니 한 번 정도 일탈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상은 상대방과 관객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본다.

인터넷 방송은 지상파와 달리 사적 공간의 의미가 강하기 때문에, 100분 토론에 2~3차례 끼어들기를 하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그러나 진행자가 잦은 끼어들기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 또 끼어들기가 몇 차례 허용된다 하더라도 진행자는 발언 기회와 시간이 공평하게 배분되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

또 진행자는 토론자의 한 차례 발언시간이 1~4분 범위를 벗어나지 않도록 유도해야 한다. 1회 발언시간이 너무 길면 지루하고, 너무 짧으면 근거를 가진 사람보다 입담이 센 사람이 유리하다. 그리고 입담이 센 사람이 유리한 토론은 반드시 저질화된다.

진중권-황장수 토론의 진행을 맡은 이상호 기자는 이번 토론이 마치 국회의원들의 (막장) 토론 같았다고 말했는데, 그 원인의 90% 이상은 주최 측에 있다. 토론 규칙이 엉망이면 대부분의 토론은 그처럼 질이 낮아진다.

물론 주최 측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토론자들이 그것을 원했으므로 그것을 존중했다고 항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토론자들이 원한다고 그대로 방송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이 토론 시리즈에 동의한 진중권 교수와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는 그동안 감정적으로 격하게 대립해 왔다. 이런 사람들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 머리 맞대고 토론 규칙에 대해 상의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토론 규칙은 방송사에서 만들고 양측의 동의를 얻어내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토론을 시청자들에게 선물할 수 있다. 다음 토론은 어떻게 진행될까. 주최 측의 많은 변화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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