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성적과 관련된 자살은 결손가정이나 경제적으로 가난한 집 학생들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모든 가정의 문제이다. 특히 중산층 자녀들, 부모들이 열심히 뒷바라지 하면서 성적을 독려하는 그러한 가정에서 빈발한다. 한 예로 대구에서 학생자살이 빈발하는 수성구는 아파트가 많고 상대적으로 잘사는 동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심각한 것은 그것을 그냥 반복되는 일상적인 일로 간주하면서 무덤덤하게 살아간다는 점이다. 이제라도 우리는 현재의 우리의 교육경쟁 시스템에 심대한 문제가 있다는 점, 그리고 뭔가 근본적인 대책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이제라도 심각하게 우리 모두가 인식해야 한다.
야권 후보들의 새로운 정책들
이러한 심각성에 비추어, 다행스럽게 야권후보들이 이번 대선에서 이전에 비해 전향적인 정책들을 내놓고 있다. 개혁적 전문가들이 각 캠프에 결합하면서 그동안 교육운동단체에서 주장하던 내용들(☞관련 내용 바로 가기)이 대선공약에 포함되게 된 것으로 보이며 이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 (왼쪽부터)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안철수 무소속 후보. ⓒ연합뉴스 |
구체적으로, 문재인과 안철수는 모두 입시 지옥과 교육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대학 입시 제도를 단순화하고 기회균등 선발제를 확대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문재인의 경우, 고등교육 재정을 GDP 1%로 확대하는 것, 국가교육위원회 등을 공약하였다. '행복한 중2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공교육 12년 동안에 1년 정도는 공부를 쉬고 진로를 찾는 특이한 공약도 제시하였고, 지금처럼 획일적인 일제고사를 개선하겠다고 하는 공약도 내걸었다. 여기에 국립대 공동학위제도 제안했다. 이는 2007년 대선에서 정동영 후보의 공약에서부터 선을 보이기 시작한 것으로서 긍정적인 것이다. 안철수 후보의 경우 외국어고, 국제고, 자립형 사립고의 학생우선 선발권을 없애는 방안, 지역별 거점대학과 특성화 혁신대학을 육성하고 지역고용할당제를 실시하는 방안, 정부책임형 사립대를 각 대학 희망에 따라 실시하는 방안 등을 내걸었다. 이러한 정책들은 기존에 교육운동단체들이 주장했던 것들로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안철수 후보 진영에서 '정부책임형 사립대'의 정책을 수용한 것은 긍정적이다.
야권의 중심적인 후보는 아니지만, 심상정 후보는 훨씬 근본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 즉 서울대의 대학원 중심대학 전환, '대학 통합네트워크' 구축, 수능, 대입자격시험 전환, 사교육 축소 4대 긴급조치 실시, 혁신학교 전국적 보편화, 특목고·일반고로 전환, 학력·학벌차별 금지, 실업고·전문대 직업교육 연계체제 구축 등을 공약으로 제시하였다.
과잉경쟁과 '경쟁의 왜곡'을 혁파하는 접근법이 필요
이런 변화는 긍정적이다. 그런데 나는 특정한 정책들을 도입하는 관점이 아니라, 정책패러다임을 전환하고 구조전환을 한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고 본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더라도 기존의 정책패러다임과 기존의 구조 내에서 작동할 때, 사태를 해결하지 못하거나 사태를 악화시킬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나는 교육정책의 변화는 '과잉경쟁'과 '왜곡된 경쟁'구조를 혁파하는 접근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무엇보다, 1인당 국민소득이 1000달러 정도 수준이던 1960·70년대 한국의 초기산업화 단계의 교육경쟁 모델이 고착되고 왜곡된 상태에서 그것이 1인당 국민소득이 2500달러인 시대에 아무 변화와 혁신 없이 관성적으로 진행됨으로써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초기산업화 단계의 교육경쟁시스템이 현재의 높은 산업화단계에서는 이미 부정합상태에 있다. 이것은 단지 교육만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모든 부문에서 다 문제가 된다. 이 점에서 나는 대선 후보들이 교육경쟁의 패러다임적 전환에 대해서 더욱 더 단호하고 급진적인 생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해결의 통로가 열린다고 생각한다.
자기 파괴적인 경쟁
먼저 자기 파괴적인 과잉경쟁에 대해서 서술해보자. 한국에서 모든 가정은 계층상승의 통로이자 자녀들의 안정적인 삶의 수단이라고 여겨지는 입시에 '올인'하고 있다. 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하여 '사활(死活)'을 걸고 경쟁하는 구조가 출현해 있다. 이 비정상적인 미친 과잉경쟁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교육경쟁으로부터 이탈(exit)하는 수밖에 없다. '경쟁 이탈전략'을 쓰지 않고 내부에서 경쟁할 때 온 가족이 '거대한 전쟁'을 해야 한다. 더구나 이 이 경쟁은 부모의 재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참여할 수 없는 '그들만의 경쟁'으로 변화해가고 있다. 이는 현재의 교육경쟁이 비합리적 경쟁으로 작동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동시에 '부도덕한 경쟁'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사회의 경제력을 높아지면서 중산층 가족의 경우 가용(可用)할 수 있는 자원이 늘어나고 이 자원을 '올인'하듯이 투자하게 되면서, 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게 된다. 더구나 사회 복지 또는 사회적 안전망마저 취약한 한국현실에서 교육을 통해 학력이나 학벌이라는 '개인적 안전망'이라도 마련해야 한다는 인식 하에서, 이 미친 경쟁은 더욱 가속화된다.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의 효과가 여기에 촉진제의 역할을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문제는 교육을 둘러싼 경쟁이 이제 '과잉 경쟁'이 되어서 경쟁이 갖는 고유한 합리성을 파괴하면서, 한국경제의 지속가능성을 가능케 하는 '인적 자원'의 형성과 배분을 왜곡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는 것이다. 나는 경쟁이 갖는 고유한 합리성을 인정하는 편이다. 좋은 직장에 가기 위해서건 높은 보상을 받기 위해서건 사람들은 경쟁을 하고, 경쟁의 결과에 따라 상이한 보상을 받는다. 모든 사회는 이런류의 동기부여기제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경쟁이 과잉경쟁으로 치달아서, 경쟁이 갖는 고유한 합리성을 파괴하는 수준으로까지 치달을 때, 우리는 그것을 '과잉경쟁'이라고 말할 수 있고, 그 경쟁을 합리적으로 조정해야 한다.
예컨대, 중고등학교 교육경쟁을 보자.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이제 '신체적 파괴'까지 일삼으면서 경쟁하는 상태까지 가고 있다(신체가 버틸 수 있는 최고 수준으로 '잠'을 절약하면서 경쟁한다). 이러한 경쟁의 압박 때문에 자살하는 것이 바로 현재의 개혁의 필요성을 웅변해주고 있다. 논술이라는 좋은 제도도 치열한 경쟁의 맥락에 놓이게 되니 또 다른 암기경쟁이 되어버린다. 사교육이 공교육을 대체하는 현재의 왜곡현상은 과잉경쟁으로 인한 비합리성 그 자체를 웅변해준다. 현재와 같은 치열한 교육경쟁 아래서, 중고등학생들이 여러 가지 동아리 활동도 하고 풍부한 토론도 하고, 체육활동도 하고 다양한 사회참여활동도 하면서 스스로 상상력과 소양을 키울 기회는 없다. 이제 거의 자기파괴적인 상태에 이르고 있다.
이런 점에서 현재의 자기파괴적인 과잉경쟁을 '정상화'하기 위해 특단의 대책을 마련한다는 시각을 가져야 한다. 교육경쟁의 합리성 자체를 말살하면서 한국의 교육제도를 부단히 '비합리성의 극치'로까지 왜곡시키는 과잉경쟁 구조 자체에 대해 메스를 대기 위한 국민적 개혁으로서 교육개혁을 규정하고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입시제도가 복잡해서 문제다?
이런 견지에서 보면, 입시 제도를 단순화하는 것을 대안으로 생각해 접근해서는 안 된다. 박근혜 진영은 아예 현재의 입시제도가 너무 복잡하여, 학부모들과 학생들이 혼란을 겪으므로, 입시 제도를 단순화하는 것 자체가 교육개혁이라는 접근하고 있다(교육정책의 가장 핵심이 맞춤형 진로 상담이나 입시의 단순화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심지어 문재인, 안철수 진영에서도 이러한 인식이 일정하게 있다.
현재의 입시제도가 복잡해진 것은, 70년대부터 시행된 중고등학교 평준화 체제 하에서, 확대된 계급적-경제적 불평등에 근거하여 이 땅의 가진 자들이 이를 내부로부터 무력화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명박 정부 하의 교과부의 여러 정책을 포함하여)을 해왔다(자율형 사립고를 만든다거나 국제학교를 만든다거나 외고를 확대한다거나 하는 등). 그런데 이런 것이 중간층을 포함해 다수 국민들의 불만을 촉발했고, 그래서 교육당국이 제한적으로 이를 공적으로 규제하고자 하는 정책들을 시행하게 되었고(농촌 특별 전형 등), 이런 공적 규제가 확대되면서 입시제도가 '복잡'해졌다. 그런 점에서 이를 '단순화'해서 본고사를 수능으로 한다고 하는 식으로 개악을 하면 더욱 사태가 악화될 것이다. 단적으로, 외고 졸업생이 본고사에서 수능의 높은 점수를 근거로 현재보다 훨씬 많이 들어가는 악화된 사태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현재의 교육경쟁시스템의 패러다임적 전환이라고 하는 시각을 더욱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과격한 것만은 아니다. 우리 사회의 경쟁 패턴을 선진국 형으로 바꾸는 것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하다. 예컨대 우리가 굳이 '국영수'라고 하는 편협한 경쟁프레임으로 전국의 고등학생을 일렬로 줄 세우는 식의 교육경쟁이 과연 세계화 시대에 맞겠는가라고 물어보면 된다. 오히려 그러한 획일성은 넘어서서 창의적이고 다양하고 비획일적인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제 초기산업화 단계에나 맞는 저급한 경쟁방식을 혁파해야 한다.
왜곡된 경쟁구조를 악화시키는 학벌체제
둘째, '왜곡된 경쟁' 구조를 혁파하는, 그리고 그러한 왜곡된 경쟁구조에 이해관계를 갖는 기득권세력과 대결하는 과정이라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겠다.
과잉경쟁을 극단적인 파괴적 형태로 진행되게 만드는 과정에 바로 학벌특권 질서, 대학서열질서가 있다. 사실 이 학벌질서는 이전에는 지금처럼 극단적으로 확대되지는 않았다. 예컨대 지방의 수재들이 연고대를 갈 것인가 부산대, 경북대, 전남대를 갈 것인가 하는 것은 상당히 망설이는 선택이 되어 있다. 그러나 어디 현재는 그런가.
현재의 학벌질서에서 수천만 원을 사교육에 투자해서 이른바 스카이(SKY)대학에 가게 되면, 그것은 한 경쟁참여자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남는 장사이고 '투자 가치'가 있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미친 과잉경쟁은 '미친 사회구조'에서 말미암는 '합리적 경쟁'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도, 이른바 스카이(SKY)대학 입학이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합리적 보상의 차원을 넘어서서 전(全) 생애를 관통하는 사회적 특권이자 자격증이 되고 패자에게는 영원한 멍에가 되는 이 구조를 바꿔야 한다. 이 지점에 학벌질서 철폐의 과제가 놓여 있다. 대학서열화와 학벌체제를 혁신하지 않는 한 이러한 문제들이 해결될 수 없다.
사실 전국에 진보교육감이 당선되어 초중등교육 수준에서 혁신학교 등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고,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이 우리의 왜곡된 교육경쟁시스템을 변화시키는데 궁극적으로 불완전한 것은 대학학벌체제가 그 상위에 구조적으로 놓여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에 대학학벌체제의 해체와 대학 입시제도 자체의 근원적인 변화가 요구된다.
계급적 불평등에 맞게 교육제도를 전환하려는 노력에 맞서서
여기 개발독재 하의 초기산업화 단계, 외환위기 이후의 신자유주의적 성장 단계를 통하여 확장된 경제적·계급적 불평등의 구조를 혁신하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초기 산업화 단계 이후 고착된 학력과 학벌에 따른 임금격차 및 사회경제적 보상의 차이가 고착화되고 이후에 경제가 성장하면서 더욱 확대되는 방향으로 왜곡된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누구나 다 '대학졸업장'을 가지려 하고, 누구나 '최고의 학벌'에 속하려 하는 왜곡된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모든 학생들이 높은 학력과 학벌을 성취하려고 하는 것이 초기산업화 단계에서는 일정하게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동아시아의 고도성장이 높은 교육열 및 그로 인한 유능하고 풍부한 노동력에 의해 가능하였다고 하는 것이 바로 그러한 점을 말해준다. 그러나 이것이 이제 '왜곡된 대립물'로 전환되어 있는 것이다. 이를 초기 산업화 이후 단계에 부응하는 식으로 혁신되지 않는다면, 학력과 학벌 특권에 안주하면서 거기서 발생하는 기득권에 안주하게 되고 이는 우리 경제의 역동성을 제약하는 현재의 경향이 보다 강화될 것이다(학력에 따른 임금 등 보상의 차이를 합리적으로 재조정하는 문제는 노동시장 개혁 등과 함께 별도로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교육영역에서는 현재의 학벌특권에 들기 위하여 기존의 평등화 프레임, 즉 평준화체제를 해체하려는 왜곡된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즉 우리 사회의 계급적·사회적 기득권세력은 현재 기존의 경쟁프레임을 인정하면서 '과잉경쟁'하는 단계를 넘어서서, 그 경쟁프레임을 그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제도 자체를 재편하고자 하는 노력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한 노력은 한편에서는 특목고, 자사고 등을 통하여 고등학교의 평준화체제를 해체하면서 일반고를 일류교로 만들고 특목고, 자사고 등을 실질적인 일류고로 변신시키고자 하는 노력으로 나타난다. 다른 한편에서는 대학입시제도를 바로 그러한 신흥 일류고 학생들이 유리한 선발방식으로 전환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2007년 중반 교육계를 달군 서울대와 교육부의 싸움도 사실 서울대가 연세대와 고려대에, 또한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일류대학들은 다른 대학들에 비교하여 학업성적인 우수한 특목고 학생들을 빼앗기는 것을 막으려고 내신의 변별력을 축소하려고 하는 시도에서 발전된 것이다. 더 나아가 아예 국제중학교 등을 통해서 일찍부터—경제적 차이를 십분 활용하여—특권적인 교육경쟁구조를 만들려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박정희의 개발드라이브로 성장한 경제적·계급적 기득권세력이 이제 박정희가 만든 평준화체제를 자신들의 경제적 권력(그 권력에 기초한 사교육에 의해 우수한 성적을 창출할 수 있는 권력, 그래서 자신의 자녀들을 학벌 특권이 있는 일류대학에 보낼 수 있는 권력)에 부응하는 형태로 해체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싸움의 본질은 간단하다. 특목고의 100등이 일반고의 1-2등 보다 더 성적이 우수한 현실에서 평준화적 질서 또한 내신 비중이 강한 현 입시제도가 유지되면, 특목고 학생들이 실제의 성적수준은 높은데 불이익을 받는 구조가 존재하는 것이다. 현상적으로만 보면 대학 입시는 자율화되어야 하고 열심히 공부해서 성적이 높은 사람이 좋은 대학을 가면 된다. 이것은 바로 시장원리를 그대로 교육영역에 적용하려는 것으로서 '전사회의 시장화'를 위한 기존 기득권집단의 노력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엄청난 사교육비용을 통해서 성취되는 성적은 사실 경제력의 한 반영이다. 우리 사회의 계급적·사회적 기득권세력이 요구하는 대로 변경하는 경우를 상정해보자. 예컨대 대학입시를 자율화하고 평준화 체제를 해체한다고 해보자. 그러면 계급적 불평등을 반영하는 형태로 고등학교는 서열화 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 사회의 계급적 불평등의 하위에 있는 하층계급의 자녀들이 일류대를 가는 비율은 현저히 내려갈 것이다(물론 머리 좋고 노력하는 하층민 자녀의 성공담은 화제가 계속 되겠지만).
현재의 갈등은 현존하는 계급적 불평등에 조응하는 형태로 교육제도를 바꾸고자 하는 힘 대(對) 교육이 갖는 계급불평등 평준화 기제로서의 성격을 유지・강화하고자 하는 힘의 싸움이다. 여기에 보수언론들은 대중들로 하여금 '자율' 증진이라는 이름으로, 계급적 불평등에 조응하는 형태로 교육제도와 입시제도를 변경해주기를 바라는 기득권세력의 요구를 '국민적' 요구로 만들고 있다.
평준화도 해체하고 대학 입시도 완전히 자율화해서 계급적·사회적 기득권 세력이 요구하는 방향으로 교육제도를 변경하게 되면, 우리 사회의 계급적 질서가 더욱 공고화되는 것이 된다. 이미 우리 사회에서 계급적·사회적 기득권 세력들에게는 자기 자식들을 상층계급으로 만드는 다양한 통로가 존재하고 있다. 교육을 통한 계급적 재생산의 기제가 완성되어 가면서 본격적으로 계급화 된 사회로 이행해갈 수도 있다.
예컨대 계급적·사회적 기득권세력은 자신의 경제적 자원을 기초로 하여 자식들을 로스쿨에 보내서 법률엘리트로 만들 수도 있고, '조기유학'을 통해서 영어라는 '시장가치'를 획득할 수도 있으며, 거대한 투자를 통해서 기존의 학벌질서의 상층에 편입시킬 수 있다.
중고교 평준화체제를 사수(死守)하려고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것이 노무현정부의 시도였고 궁극적으로 그것은 실패하였다.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중고교 평준화체제를 지속가능하게 하는 대학학벌체제의 평등한 재편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점에서 문재인, 안철수 후보가 평준화체제를 지키면서 그것을 왜곡하는 일류고 특권을 약화시키려 하고 기회균등 선발을 확대하고자 하는 공약을 발표한 것은 그나마 긍정적이다.
왜곡된 경쟁구조를 혁파하기 위해서는 대학학벌체제를 기초로 해서 구성되어 있는 현재의 대학체제를 혁파-이미 확립된 계급적 불평등 질서에 부응하는 형태로 교육질서가 고착화되는 것이 아니라-하고 오히려 대안적인 대학체제를 통하여 오히려 기존의 불평등질서를 완화하는 형태로 교육체제가 작동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문재인 후보 진영의 공약 중 '공동 학위제'가 들어간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사실 2007년 정동영 후보 시절부터 삽입된 이 공약에 대해서 충분히 심각하게 이 공약을 고민하고 추동할 의지가 현재로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이미 2012년 초반 이용섭 정책위원장에 의해 민주당의 공약으로 '통합국립대학안'으로 구체화되었다. 그런데 그것이 부분적으로 언론에 보도되고 보수언론이 '서울대 폐지론'이라고 공세를 취하자 슬그머니 후퇴를 했고, 현재의 공약에서도 아주 주변적인 위치에 배치되어 있다.
이 점에서 심상정은 문재인-안철수에 비해 현저히 앞서 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심상정은 학벌철폐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대학체제 개편 과정에서—보수언론의 눈으로 보면 '서울대 폐지론'이라고도 보일 수 있는—서울대의 '대학원중심대학'으로의 개편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교육개혁단체에서 주장하고 있는 '대학 통합네트워크' 구축도 주장하였고, 학력·학벌차별 금지도 주장하였다. 주변 후보라고 하지만, 교육운동단체에 요구들에 가장 가까운 교육공약을 심상정이 내걸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대학학벌체제 혁신이 '서울대 폐지'다?
여기서 잠깐 서울대 폐지론이라고 하는 보수언론의 공격에 대해서 살펴보다. 물론 대학체제 개편은 현재의 입시지옥을 해소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고 기존의 학벌체제의 정점에 있는 서울대의 개편이 포함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개혁안을 '서울대 폐지론'으로 과도하게 단순화하여, 개혁안의 취지를 왜곡해서는 안된다. 여기서 서울대 체제를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에는 다양한 방안이 있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런 보수언론의 반발을 의식하여 '서울대를 뺀 통합국립대학안'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학개혁은 입시지옥을 해소하는 목표가 있으므로, 서울대, 연고대 등의 학벌특권체제를 유지하는 것은 개혁을 우회하는 것이고 효과도 없어지리라고 생각한다.
학벌체제를 혁신하기 위해 예컨대 서울대를 포함해서 국립대학을 '통합국립대학'으로 만든다고 해보자, 이러한 패러다임적 전환의 틀 내에서 서울대가 어떤 위치를 가질 것이며 어떤 변화를 겪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방식이 가능할 것이다. 예컨대 서울대 학부와 대학원 전체를 폐지하는 방안(17대 총선에서 서울대 폐지론이라는 이름으로 민노당이 공약한 사항), 서울대 학부를 폐지하고 대학원 중심대학으로 재편하는 방안(2012년 대선에서 심상정이 공약한 사항), 서울대 학부를 기초학문 중심으로 재편하고 나머지 분야는 통합국립대학의 권역별 특성화의 계획에 따라 재배치하는 방안 등이다. 개인적으로는 대학원 중심대학으로의 재편이 가장 현실적이고 개혁의 효과도 있다고 생각한다. 서울대를 대학원 중심대학으로 재편하는 것은, 서울대가 기존에 갖고 있었던 학문적 수월성의 장점을 살릴 수도 있고, 그러면서 학부를 중심으로 유지, 재생산되는 학벌특권을 치유하는 장점도 동시에 살릴 수 있다고 생각된다. 이 안은 이미 장회익 교수 등 서울대 내부에서도 개혁의 일환으로 이러한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물론 '학부 없는 대학원이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반론이 있겠지만, '국립'대학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므로 공공성을 견지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자기'학부를 둔다는 각도 보다는 오히려 '학벌 특권'의 중심에 서지 않고 많은 전국의 통합국립대학의 학부를 기반으로 운영된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현재의 문재인과 민주통합당의 공약에서 통합국립대학이 아니라 '공동학위대학'을 이야기하는 후퇴한 것은 이미 보수세력의 반발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공동학위제도를 예컨대 '통합국립대학(단일의 통합국립대학을 만들고 그 안에서 서울대가 서울캠퍼스가 되는 것)이 없이 시행될 수도 있다. 학위만 공동으로 하고 나머지는 완전히 현재의 위계화 된 상태로 버려두는 식으로 갈 수도 있다. 또한 저항이 거세기 때문에 우회하는 의미에서 서울대를 학부 중심대학으로 간다고 상정할 수 있는데, 이럴 경우 어느 학문이 '기초학문'에 속하는 것을 둘러싸고 '날이 새는' 상황이 나타날 수도 있다.
물론 서울대 구성원들이나 관련 집단들의 동의과정이 있어야 하지만, 올바른 방향을 잡고 숙의과정에 부의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그리고 우리의 개혁은 학벌특권을 폐지하고 보다 인간적인 교육시스템을 바라는 국민적 힘으로 추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도 하나의 정책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구조개혁을 향한 정책패러다임 전환의 각도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는 1000여 명의 교수 회원들로 구성된 교수단체입니다. <민교협의 정치시평>은 손호철, 최갑수, 김귀옥, 김성희 교수의 순서로 돌아가면서 연재하며, 매주 1회 금요일에 <프레시안>에 게재됩니다. 이 칼럼은 민교협 홈페이지에도 함께 올라갑니다.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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