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에서는 <해림 한정선의 천일우화(千一寓話)]>를 통해 우화의 사회성과 정치성을 복원하고자 한다. 부당하고 부패한 권력, 교활한 위정자, 맹목적인 대중들. 이 삼각동맹에 따끔한 풍자침을 한방 놓고자 한다. 또 갈등의 밭에 상생의 지혜라는 씨를 뿌리고, 아름답게 살고 있고 그렇게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바람과 감동을 민들레 꽃씨처럼 퍼뜨리고자 한다. 한정선 작가는 "얼음처럼 차갑고 냉정한 우화, 화톳불처럼 따뜻한 우화, 그리하여 '따뜻한 얼음'이라는 형용모순 같은 우화를 다양한 동식물이 등장하는 그림과 곁들어 연재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한정선 작가는 화가로서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대한민국 전통미술대전 특선을 수상했으며 중국 심양 예술박람회에서 동상을 받았다. <천일우화>는 열흘에 한 번씩 발행될 예정이다. <편집자>
단풍나무의 잎들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우듬지의 잎들이 빨갛게 물들자, 중간 가지의 잎들과 아래쪽 가지의 잎들도 뒤따라 자신들을 물들였다. 단풍나무는 온통 눈부신 선홍빛이었다.
그런데 왼편 가지 끝의 이파리 하나만 초록빛이었다. 봄에 가장 일찍 움을 틔웠던 잎이 가을에는 가장 늑장을 부리고 있었다.
"저 잎은 정말 이상해. 작년에도 그러더니 올해도 또 그래."
"우리 단풍 빛을 뭉개려나 봐."
이마를 맞댄 붉은 단풍나무 잎들이 초록 잎을 곁눈질하며 쑥덕거렸다.
"너 단풍나무 잎 맞니?"
우듬지의 잎처럼 선홍색으로 물들고 싶어 안달하던 중간가지의 잎이 초록 잎에게 물었다.
"색은 다르지만 나도 단풍나무 잎이야."
초록 잎의 대답이 퉁명스러웠다.
"가을에 빨갛게 물들지 않으면 단풍나무 잎이 아니야."
끝가지의 단풍잎도 끼어들어 쏘아붙였다.
대부분의 단풍나무 잎들이 희귀종 잎을 보는 것처럼 초록 잎을 흘깃댔고, 잎을 물들이지 않는 이유에 대해 계속 꼬치꼬치 물었다. 우듬지의 잎들은 초록 잎의 머릿속을 수상쩍게 여기는 질문을 던지곤 했고, 아래쪽 가지의 잎들은 마치 걱정해주는 듯 어딘가 탈이 난 것 아니냐며 이것저것 캐물었다.
그러나 초록 잎은 불편한 표정으로 침묵했다.
"우리 단풍나무가 완벽하지 못한 건 너 때문이야."
단풍잎들이 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풍나무를 망치고 있는 초록 잎을 용서할 수 없다며 따가운 눈총을 보냈다.
하지만 초록 잎은 여전히 붉은 색으로 바꾸지 않아 단풍나무의 눈 밖에도 났다.
단풍나무가 초록 잎을 떼어내기 위해 왼편 가지를 흔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나가던 사람이 초록 잎을 가리키며 탄성을 질렀다.
"저 잎 좀 봐요. 빨간 단풍잎들 속에 초록 잎 하나. 참 특별하네요."
"이 단풍나무 정말 완벽한 작품인데."
수많은 사람들이 단풍나무 앞으로 몰려와 사진기를 들이댔다.
으쓱해진 단풍나무는 자신을 빛내준 초록 잎에게 감개무량해했다. 그것을 바라보는 단풍나무의 잎들은 씁쓸한 표정이었다.
ⓒ한정선 |
* 한 무리의 동질성은 다른 무리와의 차이를 드러냄으로써 확인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의식적으로든, 혹은 의식적으로든 이 차이를 곧 차별로 바꾸고 배제하기 시작합니다.
왕따나 성소수자 문제는 우리가 생활 속에서 경험하는 차별의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차이가 곧 차별로 고착화된 사회에서 다양성은 그 설 자리를 잃게 됩니다.
파시즘은 다양성을 가스실에 가두어 질식시키는, 차별이 일상화되어 그게 폭력이라는 사실 자체도 깨닫지 못하게 되는 극단적인 이데올로기입니다. 온통 초록일 때는 단 하나의 붉음을 참지 못하고, 온통 붉음일 때는 단 하나의 초록을 용납하지 못합니다. 이런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100%에 집착합니다.
박근혜 후보의 대선 후보 수락연설문의 핵심적인 구호는 '100% 대한민국'입니다.
박 캠프의 국민대통합위원회는 이 사명을 띠고 만들어졌습니다. 최근 박 캠프의 인사들이 이 '100% 대한민국'이라는 구호를 남발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정치적 레토릭(rhetoric)으로 여기기에는 매우 불편합니다. '100% 대한민국'은 1971년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박정희가 내 건 '국민 총화단결'을 연상시키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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