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前職)들이 움직이고 있다. 얼마 전부터 부쩍 발언을 많이 하고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은 차치하고 북핵 실험이 실시되자 김영삼 전 대통령도 발언의 빈도와 수위를 각각 높이고 있다. 심지어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도 12일 예산 선영을 방문하며 '워밍업'에 들어간다.
스타트는 DJ…외교안보에서 현실정치로 발언 확대 중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창간호 등과의 인터뷰를 통해 대북, 대미 문제에 관한 각종 메시지를 던진 바 있는 DJ는 얼마 전 CNN,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민주당 분당을 비판하고 억울하게 희생된 자신의 아들들에게 미안하다고 생각한다는 등 현실정치에 관해서도 개입하기 시작했다.
DJ의 이런 활동은 민주당은 물론이고 열린우리당을 포함한 범여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특히 지난 10일 청와대 오찬에서 햇볕정책의 정당성을 강력히 설파한 것은 여당은 물론 노 대통령을 움직이기도 했다.
YS와 설전이 오간 데 대해 노 대통령은 11일 오전 "불편하게 해드려 죄송하다"고 직접 사과전화를 했고 DJ는 "한 마디 해야겠다"며 "햇볕정책이 뭐가 잘못된 것이냐"고 따졌다고 본인 스스로가 밝혔다.
DJ의 이런 움직임은 천정배, 김근태 등 우리당 대권주자 그룹으로부터 '햇볕정책 옹호-정부여당 비판' 발언을 이끌어 냈고 여당에선 DJ의 철학을 옹호하는 목소리가 부쩍 높아졌다.
신난 YS "한나라당은 정권교체에 모든 것 걸어야"
잊을 만하면 직설적 언행으로 심심찮은 뉴스메이커가 되곤 했던 YS 역시 북핵 실험으로 인해 잔뜩 어깨에 힘이 들어간 눈치다. 지난 10일 청와대 오찬에서 "노무현 씨는 북한 변호사냐" "DJ와 노무현 대통령이 4조 5000억 원을 퍼다줘서 북한이 핵무기를 만들었다"는 등의 독설로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들었던 YS도 일본, 한국 언론들과 연쇄 인터뷰를 갖고 있다.
아사히 티비 등 일본 언론과 인터뷰에서 북한과 한국 정부를 싸잡아 비판한 YS는 11일 동아일보 인터뷰 통해 북핵 강경론을 이어갔다.
이 자리에서 YS는 "한나라당은 정권교체를 위해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대단히 불행한 사태에 처할 것이다"고 코치하기도 했다. 그는 "후보들이 경선 이후에 갈라서는 일이 생겨선 안 된다"며 "갈라서지 않기 위해선 국민의 지지를 많이 받는 후보가 한나라당의 대선후보가 돼야 한다"고 강조하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 1997년 대선에서 이인제 후보의 탈당 및 단독출마를 지원 혹은 방조해 정권교체의 공신이 됐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YS가 한나라당 경선에 대해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보수적인 발언이나 사고와 달리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반감만은 유지하고 있는 YS의 이같은 발언은 박근혜 전 대표에게 유리하지 않은 '오픈프라이머리'를 강조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까지 남기고 있다.
YS는 박 전 대표가 지난 5월 선거유세 중 커터칼에 피습됐을 당시에도 "나도 박정희 대통령 때 정치 테러를 많이 당했다"고도 말한 바 있다.
창사랑 '이회창님 구국결단 촉구 결의대회' 열기로
전두환 전 대통령마저 청와대 오찬에 참석해 "비대칭전력의 불균형이 문제"라며 육사출신 다운 식견을 뽐낸 마당에 이회창 전 총재의 움직임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의 남대문 개인사무실에 드나드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이 전 총재는 12일 예산 선영에 들러 성묘한 뒤 지역 음식점에서 오찬을 하고 상경할 예정이다. 이 전 총재 측은 "가족행사일 따름"이라고 밝혔지만 이날 방문에는 이 전 총재의 팬클럽인 '창사랑'이 '이회창님의 신속한 구국결단 촉구 및 국가안보 사수를 위한 결의 대회'를 열리로 했다.
'이회창님의 구국결단 대한민국 바로 선다', '북한의 핵 협박 창님의 힘이 필요합니다', '북한의 핵 분쟁 당신이 막아 주십시오'등의 펼침막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진 이건호 창사랑 대표책임 일꾼은 "위기에 빠진 대한민국을 반석 위에 올려놓을 수 있는 경륜과 인격을 겸비한 분은 오직 이회창님"이라며 "대권도전 선언을 촉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리멸렬한 현실정치권이 전직 러시의 일등공신
때 아닌 '전직 러시'에 대해 그들의 지지자들은 "지금 같은 위기상황이야말로 우리 대통령(총재님)의 지혜와 경륜이 빛을 발휘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곱지 않은 시선도 적지 않다.
또한 현실 정치권도 '정권 교체' '평화개혁세력 재집결' 등에 힘을 싣고자 나름의 지역적, 이념적 기반을 갖고 있는 이들의 행보에 잔뜩 주목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이른바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시절을 거치며 독재정권에 대한 향수와 지지가 강화됐듯이 지리멸렬한 현실정치권이 이들을 불러낸 일등 공신이라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이들의 득세가 일시적 현상인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인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원로들의 지혜 발휘라기보다는 정치적 퇴행이라는 느낌을 더 강하게 남기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독설을 특기로 삼고 있는 YS조차도 " 94년 북핵위기 때 내가 클린턴과 20여 차례나 통화하며 막았다"고 자화자찬하며 "(미국이 무력제제에 나설 경우에는) 국가 원로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다할 것"이라며 미국의 대북 무력사용에는 절대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듯이 최소한의 금도를 넘지 않기를 바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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