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실험으로 직격탄을 맞은 현대그룹의 현정은 회장이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 "금강산 관광객 한 명이 있더라도 해나갈 생각이다"고 비장한 각오를 밝혔다.
현 회장은 11일 청와대 남북경협 오찬간담회에 참석해 "정부와 공동보조를 맞춰나갈 계획"이라고 전제했지만 "여러 어려움이 있더라도 잘 버티겠다. 많이 도와주시기 바란다"며 이같이 말했다.
현대아산 사장 "작년에 처음 이익 봤는데…"
윤만준 현대아산 사장도 "작년에 처음 영업이익을 냈는데 이런 이야기(북핵실험에 따른 남북 경협사업의 중단)가 나오니 적자가 다시 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된다"며 "우리 회사만 문제가 아니라 경제신인도 전체가 떨어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윤 사장은 "북쪽 이산가족을 만나고 싶다며 이 사업을 계속해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있다"며 "그 목소리들을 존중해서 (남북경협이) 중단되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청와대를 찾은 남북경협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사업 지속", "정경분리"를 말했다.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도 "대체로 참석한 모든 분들이 대북경협 관련 사업들이 중단 없이 지속되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피력했고 대통령은 주로 들으셨다"고 전했다.
개성공단기업협의회 대표를 맡고 있는 김기문 로만손 대표는 "어제 따로 기자회견을 갖고 경협사업이 중단되어선 안 된다는 뜻을 밝혔다"며 "자본과 기계. 공장은 철저히 보호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특히 "일부 시중은행은 진출업체에 대해 대출 축소를 지시하고 있는데 이것이 오히려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점도 있다"고 토로했다.
노 대통령 "한 달 두 달 내에 결정될 문제도 아니다"
한편 노 대통령은 이날 경협 사업 지속 여부에 대해 뚜렷한 언질을 주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여러분들 욕심으로는 정부가 이리 가든 저리 가든 명쾌하게 안개상황을 해소하고 방침을 밝혀서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을 해소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겠지만, 오늘 그런 결론을 말씀드리기엔 아직 이른 것 같다"며 "결론을 내리기 위해 여러분들 말씀을 듣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 대신 노 대통령은 "어느 쪽으로 가도 하루, 이틀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고 한 달, 두 달 내에 결정될 문제가 아니라 장기화 될 것 같다"며 "상황이 확정되고 국제사회 조율이 필요하고, 어떤 조치가 나오더라도 이 문제가 해결되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안개정국'의 장기화를 시사했다.
다만 노 대통령은 "국제 사회가 조율을 해야 하지만 국제사회에서 한국도 발언할 일이 있다. 국제 사회 조율 시 의사가 반영되어야 하고 해석과 적용에 있어서 한국 입장이 중요하다"며 " 한국 국민과 정부가 가지고 있는 자율적 영역이 넓다고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우리 정부의 입지가 좁아졌다"는 지난 9일 발언과 180도 다른 이 말에 대해 윤 대변인은 "9일 말씀은 북핵실험 전에 비한 상대적인 비교이고 오늘 말씀은 그래도 정책이 결정되는 과정에서 한국정부가 할 수 있는 영역의 폭은 넓다는 것"이라며 "오늘은 절대적인 기준에 대한 말이라고 보면 된다"고 부연했다.
낙관적이지 못한 전망
경협에 투자한 기업가들이 "사업지속"을 강력히 희망했지만 전망은 그리 밝아보이지 않는다. 노 대통령 본인이 이 점에 대해 긍정적인 시그널조차 보내지 않을 만큼 말을 아꼈을 뿐더러 외교부 고위 당국자들로부터는 "PSI(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 참여 폭을 넓힐 수밖에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는 말도 흘러나오고 있다.
우리 정부가 미국 주도로 북한을 물리력으로 봉쇄하는 PSI에 참여하면서 남북경협을 계속하는 '양다리 작전'을 미국이 허용할지도 의문이다. 설사 그렇게 한다 하더라도 북측이 남북경협을 계속할지도 알 수 없다. 서쪽에선 서해교전이 벌어져도 동쪽에선 금강산에 올라가던 과거 상황이 재연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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