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이 주제에 대한 사례분석과 사회과학적 조명을 위해, 민교협, 심상정-서기호 의원, 민주노총이 주관한 토론회가 열렸다. 이 토론회에 참여하면서, "민주화 이후의 국가(폭력), 자본(지배), 용역폭력의 관계"에 새롭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발제문 바로가기)
공격적 직장폐쇄가 자본전략
이날 토론회에 참여한 오민규 정책위원(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에 따르면, 2010년 경 이후부터 상당히 패턴화된 국가공권력-기업-용역폭력의 관계가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경찰에 의한 폭력 진압을 전면화하지 않는 대신에, 기업주가 '공격적 직장폐쇄'를 하고, 이에 항의하여 공장을 점거하고 있는 노조원들을 용역깡패들이 투입되어 폭력적으로 현장을 진압한다. 여기에 경찰은 뒷짐 지고 있다가, 공장에 재진입하려는 노조원을 막는 식으로 '분업'을 한다는 것이다. 이 기막힌 분업구조는 어떤 의미에서 쌍용차에 대한 경찰력 투입이 비난받는 속에서, 국가와 자본의 협력관계 혹은 자본의 전략이 '진화'함으로써 나타난 현상이다.
이 토론회에는 실제 용역폭력을 행사하는 경비업 분야에서 일하는 토론자가 나와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주었다. 거의 조폭에 가까운 용역폭력은 공장을 점거하고 있는 노조원을 진압하기 위해 초기에 투입되며 이들은 대체로 '일용직' 동원인력인데, 이른바 '미배치 인원'이라고 불린다는 것이다. 그는 일반적으로 경비업과 그 일부로서의 '신변보호 경비(경호원)'을 좀 구분해서 보아야 하며, 경비업 일반을 불온시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 지난 7월 자동차 부품업체 SJM 파업현장에 난입한 용역 경비업체 직원들. ⓒ김상민 |
그런데 공분을 사는 용역폭력은 '분쟁지역 경비'를 위해서 파견되는 과정에서 문제가 되는데, 그 중에서 거의 조폭 수준의 용역폭력은 '미배치 인원'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실제 그런 사람들이 동원된다는 것이다. 특히 현장에 투입되는 인력은 규정상 신고를 해야 하는데, 초기 투입되는 이들은 "배치신고를 하지 않은 채 현장에 배치된 '미배치 인원'이며(이는 불법인데), 이들은 현장에서 소화기 뿌리고, 무기를 휘둘러서 길을 뚫고는 곧 바로 빠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신고된 경비업체 인력들이 들어가서 현장을 수습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이 과정에서 경찰이나 수주한 업체, '일용직'을 끌어들인 경비업체는 불법을 묵인한다. 나는 이 기막힌 분업구조가 과연 민주주의 사회에서 용인될 수 있을 것인가 깊은 회의를 가졌다.
국가폭력과 용역폭력은 이미 민주주의에 위협
용역폭력은 간단히 말해, 자본 혹은 기업이 사설폭력을 동원하고 이를 국가가 용인하는 것이다. 나는 '국가론' 수업에서 가끔 국가와 마피아의 구분이 무엇인가를 토론한다. 통상 마피아는 정당화되지 않는 폭력을 사용하는 것이고 국가는 폭력의 독점체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정당하게 사용된다는 점에서 차이를 갖는다('본질'적으로는 이것도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이런 점에서 쌍용차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국가가 기업주의 정리해고를 도와주기 위하여 경찰력을 투입해서 진압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국가의 묵인 하에 자본이 사설 용역폭력을 통해 파업을 진압하는 행위는 국가가 '마피아'적 수준으로 떨어지는 것이며, 이는 완전히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이다.
나는 이명박 정부 하에서 국가의 공권력이 아무 부끄럼없이 활용되고(용산 참사, 쌍용차 진압 등에서 보이는 것처럼), 또한 자본이 자신의 이해를 위해 사설폭력을 활용하고 그것을 국가가 간접적으로 용인하는 현상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당연히 있어야 할 국가폭력과 자본에 대한 민주주의적 규율이 적절히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본다. 이는 곧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보여주는 것이다(물론 이러한 사설폭력은 이명박 정부만의 문제는 아니면 이전의 민주정부 하에서도 이루어졌다).
용역폭력은 '반자본'적 관점에서도 비판받을 일이지만, 나처럼 (급진)민주주의자의 입장에서도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고 위협이다. 민주주의는 '폭력의 합법적 독점체'인 국가에 대한 공적인 규율이 작동하는 '근대'체제이다. 경찰력이나 군대로 표상되는 국가의 '집중된 공권력'이 적절한 공적·정치적 규제를 받지 않고 행사되는 것은 이미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민주화 이후 국가와 자본의 '형식적 분리' 속에서
이러한 현상은, 민주화 이후의 한국사회의 시계열적 변화 속에서 보아야 총체적으로 파악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특히 자본이 국가의 묵인 하에 용역폭력이라고 하는 사설폭력을 동원하는 이런 현상은 민주화 이후 자본의 응전양식의 변화 속에서 볼 필요가 있다.
사실 박정희 시대와 전두환 시대의 개발독재 시기에는 국가와 자본이 일체화되어 있었다. 동일방직 등 70년대 대표적인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경찰의 폭력적 개입은 이를 말해준다. 개별기업에 민주노조가 출현하고 파업이 일어나게 되면 이를 '국가안보' 수준의 일로 파악하고 안기부, 경찰, 기업주가 일체가 되어 이를 진압하는 형식이었다. 아예 '분리'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국가권력이 자본의 이해를 위해 '알아서' 개입해주는 시기였다. 굳이 사설 용역폭력을 동원할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민주노조운동, 민중운동을 핵심으로 하는 반독재 민주화운동의 성장으로 80년대 중반 이후 한국사회는 민주화의 도정에 오르게 되었다. 이 민주화의 과정은 독재 하에서 일체화되었던 국가와 자본이 불가피하게 '형식적으로는 분리되는' 의미를 담고 있다(사실 '근대'민주주의라고 하는 것은 국가권력과 경제권력의 '일체화'가 근대 시민혁명 등 아래로부터의 투쟁에 의해 '형식적으로 분리'되어 출현한 것이다).
87년 6월 항쟁 이전에 '일체화'되어 있었던 국가와 자본은 이제 민주주의의 논리상 '형식적 분리' 위에서 유착하면서 작동한다. 물론 87년 이후 민주화 정부 하에서도 이전과 같이 거의 '국가와 자본의 일체화'된 행태도 나타났다. 심지어 민주정부 하에서도 화물연대의 파업은 공권력의 폭력적 진압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그러나 최소한의 '형식적 분리'라고 하는 현실 하에서, 자본은 새로운 지배전략을 개발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던 것이다.
그것은 다양한 형태였다. 그 하나는 노조운동을 간접적으로 옥죄는 '손해배상소송'이나 가압류 등의 '민사적(民事的)' 압박전략이다. 김대중 정부 이후부터 노조나 노조 지도자에 대한 손해배상소송이나 가압류, 시위와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소송 등이 확대되었다. 수십억 원의 가압류를 노조 지도자의 집에 행했다. 파업 이후 파업지도자는 형사적 압박을 받는 것만이 아니라 이제 민사적 압박을 받게 된 것이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개별 기업이 사설 경비업체의 용역폭력을 사적으로 고용, 동원하는 현상은 또 다른 자본의 지배전략이자 응전전략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국가공권력을 자본이 바로 직접적으로 동원하지 못하는 상황에서-총자본의 이해를 위한 국가공권력의 동원은 지속되지만-개별 자본 수준에서 사설 용역폭력을 동원하는 현상이 만연하게 된 것이다. 이것에는 국가의 간접적 용인과 후원을 전제로 한다. 이것이 이명박 정부의 친자본적 성격이 이러한 용인을 더욱 강하게 추동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경영권에 대한 법원의 편협한 인식도 이런 사태의 한 원인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사법부의 역할이다. 토론회 발제자인 김태욱 변호사가 지적한대로, 기업이 사설용역폭력을 탈법적으로 동원하는 것은 법원이 편협한 경영권 인식 나아가 재산권 인식에 기초하여 판결을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법원은 정리해고에 대항해서 공장을 점거하고 파업하는 것을 파업대상이 될 수 없는 '경영권'에 도전하는 불법파업으로, 나아가 사유재산인 공장시설을 무단점거하는 불법적 행위로 간주하여 판결을 하기 때문에, 정리해고에 대항하는 노동자들의 '정당한 파업'은 곧바로 불법이 되고, 기업주는 이를 악용해 공권력의 묵인 하에서 사설 용역폭력을 동원하여 점거를 진압하고자 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사법부가 최근의 용역폭력 사태에 대해서 스스로를 성찰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폭력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깊은 성찰이 요구돼
국회에서 청문회도 열리고 국가폭력과 용역폭력에 대한 사회적 공분도 커졌다. 이제 우리 사회 전체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일보전진을 이루어야 한다. "노사분규 현장에는 경비업체가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나 경비업법을 개정해서, 미배치 인원을 금지하고 한번 취소처분을 받으면 다시는 경비업에 종사하지 못하도록 하는 미시적인 대책에서부터, 국가와 자본의 유착과 새로운 '분업'을 해체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나아가 자본의 공격적 직장폐쇄를 막는 보다 근원적인 해법도 논의되어야 한다.
더 근원적으로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폭력(기업폭력, 용역폭력, 국가폭력)에 둔감한가하는 것을 성찰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이것을 우리 사회에 만연한 폭력성에 대한 깊은 성찰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과연, 가정폭력이 가족이라는 사적 공간에서 이루어진다고 하는 점에서 묵인하고 넘어가듯이, 용역폭력이 공장이라고 하는 기업주 소유의 '사적 공간'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해서 용인할 것인가.
자본이 동원하는 이 폭력에 대해, 우리가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깊은 성찰을 해야 한다. 발제자 김동춘 교수가 이야기한대로 "한국 기업들이 이러한 용역폭력에 의존하여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유혹을 버리지 못하는 한, 그들이 이 사회와 국가에 기여할 가능성은 거의 없으며, 이 사회 전체를 쓰레기더미로 만들 것이다. 용역폭력의 현장에 법은 정지되고, 피해자들에게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용역폭력의 창궐은 질서유지가 아니라 실제로는 국가의 도덕 법 기반 붕괴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에서 기획한 '민교협의 정치시평'이 매주 금요일 <프레시안>에 연재됩니다. 민교협은 1000여 명의 교수 회원들로 구성된 교수단체로, 칼럼은 매주 민교협 회원들이 돌아가며 연재합니다. 이 칼럼은 민교협 홈페이지에도 동시에 게재됩니다.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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