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줍음 많은 성격에 책 읽기만 좋아하는 조용한 학생. 그 학생이 15년여 후 '밤에 혼자 계산기 두드리며 십원 짜리를 맞춰보다 절망하는' 벤처기업 창립자로 변신했고, 그 이후엔 교과서에 실릴 만큼 성공한 기업인이 된 데 이어 2012년 대선 정국을 흔들 유력 대선 후보의 자리에 올랐다. 19일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얘기다.
지난해 9월 서울시장 출마 '고려'만으로 압도적인 지지를 얻으며 정치권의 핵으로 떠오른 지 꼭 1년여 만에, 권력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대권 도전이다. 정작 본인은 대권 도전에 대해 오랜 기간 확답을 내리지 않았으면서도, 새 정치에 대한 유권자의 열망이 그를 차기 대선 후보로 '소환'한 셈이다.
'외로운 소년'에서 의사, 최연소 학과장까지
기존 정치 영역에 무관한 인사의 '깜짝 등장'으로 '안풍(安風)'이라는 말까지 나왔던 것처럼, 그의 살아온 이력 역시 특이했다. 1962년 부산에서 태어나 의사에 이어 백신 개발자, 성공한 벤처 사업가, 전문경영인, 대학 교수에 이르기까지 활동 영역을 넓혀왔다. 안 원장 본인의 표현에 따르면 "안주하지 않는, 도전과 결단의 연속이었다".
▲ 어린 시절의 안철수 원장. ⓒ안철수 |
지금은 젊은이들의 사회적 멘토로 이름을 떨치지만, 정작 그의 유년 생활은 '외로웠다'고 한다. 내성적인 성격에 밖에는 잘 나가지 않을 정도로 조용했지만, 대신 광적일 정도로 독서에 몰입해 도서관의 책을 거의 독파했다. 안 원장이 바둑을 배우기 전 바둑 관련 서적 50여 권을 먼저 읽고 바둑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는 그의 그런 스타일을 잘 보여주는 일화다.
초등학교 때는 "성적표에 '수'가 하나 있었는데 '철수'의 '수'"였을 정도로 공부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했지만, 고등학교 재학 중 성적을 올리며 서울대 의과대학에 진학했다. 부친의 직업이 의사였기에, "장남이 가업을 잇는다고 하면 부모님이 기뻐할 것 같았다"는 것이 의대 진학의 이유였다. 동 대학 석·박사 과정을 마친 뒤 27세의 젊은 나이에 단국대 의대 최연소 학과장에 올랐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의 궤적은 말그대로 '탄탄대로'였다.
백신 개발자가 된 의사, 국내 'IT 신화' 만들다
▲ 군대 훈련소 시절 안철수 원장. ⓒ안철수 |
제대 후 안 원장은 안정적인 의사 생활을 그만두고 백신 관련 일에 더욱 몰두하게 된다. 컴퓨터 백신을 개발하는 '벤처 사업가'로 변신, 국내에 '백신'이란 개념을 처음 알린 이도 안 원장이다. 특히 개인 사용자에게는 무료로 백신을 제공해 사회적으로도 이름을 알렸다. 1995년 안철수연구소(현 안랩)를 설립해 10년 동안 대표이사직을 맡은 그는 2005년 스스로 대표이사 자리를 던지고 미국 유학을 떠났다. 이 과정에서 "혼자 일군 성공이 아니다"라며 직원들에게 주식을 나눠주기도 했다.
미국 펜실베니아 와튼스쿨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마치고 2008년 귀국한 안 원장은 카이스트에서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다 2011년 최근까지 몸담은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젊은이들의 멘토', 차기 대권주자로 소환되다
그 이후의 행보는 대중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2009년 문화방송(MBC)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인지도를 올렸고, 2011년부터 '시골의사' 박경철 안동신세계연합클리닉 원장과 함께 전국 각지에서 청춘콘서트를 열어 대중과의 접점을 넓혔다. 그러는 동안 '한국의 빌게이츠'라고 불린 그에게 '젊은이들의 멘토'라는 별명도 추가됐다.
안 원장이 현실 정치무대에서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9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부터다. 출마 '검토' 만으로 50%에 육박하는 지지율을 보였던 그는 돌연 5% 지지율의 박원순 후보에게 후보 자리를 양보, 오히려 '통 큰 단일화'로 대중의 호감을 샀다. 이 양보로 인해 한껏 주가를 높인 안 원장은 급기야 18대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했고, 좀처럼 무너지지 않을 듯했던 '박근혜 대세론'을 흔들 수 있는 유력 주자로 떠오르기에 이르렀다.
정치 참여에 관해서는 뚜렷한 언급을 하지 않았지만, 이후 보여준 안 원장의 행보 역시 이런 대중의 요구에 맞아떨어졌다. 지난해 11월 자신의 사재 절반(1500억 원)을 출연해 기부하겠다고 밝혔고, 올해 2월 그를 위한 안철수재단을 설립했다. 지난 5월엔 유민영 전 청와대 춘추관장을 개인 대변인으로 선임해 '대변인이 있는 유일한 교수'가 됐다. 이로 인해 안 원장이 대선 출마의 뜻을 굳힌 것 아니냐는 관측은 더욱 힘을 얻게 됐다.
▲ 19일 대선 출마를 선언한 안철수 원장. ⓒ프레시안(최형락) |
안 원장은 지난 7월 자신의 '대선 공약집'으로도 볼 수 있는 <안철수의 생각>을 펴낸데 이어, 곧바로 그간 출연을 고사해오던 SBS 예능프로그램 <힐링캠프>에 출연하면서 사실상 대권 행보에 속도를 높인다. 이후 "국민의 의견을 경청하겠다"며 비공개 활동을 해온 그는 박원순 서울시장 등을 만나며 정치권의 시선을 집중시켰고, 결국 책 발간 두어 달 후인 지난 11일 "민주당 대선 후보가 선출된 뒤 대선 출마에 대한 입장을 밝히겠다"고 예고했다. 그리고 지난 16일 문재인 후보가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지 정확히 3일 만에 대선 출마를 공식화했다.
이제 현실 정치로 발을 디딘 만큼, 그가 풀어야 할 숙제도 적지 않다. 우선 본인은 입장을 유보한 문재인 후보와의 단일화 문제가 그가 가장 먼저 넘어야 할 산인 것으로 보인다. 1년 동안 정치참여에 대한 말을 아끼며 생긴 고질적인 '전략적 신비주의' 이미지 역시 그가 풀어야 할 과제다.
앞으로 대선까지 남은 시간은 3개월. 그가 출마선언에서 약속한대로 '국민이 선택하는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낼지, 아니면 그간 대선 무대에 나타났다 사라진 숱한 인사들처럼 '알맹이 없는 신드롬'을 남길지는 이 3개월에 달렸다.
안 철 수(安 哲 秀) 원장 약력 /부산 출생, 1962년 2월 26일생 학 력 2008. 5.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와튼스쿨 경영학석사 (M.B.A.) 1997. 5.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공대 공학석사 (M.S.E.) 1991. 2. 서울대 대학원 의학박사 (Ph.D.) 1988. 2. 서울대 대학원 의학석사 (M.S.) 1986. 2. 서울대 의대 의학학사 (M.D.) 1980. 2. 부산고등학교 졸업 1977. 2. 부산중앙중학교 졸업 1974. 2. 부산동성초등학교 졸업 경 력 (역임) 2009.11.- 2011.11 대통령소속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 위원 2008. 9. - 2012. 9. 아름다운재단 이사 2008. 9. – 2010. 9. 대검찰청 검찰정책자문위원 2008. 5. - 2012. 6. 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회 위원 2008. 5. - 2011. 5. KAIST 기술경영전문대학원 정문술석좌교수 2005. 2. - 2011. 2. POSCO 사외이사/이사회의장 2001. 5. – 2003. 4.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회 제 5분과 교육정보위원 1995. 2. - 2005. 3 안철수연구소 창업자 겸 대표이사 1991. 2. - 1994. 4. 해군 군의관 (대위) 1989. 9. - 1991. 2.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전임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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