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에는 우리은행이 구체적인 방안도 제시했다. '하우스 푸어'의 집을 신탁회사에 넘긴 뒤 5년간 주택담보대출 이자율(8~10%)만큼의 차임(월세)을 은행이 최우선수익자로 받는 '트러스트 앤 리스' 제도를 '하우스 푸어' 문제의 대안으로 제안했다. 이 제도는 주택 소유권을 신탁회사에 넘길 때 그 매매대금 대신 근저당권 채무를 소멸시키는 게 핵심이다. 하우스 푸어가 더는 이자를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다. 대신 그 집에서 살려면 임대료를 지급해야 한다.
물론 집을 되찾을 수도 있다. 신탁계약기간인 5년 동안 하우스 푸어가 종전채무를 갚으면 신탁을 해지하고 소유권을 되찾을 수 있다. 반면, 채무를 갚지 못하면 주택은 처분된다.
이 제도는 현재 과중한 주택담보채무 탓에 고통받는 하우스 푸어에게 일시적인 채무유예 기회를 준다는 장점이 있다. 결과적으로 주택이 경매 등을 통해 저가로 시장에 나오는 것을 막아 부동산 가격 급락을 막는데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여러 부작용도 예상된다.
17일 김현미 민주통합당 의원, 박원석 무소속 의원, 민변 민생경제위, 참여연대 등 주최로 '세일 앤 리스백, 하우스 푸어 문제 해결할 수 있나' 토론회에서는 현재 논의되고 있는 '세일 앤 리스 백' 제도의 문제점이 논의됐다. 이날 발제는 백주선 민주사회을 위한 변호사 모임 민생경제위원이 맡았다.
▲ 은마아파트. ⓒ연합뉴스 |
"세일 앤 리스 백, 부작용 상당할 것"
백주선 위원은 "세일 앤 리스 백은 금융권이 하우스 푸어 주택을 시가로 매입할 것인가, 아니면 주택가격이 하락할 것을 예상해 시가의 80% 수준에서 매입할 것이냐에 따라 그 효과는 크게 다르게 나타난다"고 말하면서도 "어느 경우나 그에 따른 부작용은 클 것"이라고 예측했다.
백 위원은 "시가로 구입할 경우, 채무자인 하우스 푸어에게는 유리하지만 주택가격이 하락할 경우 그 부담을 은행이 투자한 특수목적법인이나 배드뱅크가 떠안게 된다"며 "이는 부실로 이어져 자연히 배드뱅크 등을 보증한 공기업 대한주택보증공사 등이 부실하게 되는 원인이 된다"고 설명했다. 자칫하다간 공공의 부실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
백 위원은 "이 경우, 자기소득에 맞지 않게 많은 빚을 낸 하우스 푸어의 잘못을 고스란히 공공이 떠안게 돼 도덕적 해이 논란이 생길 뿐만 아니라, 랜드 푸어와의 형평성에서도 어긋나는 정책이라는 비판을 받게 된다"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시가 이하로 구입하는 경우는 어떨까. 백 위원은 이도 쉽지 않다고 밝혔다. 예컨대 은행이 시가 80%의 금액으로 집을 사들이는 경우, 이자를 연체하지 않고 내고 있는 채무자는 소유권을 상실하면서도 시가의 20% 만큼의 손해를 보는 셈이므로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하우스 푸어 문제 해결 가능성 없다"
반발을 무릅쓰고 정책을 실행한다 해도 실효성이 있을지 미지수다. 현재 시가대로 주택을 구입해도 하우스 푸어 입장에서는 3~5년의 거치기간 동안 소득 30~50%씩 부담해온 이자 손실만큼을 월세로 내야 한다. 백 위원은 "그렇게 5년 환매 기간이나 신탁기간 동안 월세를 내고 거기다 종전 채무를 갚으면 소유권을 찾아올 수 있다"며 "하지만 그렇게 하는 건 불가능하다. 사실상 5년 뒤면 집이 금융권으로 넘어가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적용 대상도 극히 제한적이다. 우리은행이 발표한 내용을 보면 세일 앤 리스 백 대상 가구는 고작 700가구에 불과하다. 하우스 푸어가 2010년 통계기준으로 108만 가구인 것을 비춰보면 턱없이 부족한 숫자다. 백 위원은 "이렇게 한정된 대상으로 정책이 시행된다면 하우스 푸어 문제의 일반적인 대책으로는 실현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고 주장했다.
권정순 서울시 주거재생지원센터 갈등조정관도 실효성이 없을 것으로 예측했다. 권 조정관은 "하우스 푸어가 5년 동안 이자와 동일한 월세를 내면서 원리금을 갚는 건, 5년 후 부동산 경기가 좋아져 다시 주택을 담보로 대출받거나, 로또에 당첨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고 일축했다.
권 조정관은 "결국 세일 앤 리스 백 정책은 현재 위기상황을 5년 후로 미루는 것에 불과하다"며 "금융기관이 주도해,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다 보니 금융기관의 손실은 가급적 최소화하면서 하우스 푸어들이 주로 위험을 부담해야 하는 정책만 나오고 있다"고 비판했다.
"금융기관도 부담을 져야"
백 위원은 "하우스 푸어가 양산된 것은 이명박 정부의 무리한 부동산경기 부양정책도 있지만 은행들이 소득능력에 따라 대출을 해줘야 한다는 금융 기본원리를 망각하고 마구잡이식으로 대출을 해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소득에 따른 상환능력이 부족해도 집값이 오르면 오른 집값으로 갚을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로 주택담보대출을 늘린 게 지금의 100만 하우스 푸어를 양산했다는 이야기다.
백 위원은 "이에 금융기관도 어느 정도 손실을 감수하지 않으면 지금의 대규모 가계부실을 해결할 길이 없다"며 "금융기관이 어느 정도 손실을 보고 하우스 푸어들이 일정 기간 고통을 감내하며 최소한 생계비를 뺀 나머지 돈으로 빚을 갚다가 면책을 받든지, 도덕적 해이를 최대한 경계하면서 법원의 파산과 개인회생제도라는 도산법 방식에 의해 해결하는 방법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