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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디착한 여우 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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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디착한 여우 공주

[해림 한정선의 천일우화(千一寓話)]<8>

승자독식의 신자유주의 시대. 무한경쟁과 이기주의라는 담론 속에 갇힌 우리들에게 세상은 배신과 암투가 판치는 비열한 느와르 영화일 뿐이다. 이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우화(寓話)가 처세를 위한 단순한 교훈쯤으로 받아들이는 근거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와 조지 오웰에게 우화는 고도의 정치적 언술이자 풍자였으며, 대중을 설득하는 탁월한 수단이었다. 또 어떤 철학자와 사상가들에게는 다양한 가치를 논하는 비유적 수단이자 지혜의 보고(寶庫)였다.

<프레시안>에서는 <해림 한정선의 천일우화(千一寓話)]>를 통해 우화의 사회성과 정치성을 복원하고자 한다. 부당하고 부패한 권력, 교활한 위정자, 맹목적인 대중들. 이 삼각동맹에 따끔한 풍자침을 한방 놓고자 한다. 또 갈등의 밭에 상생의 지혜라는 씨를 뿌리고, 아름답게 살고 있고 그렇게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바람과 감동을 민들레 꽃씨처럼 퍼뜨리고자 한다. 한정선 작가는 "얼음처럼 차갑고 냉정한 우화, 화톳불처럼 따뜻한 우화, 그리하여 '따뜻한 얼음'이라는 형용모순 같은 우화를 다양한 동식물이 등장하는 그림과 곁들어 연재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한정선 작가는 화가로서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대한민국 전통미술대전 특선을 수상했으며 중국 심양 예술박람회에서 동상을 받았다. <천일우화>는 열흘에 한 번씩 발행될 예정이다. <편집자>

왕을 뽑는 날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늙은 여우 공주가 수십 년간 등지고 살았던 초식동물들과 화해한다며 하이에나 무리와 함께 숲이 왁자지껄하게 몰려다녔다.

여우공주는 죽은 산양대장들의 무덤 앞에서 고개 숙이고 난 뒤, 산양대장의 아내를 찾아갔다.
"얼마나 가슴 아프셨을지, 제가 그 심정을 잘 압니다. 저도 갑자기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온 세상이 무너진 것 같았습니다."
'산양들을 불온한 생각으로 물들인 자로써 죽어야 마땅한 나쁜 산양대장'이라고 말했던 여우공주가 산양아내에게 눈물을 보이며 말했다.

수첩에 적은 순서대로, 여우공주는 죽은 염소와 어린 토끼들의 무덤도 찾았다. 그들은 선왕에게 욕을 했다는 이유로, 육식동물들의 구역에서 풀을 뜯었다는 이유 등으로 하이에나에게 끌려가 이빨과 발톱을 뽑혀 죽었다.
"제가 왕이 되면 이 숲을 약한 자의 낙원으로 만들겠습니다. 또한 초식동물들이 어디서나 풀을 맘껏 먹도록 하겠습니다."
어미염소와 어미토끼를 만난 여우공주는 이제 약자의 편에 서서 싸우겠노라고 약속했다.

또 여우공주는 채식을 한다며 초식동물들이 보는 앞에서 풀을 뜯어먹었다.
"이 풀은 아주 달군요. 제 소화력이 좋다는 것 모르시죠?"
염소들이 고리눈을 하고 쳐다보자 여우공주가 볼이 미어질 만큼 풀을 씹어 삼켰다.
염소들과 토끼들은 되새김위도 없는 여우공주가 늙으니 소화도 잘하고 아량도 넓어진 모양이라고 소곤댔다.

초식동물들의 구역을 벗어나자, 여우공주는 풀을 칵 뱉었다.
"되새김동물들의 트림은 정말 구역질이 나."
자신의 굴로 돌아가서도 앞발을 목구멍에 쑤셔 넣고 뱃속의 것을 남김없이 캑캑 게웠다.
"나를 풀처럼 씹어대기나 하는 족속들한테 고개 숙일 날도 얼마 남지 않았군."
여우공주가 증오어린 실눈을 뜨고 왕이 될 날짜를 꼽으며 뇌까렸다.

그 때, 굴 밖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발소리를 죽이고 다가간 여우공주는 낙엽을 헤치고 있는 낯선 정체의 등에 긴 발톱을 박았다.
"너도 나를 갉아댔었지. 흠, 이빨과 발톱을 뽑아버리면 무엇으로 갉을지 구경해 볼까."
날다람쥐를 덥석 문 짐승이 사방을 둘러보더니 굴로 사라졌다.

ⓒ한정선

*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그녀의 최대 약점 중 하나는 아버지와 연관된 '과거사'이다.
국민대통합이라는 대의명분을 내걸고 최근에 진행된, 앞으로도 언제든지 진행될 '과거와의 화해'행보는 그래서 관심을 끈다.
그런데 피해 유족들 앞에선 그녀의 마음은 진심이었을까 아니면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었을까. 그녀에게 부족한 진정성이 2%인지, 98%인지의 판단은 국민의 몫이다.
분명한 건 본성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다만 변한 것처럼 행동하고 그렇게 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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