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이 창간 5주년을 맞아 준비한 연속 기획강연의 두 번째 강연자로 나선 최장집 고려대 교수는 29일 오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회의실에서 '한국 민주주의 발전과정에서 노무현 정부의 위상과 향후 과제'라는 제목 아래 이에 대한 자신의 문제의식과 현실진단을 풀어냈다.
최교수는 이어 대담자인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및 추첨을 통해 참석한 30여 명의 청중과 열띤 토론을 벌이며 '민주정부의 민주주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 대한 경로도 모색했다.
"1987년 바로 그 때 정당으로 전화(轉化)했어야"
최장집 교수는 우선 "'87년 체제'를 추동해낸 운동세력이 정당으로 전화하지 못한 것이 우리 사회의 중층적 문제점들의 주요한 원인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짚으면서 기존 정당에 투신한 운동 엘리트들은 자신의 존재기반을 배신하고 기존의 틀에 너무 쉽게 녹아든 '변형주의'의 늪에 빠졌다고 진단했다.
최 교수는 노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 한미FTA 추진 등을 변형주의의 대표적 사례로 꼽으며 "결국 민주화의 대의를 정치적으로 조직화하지 못한 것"을 그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의 진단은 "민주화 운동이 도덕주의적, 반(反)정치적 운동에 경도돼 대중의 정치혐오를 확대시켰고, 이런 반정치적 경향은 결국 이른바 민주화 정권들 내부에서 기술합리주의와 정서적 급진주의가 기묘하게 결합되는 결과를 낳았다"는 쪽으로 이어졌다.
이는 노무현 정부는 물론 이른바 민주화운동 출신의 정치 엘리트들이 신자유주의적 발전전략을 너무나 쉽게 받아들이면서도 '개혁', '도덕적 정치'라는 슬로건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현상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최 교수는 "'민주 대 반민주' 구도나 '보수의 재집권은 시민사회의 괴멸을 가져온다'는 두려움의 담론을 동원하는 것은 실질적 개혁을 방해하는 효과를 가져 올 것"이라며 여권 일각의 '민주 대 반민주' 필승구도의 부활 시도를 강력히 비판했다.
"정당이 핵심" vs "급진적 사회운동을 기획해야"
최 교수의 발제에 이은 토론도 치열하게 전개됐다. 토론자로 나선 성공회대 조희연 교수와 최 교수는 모두 "우리는 생각이 70~80% 정도는 같다"며 웃었지만 '더 많은 민주주의'라는 같은 목표를 향해 두 사람이 제시한 경로 차이는 그리 작다고 말하긴 힘들었다.
"직접적 민주주의의 의미와 가치는 인정하지만 민주주의는 정당이라는 경로를 우회할 수 없다"는 최 교수와 "한국사회는 오히려 너무 정당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에 좀 더 근본적인 시민사회, 시민운동에 대한 기획이 필요하다"는 조 교수의 의견이 부딪힌 것.
이같은 차이와 관련해 최 교수는 "나는 정치학자이지만 조 교수는 사회학자이고 NGO대학원장이라 그런 것 같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다 조중동 때문이다? 알리바이 이론에 불과"
또한 조희연 교수는 최근 들어 현 정권과 권력화된 386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최 교수를 향해 "노무현 정부가 더 개혁적이면 과연 현재의 위기는 없어지는가? 지금 직면한 위기는 훨씬 더 복합적이지 않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조 교수는 "예컨대 백낙청 교수는 '민주화 세력 집권 이후 더 망가진 대한민국'이라는 최장집 교수의 진단에 이의를 제기한 바 있다"며 "백 교수는 분단체제가 제약하고 있는 조건들을 이야기했는데 어쨌든 현 정부의 개혁성 부재 말고 다른 위기 요인을 말해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최 교수는 "민주화 세력, 민주주의 발전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대체로 기득권 세력, 기존의 보수적 지배질서에 대한 비판의 제약 조건을 많이 강조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방향은 환경적 제약요소보다 민주주의를 실제로 움직여 나가는 주체들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라며 "학문적으로 말하자면 행위자 중심의 관점과 비슷한 것"이라고 답했다.
최 교수는 "노무현 정부의 개혁성에 대한 비판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본다"며 "물론 분단체제 등 여러 가지 제약이 많지만 나는 잘 수용이 안 된다"고 부정적 견해를 밝혔다. 최 교수는 "다른 나라도 다 외부적 제약이 있는 것이고, 분단체제의 영향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지금의 현실은 현 정권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통해 만들어낼 수 있었던 공간과는 아주 거리가 멀다"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이런 것(분단체제 요인)을 알리바이 이론이라고 하는데 바로 해야 할 것을 회피하거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효과를 가져온다"며 "'다 조중동 때문이다'며 책임을 전가하는 우리 정부도 마찬가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 교수는 "물론 조중동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조중동이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있다기보다 현 정권의 민주주의의 부족이 조중동의 성가를 높여주고 있는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 발제에 이은 대담, 그리고 청중들과 질의 응답은 모두 두 시간 이십여 분 간 진행됐다. 이 내용의 전문은 다음주 초 <프레시안>을 통해 제공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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