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는 경계하는 눈치다. 재계에 우호적인 논조를 펴는 <한국경제>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발의된 직후 "국민연금을 더 큰 괴물로 만들 건가"라고 비판하는 사설을 게재했다. 재계는 지난해 4월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이 대기업을 견제하는 수단으로 "공적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가 가장 적절하다"고 말했을 때도 거세게 반발했었다.
국민연금기금의 주주권 행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더 나아가 어마어마한 규모로 커진 국민연금기금을 어떤 방식으로 운용하는 것이 적절한가 하는 문제가 다시 화두로 떠올랐다. 국민연금 전문가인 주은선 교수가 힘들어도 꼬박꼬박 국민연금을 내는 서민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지를 짚어봤다. <편집자>
국민연금 급여 삭감과 기초노령연금 도입을 골자로 하는 연금개혁 이후에 국민연금은 국민들의 관심에서 다시 멀어졌다. 그 사이 국민연금기금은 이미 2012년 3월 기준 364조 원을 넘어섰다. GDP의 약 30%에 달하는 규모이다. 국민연금기금은 2012년 우리나라 중앙정부 예산(325조 원) 이상이며, 그 증가세는 더욱 커져서 2014년에는 440조 원을 넘고, 2043년에는 2465조 원에 도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GDP 대비 비중은 50%를 훌쩍 넘어설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러한 얘기를 하면 많은 사람들이 국민연금기금이 고갈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라고, 그 규모에 다시 한 번 놀란다. 국민들이 매달 낸 연금보험료가 원천이 되어 유례없이 큰 규모의 자산이 놀라운 속도로 쌓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속도의 공공기금 적립이 한국 경제에 커다란 영향을 끼칠 것은 분명하다. 한국 역사상 유례없이 큰 규모의 국민연금기금은 한국의 금융 시장, 부동산 시장, 기업의 자금 조달 및 경영, 나아가 정부 운영에도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러나 그 영향력의 내용은 구체적으로 무엇일지, 이렇게 거대한 국민연금기금이 도대체 한국 사회에서 향후에 어떤 위상을 가지며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아무도 가늠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국민연금기금이 가지는 커다란 사회경제적 의미에 비해 한국 사회에서 국민연금기금이 과연 어떤 존재인지, 그에 대한 이해와 그 활용에 대한 논의는 아직 일천하다.
다른 나라 사례가 참고가 될 수 있을까? 과연 다른 나라들도 우리와 같이 거대한 규모의 연금기금을 갖고 있을까? 대부분의 국가는 대규모의 기금 적립 없이 연금을 운영하고 있다. 짧게는 6개월, 길게는 약 5년 이하의 연금급여 지급분을 기금으로 갖고 있다. 30년, 40년 이후의 급여 지급분까지 기금으로 적립하지 않아도, 기금이 고갈된다고 정부와 언론이 하나가 되어 떠들지는 않는다.
우리와 같이 큰 규모의 공적연금기금을 적립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 일본, 스웨덴, 캐나다 정도이다. 그나마 스웨덴과 캐나다의 연금기금은 베이비부머에 대한 안정적 급여 보장을 위한 것으로서, 일정 시기 이후에는 장기적으로 감소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게다가 절대액으로 보면 미국, 일본, 노르웨이 연기금이 한국의 국민연금기금보다 크지만 경제규모 대비 비중, 즉 GDP 대비 비중은 국민연금기금이 가장 크다. 한국에 이어 스웨덴의 AP 기금이 GDP 대비 27.2%, 일본(GPIF)이 25.9%, 미국(OASDI) 17.9%, 캐나다(CPP) 8.6%의 순이다. 한국 국민연금기금의 국민경제 대비 비중은 급속히 증가할 전망으로서 독보적이 될 것이다. 다른 나라의 공적연금기금 사례를 참고할 수는 있지만 한국의 경우는 다른 어떤 사례보다도 국민경제에 대한 영향이 클 것으로 보인다.
수익성 논리에 휘둘리는 국민연금기금 운용
한국에서는 국민연금기금의 본질에 대한 성찰이 전무한 채 국민연금기금 수익률을 높이는 것이 곧 공공성 확보라는 이른바 '수익률 담론'이 지난 십여 년 동안 확산되었다. 공공성, 안정성, 수익성 세 가지를 원칙으로 한다고 하지만 국민연금기금을 사실상 수익률을 중심으로 바라보는 관점, 즉 수익률을 최대화하는 것을 궁극적 목적으로 하는 수익성 논리가 득세하고 있다. 국민연금기금 지배구조 개편 시도에서도 높은 보상을 통해 충분한 유인을 제공하면서, '선량한 관리자'인 금융 전문가가 기금 운용을 전담토록 해야 한다는 논리가 정부 안팎에서 주류가 되었다(보건복지부의 2008년도 국민연금지배구조 개편방안을 참조하라.)
즉, 국민연금기금 운용에서 공공성과 안정성 논리는 실종되었다. 이에 국민연금기금의 성과는 절대적으로 단기 수익률에 준해서만 평가된다. 기금 수익률 1% 인상이 기금 고갈 시점을 2-3년 늦춘다는 별 의미 없는 주장도 수익률 담론 하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수익률 증가를 도모하기 위해서는 안정성을 희생해야 한다는 것(즉, 위험률의 증가), 수익률 중심 투자가 가져오는 다양한 부작용, 수십 년간 계속 수익률을 매년 1%씩 더 올리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국민연금기금의 소진 시점을 2-3년 늦춘다고 해도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는 것은 설명되지 않는다.
국민연금기금 증가 속도도 놀랍지만, 연기금 운용의 수익률 중심 담론이 지배력을 얻고, 이것이 연기금의 실제 운용에 반영된 속도는 더욱 놀랍다. 국민연금기금의 수익률 패러다임에 의한 금융시장 중심 투자가, 금융시장이 성장과 번영의 중심이었던 신자유주의 시대 흐름에 부합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 결과가 국민연금기금의 금융 시장 중심 투자이다. 2011년 말 기준 국민연금기금은 채권에 229조 원, 주식에 75조 원 등 거의 대부분이 금융상품에 투자되어 있다. 미국의 OASDI는 전액 재무성 특별채권에 투입되고, 노르웨이 연기금이 국내경제에 대한 영향력 제어를 위해 전액 해외에 투자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이미 국내 자산시장에서 국민연금은 단순한 하나의 행위자가 아니라 지배적인 행위자로, 때로는 가격 결정자에 준하는 지위를 갖게 되었다. 국민연금기금이 해외자산시장의 주고객이 된 것은 말할 나위 없다.
연기금의 수익률 지상주의는 노동자 이익과 상충
그렇다면 이러한 금융 시장 일변도의 투자, 수익률 지상주의는 국민연금기금의 성격에 부합하는가? 우선 국민연금기금은 국민연금이란 연대적 노후보장제도를 위한 사회보장기금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국민의 노후보장을 위한 사회보장기금은 사회적 기금으로서 사회 성원들의 복지를 위해 형성되고 사회연대 원리에 따라 배분되는 기금이다. 이는 공적연금이 낸 만큼 돌려받는 제도가 아니라 소득재분배를 고려해서 운영되는 근거이기도 하다. 국민연금기금은 노후보장을 위해 대중이 모은 사회적 자본이기에, 공적 사회보장제도의 요구에 부응하도록 운영되는 것이 우선적이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공적연금기금의 본질적 목적은 수익성 추구가 아니라 공적연금제도의 장기적 안정성 확보이다. 국민연금제도의 장기적 안정성은 연기금의 수익률에만 기대는 것이 아니다.
국민연금제도의 장기 안정성은 사회 전체의 발전, 즉 견실한 경제성장과 고용률의 증가에 기반을 둔 것이다. 연금제도는 근본적으로 근로세대가 노령세대를 부양하는 체계로서, 연금제도 지속성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현재와 미래의 근로세대가 창출하는 부의 양과 고용률, 이와 관련되어 보험료를 납부하는 근로자 수와 은퇴자 수의 균형이기 때문이다. 노동시장 참여율은 기금의 수입과 지출을 모두 규정하기에 특히 중요하다. 어느 나라건 공적연금제도의 지속가능성을 근본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출산율, 노동시장 참여율, 경제성장률의 장기적 추이이다. 국민연금기금은 애초부터 연금제도의 미래 부채까지 모두 감당하도록 설계되지 않았고 공적연금기금을 그런 식으로 설계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금융수익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물경제이다. 주식, 채권, 부동산 형태의 연금자산은 결국 실물경제 기반 위에서 점차 매각, 해소될 수밖에 없다.
연금기금은 연금가입자에게 퇴직 후 연금급여 지급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의 안정성 제고 수단이기에 기금이 과도한 위험을 감수하며 수익률을 추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수익률 제고 논리는 운용 위험을 크게 늘릴 수도 있다. 수익률 제고로 기금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문제를 호도하는 것이다. 수익률 제고를 위해 국민연금기금이 부동산 투자에, 사모펀드에, 공항 민영화에, 천연자원 개발에, 그리고 파생상품 투자에 나선다고 할 때 새로운 위험을 떠안게 된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또한 수익률 패러다임에 의한 공적연기금의 금융 시장 중심 투자는 그 자체로 공적연금기금의 본질에 부합하지 않는 다양한 문제점들을 노정하고 있다. 이미 딘 베이커(Dean Baker) 등과 같은 여러 학자들은 연기금이 금융 시장 투자에 나서게 되면서 연금보험료를 내는 노동자들의 이익을 근본적으로 침해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연기금의 금융적 수익 추구가 연금제도의 기반이자 원천인 노동자들의 이익과 상충되면서 고용률을 줄이거나 불안정하게 함으로써 노동자들을 사라지게 한다는 것이다. 연기금의 금융시장투자 단기수익에 대한 집착이 구조조정, 해외 기업이전, 인수합병을 수반하고 이것이 대량 해고의 상시화를 가져온다고 지적한다. 또한 금융시장 투자가 대중화된 상황에서 특히 국민연금기금과 같은 거대 기관투자자들의 수익은 사실상 개인투자자들, 다름 아닌 국민들 개개인의 손실에 다름 아니다.
현재 기금 운용 방식, 대기업에 혜택 집중하고 불안정성 높여
이러한 금융부문 투자의 본질적인 문제점에 더해서 국민연금기금은 몇 가지 특수한 문제들을 중첩해서 안고 있다.
첫째, 국민연금기금은 기금 증가와 소진이 매우 급격히 이루어지도록 되어 있는데, 현재의 금융시장 중심적 운용은 이러한 연기금 증가와 감소가 가져올 사회경제적 충격을 예방하거나 대처하기 어렵다. 국민연금의 축적 사이클을 보면 향후 2043년까지 35년간의 적립시기를 거친 이후 2060년까지 17년 만에 다시 급격히 소진된다. 17년 동안 GDP의 60%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의 금융자산 대부분을 빠른 속도로 연금급여로 현금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연금기금이 이렇게 국가경제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금과 같은 빠른 속도의 자산 취득도 문제이지만 단기간에 집중된 자산 처분 및 급여화도 국민경제 전체와 가입자들, 그리고 국민들의 삶에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이미 여러 곳에서 기금 소진기의 자산 처분으로 인한 시장 폭락 가능성이 제시된 바 있다. 이미 국민연금기금은 2011년 말 기준 국내 주식시가 총액의 5.4%, 국내 채권발행 잔액의 15.5%를 차지하고 있다. 자본시장(주식+채권)에서 국민연금기금이 차지하는 규모 비중은 2030년경 20%대 초반으로 정점에 달할 것으로 2008년 당시에 예측된 바 있다. 부동산 투자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나타난다.
둘째, 전 국민의 노후보장 기금인 국민연금기금의 금융시장 투자는 국민경제 전반이 아닌 대기업들에게 혜택을 집중시키고 있다. 현재 국내 채권시장과 주식시장에서 국민연금기금은 대기업과 국공채를 중심으로 투자한다. 국내 자본시장에서 국민연금기금이 대기업과 정부에게 이미 주요한 자본 조달자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삼성, 포스코, 현대, SK 등에게 국민연금기금은 회사채 구매자이자 주식보유자로서 주요한 자금 조달자이자 주가 지지자이다. 소기업 종사자, 자영업자 등 다양한 경제활동인구가 조성한 사회보장기금이 대기업에게 혜택을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투자의 전문성과 다양성을 높인다는 명목으로 위탁투자 비율은 급속히 증가하였다. 2010년 10월 말 기준 위탁운용자산은 74조 3474억 원으로 금융부문 전체 대비 23.7%였다. 이는 2009년 말 20조 4047억 원에 비해 무려 37.8% 증가한 것이다. 이는 자산운용이 다양한 위험을 떠안는 복잡한 것이 되면서 2011년에는 국내주식투자의 50% 이상, 해외투자의 90% 이상이 위탁투자될 예정이다. 골드만삭스 등 대규모 글로벌 업체부터 국민연금기금이 전체 자산의 70%에 달하는 소규모 업체까지 그 스펙트럼은 넓다. 몇몇 자산운용업체는 존립 자체를 연기금에 의존하고 있다. 명목은 소위 전문성을 활용한다는 것이지만 운용실적상 위탁투자 수익률이 직접투자 수익률보다 높지 않다.
넷째, 해외투자 확대를 통해 국민연금기금은 불안정한 국제금융시장의 위험에 더욱 직접적으로 노출된다. 2000년대에 반복된 전 지구적 금융위기 국면마다 국민연금기금이 0에 가까운 수익률로 선방을 한 것은 해외투자, 주식투자 비중이 적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이지만 해외투자 비중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또한 국민연금기금이 국제 금융시장에 대규모로 투입되는 시기에 한국보다 일찍 베이비붐 시기를 맞이한 선진국 연기금들은 자산을 매각한다. 즉, 국민연금기금은 매각하는 해외연기금 자산의 수요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국민연금기금이 집중적으로 자산을 매각해야 하는 2043년부터 17년 동안의 시기에 누가 자산을 사들일 것인가? 그때 캐나다, 스웨덴, 미국의 공적연기금과 퇴직연금기금 자산 규모는 급감해 있을 것이다. 중국의 국부펀드들에 기대야 할까?
다섯째, 최근 급속하게 증가하는 대체투자의 문제점이다. 대체투자는 통상적인 주식 및 채권투자 이외의 투자로서 해외사모, 국내사모, 부동산 투자, 해외 자원개발 투자 등 다양한 투자처가 개발되고 있다. 해당 항목 내에서 투자 내용에 대한 공적 판단과 개입은 거의 불가능하다. 2004년에야 허용되기 시작한 대체투자 비중은 2009년 말에는 기금의 4.5%로, 다시 2011년 말 기준 약 12%로 급속히 증가하였다. 투자내용 제약이 적은 만큼 급격히 증가하는 대체투자에 대한 시민참여에 의한 통제는 불가능하다. 투자 규모가 얼마든 이는 기금운영위원회의 의결사항이 아니다. 기금운용본부와 복지부, 대체투자위원회의 결정사항이다. 최근 대체투자에서 부각된 것이 해외부동산 투자로서 거래 규모가 주목할 만하다. 최근 국민연금기금이 사들인 런던의 HSBC타워는 약 1조 4860억 원, 시드니 Aurora Place의 가격은 약 7570억 원, 베를린 Sony Center 가격은 약 3380억 원에 달한다고 보도된 바 있다. 뉴욕, 베를린, 시드니, 런던 등에서 계속되는 부동산 투자의 행렬은 계속 위기 상황에 있는 글로벌 금융자본주의의 위험과 국민연금기금의 연동성을 강화시킨다. 그간 금융위기는 금융 시장 위기와 부동산 시장 위기가 동반적이며, 쉽게 해소될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요컨대 국민연금기금의 수익률 지상주의, 이에 따른 금융 시장 투자의 수익은 고용, 투자 등에서 국민들의 비용을 대가로 한다. 또한 국민연금기금은 규모와 급속한 투자 다변화, 즉 주식투자 확대, 해외투자 확대, 위탁투자 확대, 부동산 및 사모투자 확대 등으로 여러 불안정성을 추가하고 있다.
주주권 행사, 필요하지만 경제 민주화 지렛대로 보는 건 비약
국민연금기금이 사회적 기금으로서 갖는 성격과 금융시장 중심 투자의 문제점들에 비춰볼 때 국민연금기금은 장기적 안정성을 고려하여 투자와 회수, 매각 시점을 정책적으로 분산시킬 수 있는 형태의 투자를 고안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일부 대기업이 투자의 직접 혜택을 누리는 투자가 아니라 국민 전체가 투자의 직접적 편익을 누리는 투자로 확대될 필요가 있다. 국민연금기금이 공공주택, 공공보육시설, 공공병원, 그리고 공공노인요양시설 등 공공사회서비스 투자를 강화하여 한국의 복지공급구조를 효율화하는 사회적 효용(social benefit)을 강조한 투자의 사례가 될 것이다. 이는 결국 출산율, 고용률 등의 제고로 이어져 연금제도의 안정화에도 기여한다. 핀란드 연기금의 발전소 투자, 스웨덴 연기금의 공공주택건설, 독일의 재활병원 건립 등은 참고할 만하다.
또한 국민연금기금이 공공성을 띤 사회적 기금이라면 일단 주주로서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한 주주권 행사를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국민연금기금의 주주권 행사는 매우 소극적이었다. 마치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도록 하라'가 모토인 것처럼. 이사 해임, 인수합병 등의 주요 안건에서는 특히 수동적이었다.
최근 국민연금기금의 주주권 행사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관련 법안이 발의되었다. 경영계 일부에서 공포심을 내보이고 있지만 주주 자본주의의 전형인 미국에서 퇴직연기금들의 주주권 행사가 그들이 그토록 지키고 싶어 하는 자본주의 질서를 위협하지 않았다. 오히려 공적연기금, 즉 연기금의 원천인 대중의 요구가 과연 주주권을 통해 제대로 반영될 수 있을 것인가가 고민의 지점이다. 주주권이 소위 '수익'만을 지상의 가치로 하여 행사될 때 투자의 사회적 책임은 잊히고, 이윤을 위한 구조조정과 대량해고가 정당화될 수 있다.
이에 국민연금기금의 주주권 행사를 마치 경제 민주화의 강력한 수단인 것처럼 논하는 것은 사실 심한 비약으로 보인다. 사실 한국의 국가와 자본의 관계, 그리고 주주자본주의의 정착이 갖는 의미를 짚어보는 것이 먼저이다. 그럼에도 국민연금기금이 주주권을 통해 투자의 사회적 책임을 실현하는 것, 자본의 전횡을 막는 것은 지금 할 수 있는, 방기해서는 안 될 책임이다.
▲ 국민연금관리공단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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