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국회의원 선거가 열린 11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2동 제2투표소. 서울의 대표적인 '부촌'인 대치동 노른자위 땅인 은마아파트 내부에 위치한 투표소다.
오전까지 내렸던 빗줄기 탓인지 투표소가 많이 붐비진 않았지만, 꾸준히 주민들이 찾아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한 표를 행사하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도 투표소엔 젊은층보단 50~60대가 많아 보였다. 주민들을 안내하던 요원 역시 "아침부터 있었지만 아무래도 어르신들이 더 많이 보였다"면서 "아무래도 젊은층은 오후나 저녁 때 되어야 많이 오지 않겠나"고 말했다.
'철옹성' 강남, 변화할까? "그래도 새누리당" VS "강남도 변해"
강남을은 새누리당의 전통적인 '텃밭'으로 불리지만, 민주통합당이 '거물급' 정동영 후보를 전진 배치하면서 격전지 중 하나로 부상한 곳이다. 그만큼 선거기간 많은 관심이 강남을로 집중됐고, '강남의 변화'를 얘기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그러나 '강남 공화국'의 벽은 여전히 두터워 보였다. 가족과 함께 투표소를 찾은 김모(61) 씨는 "이곳이야 뻔하지 않나"며 "안보문제도 심각한데 이럴 때일수록 여당을 찍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50대 여성 역시 "살기 힘들다 힘들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 때는 더 살기 어려웠다"며 "민주당은 안 찍는다"고 잘라 말했다.
▲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파아파트에 위치한 대치2동 제2투표소에서 주민들이 투표를 하기위해 줄을 서 있다. ⓒ프레시안(선명수) |
반면 20~30대 유권자들 사이에선 다소 다른 목소리가 나왔다. 대학생이라고 밝힌 최모(25) 씨는 "선관위 디도스 공격에 민간인 사찰까지 저지른 정당에 어떻게 표를 주겠느냐"며 "정동영 후보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20년 넘게 대치동에서 거주했다는 박모(58) 씨는 좀 더 솔직하게 이 지역 '정서'를 털어놨다. 자신은 '보수'가 아니라고 밝힌 그는 "민주당에서 매번 별 볼일 없는 후보를 내다가 이번에 정동영이 나와서 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싫은 내색을 안해도 결국엔 자신의 이해에 따른 투표를 하는 게 이 지역 사람들"이라며 "이 동네 사람들이 상당히 외교적이다. 강남공화국이다 비판은 많지만, 사실 가장 솔직한 투표를 하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첫 총선 치르는 구룡마을 주민들 "총선이 곧 축제"
대치동 일대의 차분한 투표 분위기가 달리, 투표가 곧 '축제'인 곳도 있었다. 20년 만에 첫 총선 투표권을 행사하게 된 개포동 구룡마을 주민들은 마을 자치회관 앞에 옹기종기 모여 총선 이야기로 한창 달아올라 있었다.
1988년 올림픽을 전후해 철거민들이 정착하면서 구룡마을이 형성됐지만, 이곳 주민들은 지난해 5월 주민등록증을 발급받기 전까지 '무허가 판자촌'이란 이유로 선거에 참여할 수 없었다.
주민들도 한껏 들떠 있었다. 자치회관 앞에서 만난 주민 황모(56) 씨는 "첫 투표인데, 당연히 기분 좋지 않겠느냐"며 "이제 우리 주민들도 한 표 씩이 생겼으니, 선거철에만 마을을 찾았다 외면하던 정치인들도 이제 우리를 우습게 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마을 유귀범 주민자치회장 역시 "이번 총선이 우리 마을엔 축제와 같은 것"이라며 "투표소가 문 여는 새벽 6시 전부터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처럼, 컨테이너에 차려진 투표소는 오전 내내 북적였다. 그곳에서 50m 떨어진 자치회관 앞에는 마을 부녀회에서 천막까지 차려놓고 주민들에게 커피와 차 등을 대접하고 있었다.
▲ 구룡마을의 총선 분위기는 '축제'를 방불케 했다. 마을 부녀회에서 투표소 근처에 천막을 차려놓고 주민들에게 커피와 차를 대접하다 선관위와 실랑이를 빚기도 했다. ⓒ프레시안(선명수) |
옆에서 듣고 있던 주민 김모(52) 씨 역시 "이 동네는 대다수 정동영 의원을 지지한다"며 "다른 정치인들이 모두 마을을 외면할 때마다 찾아준게 고마워 주민들이 자원봉사를 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정 후보와 구룡마을 주민들의 인연은 대선후보 시절이던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부터 정 후보는 구룡마을 판자집에서 하룻밤을 머물며 주민들의 고충을 들었고 2011년 수해, 올해 초 화재사건이 났을 때도 직접 현장에 나와 주민들을 도왔다. 2010년엔 예고없이 마을을 방문해 홀로 사는 팔순 노인의 손을 잡고 "왜 정치를 하는지 다시 생각해보겠다"고 눈시울을 붉힌 것은 마을 사람들에겐 잘 알려진 일화다.
▲ 구룡마을에 세워진 첫 총선 투표소. 주민들에겐 20년만의 총선이다. ⓒ프레시안(선명수) |
주민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김옥임(56) 부녀회장은 "마을 어르신들이 새벽일 나가기 전에 비 맞으면서 투표소 열리는 걸 기다리고 계시길래, 따뜻하게 차 한 잔 대접하는 게 무슨 죄냐"며 "우리 마을은 항상 행사가 있을 때마다 부녀회에서 차 대접을 해왔는데, 마을 분위기를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부녀회원 역시 "언제부터 경찰이나 선관위가 구룡마을에 이렇게 관심이 많았냐"며 "이제까지 투표를 해본 적이 없어서 이런게 선거법에 걸리는 건지도 모르는데, 동네 사람들끼리 커피 한 잔 대접 못하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기자에게 "아침부터 새누리당 구의원이 마을을 돌아다니더니, 경찰과 선관위에 불법 선거운동으로 신고가 들어간 모양"이라고 귀띔하기도 했다.
결국 실랑이는 선관위가 "천막에서 선거와 관련된 일체의 얘기를 하지 말 것"을 주민들에게 요구하고 선관위 직원들이 아예 천막에 상주를 하면서 일단락됐다.
개포1동 주민들 "재건축 문제 해결할 사람 뽑았다"
구룡마을과 불과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떨어진 맞은 편 개포1동 아파트단지 주민들의 민심은 또 달랐다.
개포1동 제4투표에서 만난 주민은 "박원순 시장이 당선되고 나서 집값이 얼마나 떨어졌는 줄 아느냐"면서 "이번엔 민주당 안 찍는다"고 말했다. 다른 50대 여성 역시 "재건축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았다"고 말했다.
낡은 5층짜리 아파트단지가 대부분인 이 일대엔 재건축 문제가 유권자들의 최대 관심사다. 아파트단지 입구엔 "박원순표 주택정책 사유재산 뺏어간다"는 붉은 글씨의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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