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원전 1호기 정전 사고 당시 기존 한국전력의 외부 전원, 비상발전기, 수동식 비상교류발전기 등 3중 전력공급망이 모두 작동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자칫하면 후쿠시마 사고와 같이 노심 용융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던 비상 사태였다.
또 사고 당시 문병위 전 고리제1발전소장이 직접 은폐를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으며, 고리1호 원자력발전소는 정전 사고를 은폐하던 한달의 기간 동안 외국 언론사 취재진을 초청해 우리나라 원전의 안전성을 알리는 행사를 실시하기도 했다.
원전의 근본적인 사고 위험과 관리자들의 은폐·비밀주의, 거짓 홍보까지 원자력 발전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총체적으로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3중 전력공급망' 모두 작동 안해…대처 시간도 안전 매뉴얼 넘겨
고리 1호기에는 외부 전력선 2개와 내부 비상디젤발전기 1기를 묶은 전력공급 시스템이 2개 있다. 한수원은 1호기 점검과 함께 전력공급 시스템 하나를 멈추고, 남은 하나의 시스템 중 외부 전력선 1개에 대해서도 점검을 실시했다.
그러다 시설 점검 중 용역업체인 한빛파워의 조작 실수로 연결 차단기를 작동시키면서 외부 1 전력선이 끊겼다. 당시 작업자는 6년간 원전 점검 업무를 해온 숙련공이었으나 이같은 실수를 저질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 작동해야 할 비상발전기는 고장 때문에 작동하지 않았다. 사고 며칠 전 한수원이 점검하고 '성능 양호' 판단을 내렸음에도 가동이 되지 않은 것. 수동 비상교류발전기는 가동에 10분 이상 걸린다는 이유로 아무도 작동시키지 않았다.
결국 한수원은 사고 발생 12분 만에 외부 전력선을 복구했으나 이는 '10분 이내'로 규정한 한수원 내부 매뉴얼도 지키지 못한 것이다.
사고 은폐하는 동안 외신 불러 "한국 원전 안전" 홍보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던 정전 사고를 은폐하는 동안 고리1호 원자력발전소 측은 외국언론사 취재진을 초청, 우리나라 원전의 안전성을 알리는 행사를 실시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오는 26일부터 이틀간 서울에서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의 취재진을 초청해 지난 1일 고리 원전 1호기를 방문케 한 것이다.
고리원전 관계자들은 해외 취재진들을 대상으로 "지은 지 30년이 지났지만 안전성에 전혀 문제가 없다"며 우리나라 원전의 우수성을 설명했다. 고리 원전 측이 외신 기자들을 상대로 세계적인 거짓말을 한 셈.
이와 관련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14일 맨해튼 유엔 본부에서 "(핵안보정상회의에서) 핵 안보 문제와 더불어 원자력 안전 문제도 중요한 의제가 될 것"이라며 "지난 1986년 체르노빌 사고가 터진 지 25년 만인 지난해에 일본의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발생해 원전 안전 문제에 대해 국제적으로 큰 경각심을 불러왔다"고 말했다.
고리 제1발전소장 "내가 은폐 결정…윗선 지시는 없었다"
한편 사고 당시 책임자였던 문병위 전 고리 제1발전소장은 원자력안전위원회 조사에서 "(사고은폐는) 내가 결정했으며 윗선 지시는 없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주제어실에 있었던 간부들에게 '오늘은 (상부에) 보고하지 않겠다'는 말을 했다"며 밝히기도 했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사고를 은폐하고 보고의무를 지키지 않은 한수원 관계자들을 형사고발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수원은 사고 이후 위기관리실장에 임명했던 문 전 고리 제1발전소장을 보직해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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