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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의 실패를 넘어, 인간의 실패를 꿈꾸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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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의 실패를 넘어, 인간의 실패를 꿈꾸는가"

[세상이 'J'에게·③] "상식과 진보를 표방하는 정치권력이 절실"

재능교육 학습지노동자들이 스스로의 노동권을 찾고자 거리로 나선 지 2012년 1월 28일로 꼬박 1500일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서울 한 복판, 시청광장에서 보이되 보이지 않는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사람들. 오랜 한뎃잠에 몸도 마음도 축이 나고, 바닥의 한기도 언제까지 버텨낼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나날들이었다.

언제까지 이들이 풍천노숙을 해야할까. 재능교육 노동자들을 위해 많은 이들이 그들을 지지하고 나섰다. <프레시안은> B급 좌파가, 작가가, 노동운동가가, 청년이, 혹은 당 대표가 그들에게 전하는 목소리를 릴레이로 싣는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와 재능out 국민운동본부에서 공동으로 기획했다. 그들이, 혹은 세상이 재능노동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편집자>


어떤 불편함

고백하건데, 치열한 투쟁의 현장을 지켜보는 나의 감수성은 '불편함'이다. 사안의 해결을 위해 투입되는 역량과, 산출되는 결과의 그림이 그려지지 않을 때, 나는 냉소를 느낀다. 이 치열함이 누적되면 정말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라는 회의감에 빠지다가도, 이 분들이야 말로 대한민국의 절망을 온 몸으로 막아내는 '최후 저지선'이라는 생각에 이르고 나면, 이런 제길…. 이건 조물주의 농간이라 여겨진다.

1차 희망버스가 재능에서 집결하여 부산으로 떠나고, 수 만 명의 시민들이 한진중공업을 방문하고, 청문회가 열리고, 국정감사가 이어지고, 결국 김진숙 지도위원이 땅을 밟는 극적인 순간을 바라보며, 나는 다시 한 번 고뇌에 빠졌다. 자, 이제는 어디인가? 희망에 힘을 모은 수 만의 시민들을 '복사+붙여넣기' 할 다음 현장은 어디인가? 쌍용으로 가면 되는가? 재능으로 가면 되는가? 한 인간이 타인을 위해 쓸 수 있는 마음의 여백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김어준 총수의 중얼거림이 떠오른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자신은 여의도에 5만의 인파를 끌어냈다.)

물론, 현장의 치열함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없다. 1500일이라는 영겁에 비하면 찰나이겠으나, 투쟁의 시공간에 함께하고 마음을 나누는 것은, 투입과 산출이라는 비유로 설명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 현장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RT를 날리는 노력 또한 마찬가지이다. 뒤늦게 조금 뜬금없지만, 재능지부 조합원분들께 경의를 표하고, 이 부족한 끄적임을 보내드린다.

▲ 재능지부 1500일 투쟁 결의대회. ⓒ노동과세계(이명익)

박성훈 빙의

잠깐 미친 척 하고, 재능교육 박성훈 회장의 감수성으로 빙의 해본다.

학습지 교사에게 '자영업자'라는 라벨을 씌우고, 노동자성을 부정하는 것은, 그의 입장에서 대단히 합리적인 선택이다.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의 노동조합 설립이 인정 되고 단체교섭을 꾸준히 진행 해왔다는 점에 비추어 심각한 모순이 있지만, 그래도 배 째고 버텨야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위상을 획득할 수 있다.

그의 시각에서 인건비는 말 그대로 '비용'에 불과하며, 이 비용을 최대한 줄이고 교사들을 무한경쟁 뺑뺑이에 집어넣어 효율성을 극대화 할 수 있다면, 최대의 산출을 얻게 된다. 그들이 노동자라면 기본적인 임금을 보장하고, 이것저것 보호해야 한다. 그러니까 비용이 증가한다. 하지만 그들이 자영업자라면, 원청업체가 하청업체의 실적 부진에 대해 징벌을 내리는 논리를 그대로 긁어 올 수 있다.

재능이 학습지 교사에게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귀하가 받으실 금액은 560원입니다"라며 태연하게 통보해도, 상관없다. 자수성가로 대한민국 100대 주식 부자에 들었으니, 이 얼마나 빛나는 성공인가. 저 차가운 길바닥에서 몇몇 사람들이 1500일 농성을 하고 있건 말건, 박성훈 회장의 리더십과 성공스토리를 찬양하는 기사들이 지면을 도배하고 있다. 그러니까 상관없다.

이 조건에서, 인간은 기로에 선다. 박성훈 회장의 감수성이 정당하다 여기는 생각들의 합은 '신자유주의'라는 섹시한 '깔대기'로 수렴된다.

시장의 실패, 인간의 실패

35m 상공에서의 300여 일, 같은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의 연이은 죽음, 냉혹한 아스팔트 위에서의 1500일, 이것들이 정당화 되는 세계 앞에서 나는 시장의 실패, 그리고 인간의 실패를 발견한다.

1944년 필라델피아에서는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일부의 빈곤은 전체의 번영을 위태롭게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노·사·정의 선언이 발표 되었다. 갤럭시s와 아이폰이 경쟁하지 않는 자본주의 시스템은 성립할 수 없으나, 이 과정에서 인간이 가꾸어야 할 '최소한의 정의'를 고민하지 않는 사회는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아이패드와 SNS가 존재하지 않았던 70년 전의 인류가 깨달은 가치를, 글로벌 스탠다드와 선진 일류 국가를 지향하는 이들이 부정하는 까닭은 대체 무엇인가.

좋다. 자신의 성공을 온전히 '리더십과 도전정신'에서 발견하고, 타인의 빈곤을 온전히 '게으름'에서 발견하는 이들에게 인간의 가치를 읊어봐야 쥐 귀에 경 읽기라는 것, 다 안다. 그렇다면 이 와중에 국가권력은 대체 무엇을 하는가? '옳음'이 아닌 '이윤'을 작동원리로 삼는 시장이 잘못 된 방향을 잡았다면, 그리하여 인간의 실패가 목전에 있다면, 국가는 보이는 손을 작동하여 사회 정의를 설계해야 마땅하다. 이 와중에 법질서 운운하며, 빨갱이들과는 도저히 합리적인 소통이 안 된다며 쉰소리 늘어놓고 있으니, 직무유기의 도가 지나쳤다.

한 걸음 앞으로

절망의 국면에서 절망하기를 멈춘다면, 인간의 실존은 종료된다. 가장 깊은 심연 속에 우리가, 인간이 나아가야 할 길이 있을 것이다. 대체 우리는 어디로 가야하는 것일까.

많은 의견들이 있겠으나, 나는 이 지면을 빌어 정치의 가능성을 논하고 싶다. 교착 상태에 빠진 전투의 실마리는 새로운 공간의 창출이며, 더 강력한 권위의 작동이다.

상식과 진보를 표방하는 정치권력의 힘이 절실한 순간이다. 재능을 넘어, 특수고용 노동자를 넘어, 이 땅의 현재와 미래를 새롭게 쓸 가치와 확신을 보여주시길 바란다. 말은 쉽다고 하겠으나, 진보와 정치의 사이에는 협소한 오솔길만이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포기할 수 없는 길을 묵묵히 걷는, 희망의 근거로 거듭날 정치권력을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아스팔트 최후 저지선에서 인간의 한계를 의심케하는 재능지부 조합원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 이 지루하고 잔혹한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뜨거운 승리가 있음을 굳게 믿는다. 그리고 이 승리가 대한민국 청년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선사할 것임을 확신한다.

-이에 대해 재능교육 측은 법원과 검찰, 관련 행정기관이 모두 학습지 교사는 근로자가 아닌 개인사업자로 판단하고 있다고 알려왔습니다.

- 아울러 유득규 씨 등 9명이 제기한 부당해고 구제 신청사건도 서울지노위, 중노위에서 모두 각하됐다고 알려왔습니다. 또한 회사 측과 수수료 제도에 합의했던 집행부가 물러난 뒤 새로 들어선 집행부가 단체협약의 사실상
폐기를 요구하며 농성에 돌입, 학습지 노조의 단체협약이 해지됐다고 밝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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