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2011년 비정규노동 수기공모전'을 진행했다. <프레시안>은 당선된 작품을 지면에 싣는다. <편집자>
비정규직. 노동부는 이들을 계약직, 일용직, 간접고용 노동자로 정의한다.
이 사회에는 수많은 직종이 있다. 많은 산업이 있고 그 안에는 수많은 직군이 존재한다. 그 중 대학 진학률이 80%가 넘어가는 지금, 사교육 시장에 뛰어드는 청년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과외와 학원 강사 등이 대표적이다. 사교육이 사회에서 어떤 의미와 역할이 있는지에 대한 논의는 잠시 접어두자. 지금은 사교육 시장에 뛰어들어 계속 돈을 벌어온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교육 시장에서 일하고 있는 많은 청년들의 노동권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자 한다.
나는 올해 2월에 대학을 졸업했다. 서울에서 잘나가는 명문대에 입학했었다. 입학 발표가 났을 때 부모님께서는 무지 기뻐하셨다.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에서 자취를 하면서 꽤 많은 생활비가 들었지만 일류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을 구하고 돈도 잘 벌어 '잘 먹고 잘 살' 것이라는 기대에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부모님께서는 매달 꼬박꼬박 생활비를 보내주셨다.
하지만 학교 근처가 아무리 물가가 싸다고 해도 집에서 보내주는 돈 만으로는 자취방 월세와 밥 값, 모임 회비, 책 값 등, 학교를 다니며 드는 생활비를 감당하기 힘들었다. 처음에는 룸메이트를 구해 방 값을 줄이고 먹게 되는 끼니 수를 줄이거나 선배에게 밥을 얻어먹으며 생활비를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한 두 달이지 지방에서 홀로 올라온 대학생에게 '서울살이'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어느 새 후배도 들어왔고 한 끼에 4000원을 넘지 않던 자취방 동네의 물가도 슬금슬금 오르고 있었다. 게다가 매 학기 내야하는 등록금 역시 매달 드는 생활비의 부담을 더욱 무겁게 하고 있었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 집에서는 등록금을 계속 대주지 못했고 결국은 4학기 이후에는 학자금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매달 들던 생활비에는 어느새 학자금대출 이자라는 지출내역이 추가되었다.
해서 조금이라도 생활비를 벌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과외'였다. 학교를 다니고 있는 학생이 제대로 된 직장을 가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휴학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돈을 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과외였다. 시간도 많이 들이지 않고 상대적 시급도 높으니 명문대 학생으로서는 최선의 선택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생활비를 위해 시작한 일이다 보니 가장 중요한 것은 끊이지 않고 안정적으로 수입을 보장받는 것이었다.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던 수입이 예상치 못하게 끊기게 된다면 당장 그 달의 생활이 불가능해지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대로 과외는 상대적 시급이 높아 돈을 잘 벌 수 있는 수단이었지만 안정적으로 수입을 이어가기에는 적합한 일이 아니었다. 과외 하는 집의 상황에 때라 언제든 한마디 말로 끝날 수 있는 것이 과외였다. 경제적 여유가 없다거나, 과외 하는 아이와 잘 맞지 않는다던가, 기대한 만큼 성적이 잘 오르지 않으면 언제든 끝나게 되는 것이 바로 과외였던 것이다. 처음 과외를 시작할 때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학년도 어린 아이여서 내용 준비도 많이 할 필요가 없었고 거리도 적당하여 다니는데 큰 불편함이 없었다. 그렇게 3개월 정도 첫 과외를 하면서 생활비에 조금은 보탬이 되는 수입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리 쉽게 일을 계속 할 수 있었다면 이 글을 쓰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돈을 버는 것도 중요했지만 대학을 다니면서 공부와 함께 동아리와 학생회 등 몇 가지 활동을 같이 하고 있던 나에게 계속해서 시간을 빼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처음에는 조금 무리를 하여 가능했었지만 시험기간과 동아리 행사 등이 겹치게 되자 과외시간을 고정적으로 가져가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웠었다.
한 두 번 정도 부득이하게 시간을 바꾸게 되었더니 마지막 약속된 수업을 진행하고 나서는 과외 하는 집에서 연락이 왔다. 이제 과외 그만 하겠다고. 시간을 변경할 때 사정이 있음을 모두 설명하고 아이도 다른 학원을 다니지 않아 시간이 넉넉하여 합의하고 시간을 바꿨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시간이 바뀌는 것 자체를 탐탁지 않아했던 것이다. 이렇게 예상치도 못하게 첫 과외가 끝났다. 내 손으로 돈을 번 첫 번째 일이 끝난 것이다.
이후에도 2번의 과외를 더 했었다. 첫 과외의 경험이 있었기에 이후의 과외에서는 무리를 해서라도 시간을 꼭꼭 맞춰갔다. 하지만 두 번의 과외 모두 그 집안의 사정 때문에 그만 두게 되거나 아이와 스타일이 잘 맞지 않아 아이 어머니의 요구로 그만두게 되었다.
그런데 과외는 이리 불안정한 일이었다는 것을 제외하고도 다른 어려움이 또 존재했다. 바로 과외를 구하는 과정에서의 어려움이었다.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에 별다른 연고가 없었던 나는 과외를 알선업체를 통해서 구하게 되었었다. 내가 찾아갔던 알선업체는 처음 과외 선생으로 등록할 때 가입비 명목으로 2만 원을 받았었다.
그리고 과외가 연결이 되면 첫 달 과외비의 50%를 과외 알선 수수료로 받았었다. 듣기로 과외 알선업체마다 차이가 좀 있지만 대부분의 과외 알선업체는 이렇게 가입비와 알선 수수료를 받고 있었다. 또한 그 수수료가 많게는 첫 달 과외비의 100%, 혹은 3개월간 과외비의 50%를 받는 곳도 있었다.
비정규직으로 일을 한다 하더라도 직장을 구하게 되면 그 일한 월급은 모두 노동자가 가지게 된다. 직업소개소를 통해서 일을 구한다 하더라도 그 수수료는 3개월간 임금의 4% 정도라고 법에 정해져있다고 한다. 과외 같은 사교육 시장에서의 일이 4대 보험도 적용 안 되고 다른 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급이 높다지만 첫 달 과외비의 50%라니. 과외 역시 엄연한 노동이며 여기에는 학생과 부모를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감정노동의 어려움도 따르게 된다.
게다가 고용(?)의 불안정함은 다른 어느 업종과도 비교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직업소개소로 등록되지도 않은 알선업체들이 음지에서 경제난에 학비와 생활비를 벌고자 하는 학생들의 노동의 대가를 착취해가고 있는 것이다. 서울소재 대학에 다니는 상당수의 대학생들은 과외를 구하면서 다들 한 번씩은 겪은 일이리라.
들리는 풍문에 의하면 악덕 알선업체에서는 이런 꼼수도 부린다고 한다. 우선 과외 자리를 알선한다. 그러고 나서는 선생(대학생) 모르게 수업을 받는 학생의 부모님과 이야기를 한다. 한 달 수업을 해보고 선생님의 수업이 별로 효과도 없는 것 같고 맘에 들지 않아 그만 두려 한다고 이야기하라고, 그러면 더 싼 수업료에 더 좋은 선생님을 찾아서 연결해 주겠다고. 이렇게 되면 과외를 받는 집에서는 그다지 손해 볼 것이 없다.
좀 더 싸게 좋은 선생을 구할 수 있다는데 혹하지 않겠는가. 알선업체는 연달아서 새로 소개한 과외 선생으로부터 수수료를 받아 챙길 수 있고. 이렇게 알선업체와 학부모가 공범이 되는 순간 피해자가 되는 것은 선생(대학생)뿐이다. 한 달 수업(일)하고 받는 과외비의 50%를 수수료로 떼여서 노동의 대가가 절반 밖에 손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바로 잘리고 나서 다시 과외를 구하게 되면 또 첫 달은 수수료가 따로 나가게 되니 말이다.
집에서 용돈을 받아쓰다가 과외를 하다가, 이런 생활을 반복하다보니 어느새 졸업을 앞두게 되었다. 계속 늘어난 학자금 대출 이자의 부담이라도 줄이기 위해서 졸업 직전부터는 결국 고정적인 수입을 위한 일을 찾아야 하게 되었다. 졸업하기 전이기에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는 못했고 과외보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일을 찾은 것이 바로 학원 강사였다. 구직사이트를 통해 근처 동네 학원에서 수학학원 강사 자리를 구하게 되었다.
이렇게 시작한 학원 강사 일은 순조롭게 수입을 보장해주는 것 같았다. 과외보다 시간이 고정적이고 강제성이 있었기에 애초에 학교에서의 생활도 그에 맞춰 진행하게 되었다. 수입도 고정적인 월급이 보장되었고 과외처럼 학부모들을 직접적으로 대면해야 하는 일도 상대적으로 적었다.
덕분에 집에서 생활비를 받지 않고 혼자 번 돈으로 생활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이 있었다. 이름난 재수학원과 같이 유명하고 규모가 있는 학원이 아닌 일반 동네 학원들은 학생들의 수가 많지 않아 몇 명의 학생들이 들고 나감에 있어 많은 영향을 받았다. 내가 다니던 학원 역시 일을 시작하고 4개월이 지나 방학이 끝나갈 무렵 학원생이 줄기 시작했다. 문을 연지 얼마 되지 않은 학원이어서 그에 대한 영향이 더 컸다. 결국 나는 2011년이 시작되는 날, 문자로 학원이 문을 닫게 되었음을 '통보'받았다. 새해를 맞이하며 백수 혹은 실업자가 된 것이었다.
이 당시에 나는 졸업 준비를 모두 마치고 방학을 맞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시간과 돈이 드는 '취업준비'를 여유 있게 할 수는 없었다. 해서 바로 다시 학원 강사 일을 찾았다. 새로 찾은 학원은 3월부터 일을 할 수 있었다. 해고 문자통보 받은 1월과 새로 일을 시작하기까지의 2월은 수입이 없이 생활을 했어야 했던 것이다. 마지막 달에 받았던 월급과 집에서 다시 생활비를 받아 버텨야 했다.
그렇게 2달을 겨우 버티고 나서 새롭게 일을 시작한 학원은 이전 학원보다 조건이 좋았다. 월급도 더 많았고 학원 규모도 더 커서 일도 안정적이었다. 현재까지 9개월을 별 무리 없이 일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조건이 더 좋은 학원도 일을 하는데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다. 정식 학원 강사 등록이 되어 신분(?)도 확실해졌지만 나는 학원에 고용된 노동자로서의 학원 강사가 아니라 개인 사업자로서의 학원 강사였다. 4대 보험에 가입된 것이 아니라 소득세를 내는 개인 사업자인 것이다.
학원에서 수업 내용에 대한 지시를 받고 월급도 받고 있지만 나는 dl 내가 개인 사업을 하고 있는 특수한 상황의 노동자다. 상황이 변하여 학원이 문을 닫는다거나 해고가 된다 하더라도 나는 실업급여의 혜택도 받지 못하고 수업하다 목이 안 좋아져 병원을 다니게 되더라도 산재처리를 받지 못한다.
노동자이지만 노동자이지 못한, 고용이 안정되지 않은 비정상적인 일자리. 갈수록 어려워지는 경제상황과 높아만 가는 사회진입 문턱에서, 수많은 청년들이 사교육 시장에서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 삶을 꾸려가지만 언제나 불안정한 상황에 불안할 수밖에 없는 현실. 해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들의 노동권이 보장되는 것 역시 이 땅의 많은 청년들, 비정규직들의 권리를 향상시키는 과정의 하나라고.
* 이 글의 원제는 <사교육 노동자, 이들의 노동권은 어디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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