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서울 노원구 평생교육원에서 '방사능 아스팔트 처리와 재발방지,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는 폐아스팔트 처리 책임을 노원구청에 미루고 있는 원자력안전위에 대한 비판이 높았다.
또 이 토론회에는 노원구민 등 다수의 시민이 참여해 이번 사태에 대한 관심을 보여줬다. 노원구에서는 이번 방사능 아스팔트 사건 외에도 구(舊) 한국원자력연구원 부지의 간이 보관 시설에 중저준위 폐기물이 쌓여 있으며, 지난 1998년에는 노원구의 원자력병원 한 의사가 방사선 동위원소를 변심한 애인의 차량에 넣은 '테러 사건'이 발생하는 등 유독 방사능과 관련된 사건이 많았다.
"강창순 원자력 안전위원장 '원자력 안전 책임 없다'고 하더라"
이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길어지는 데는 중앙정부, 특히 원자력안전위가 이 문제를 노원구청에 떠넘기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원자력안전위는 문제가 불거지자 "인근 주민들의 방사선 피폭량은 연간 1밀리시버트 이하라 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의견을 제시했으나 이후 걷어낸 아스팔트에 대해서는 '중저준위 폐기물'이라고 인정했다. 그리고 중저준위폐기물을 구청에서 처분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 우원식 민주당 방사능 폐아스콘 진상조사 위원회 간사는 지난달 28일 이뤄진 강창순 위원장과의 면담 내용을 공개했다.
우원식 간사는 "강 위원장의 첫 마디가 '이런 일 생기면 또 그 짓 할거여'였다"며 "말하자면 '우리가 안전하다고 하는데 구청이 뜯어냈느냐, 구청이 안전한 것을 뜯어내 중저준위 폐기물을 만들었다'는 뜻이었다"이라고 말했다.
우 간사는 "강 위원장은 또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원래 원자력 관련 규제를 하는 곳이지 안전에 대한 책임은 없다'고도 하더라"면서 "'폐아스팔트 폐기물은 도로법에 의해 구청 소관이므로 이 처리도 구청에서 해야 한다'는 것이 강 위원장의 주장이었다"고 전했다.
▲ 9일 서울 노원구 평생교육원에서 열린 '방사능 아스팔트 처리와 재발방지,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 ⓒ프레시안(채은하) |
또 원자력안전위원회는 폐아스팔트 처리 지침을 요구하는 노원구청에 "노원구가 방사성동위원소 소지에 대한 인허가를 취득한후 관리하라"는 식의 '황당한' 제안도 했다.
이날 우 간사가 공개한 '노원구 도로 폐기물 관리 가이드 라인' 공문에 따르면 원자력안전위는 "노원구가 방사성동위원소 소지에 대한 인허가를 득한 후 관리하거나 폐기물 수거처리 운반 업무 대행자에게 위탁하여 관리하라"는 가이드라인을 보냈다.
우 간사는 "긴급 대처를 한 구청이 '중저준위 폐기물을 만들었다'식의 문제제기를 하는 원자력안전위가 놀랍고 화가 났다"면서 "중저준위 폐기물을 어디로 옮기든 그것은 구청에서 판단할 일이 아니라 원자력안전위에서 판단, 집행하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앙정부가 방사능 물질을 책임지는 선례를 남기지 않으려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 같다"면서 "이런 식의 기관이 과연 원자력 안전위라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진흥위원회가 아닌가. 과연 이런 진흥위가 필요한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국가가 국민 생명 책임 방기한 것…헌법 소원 준비 중"
방사능 아스팔트 폐기물을 두고 노원구청과 원자력안전위가 오래 대치하는 데에는 비용의 문제가 깔려있다. 현행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인도규정 등에 따르면 이 아스팔트는 200L의 표준 운반용기에 나눠담아 밀봉해 처리해야 한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현재 320톤의 아스팔트를 분류, 운반, 방폐장 보관 등의 과정을 거쳐처리하는 비용은 약 538억 원으로 추산되고 있다"며 "이 책임은 1차적으로 방사성 동위원소 관리를 소홀히 한 정부에게 있고, 이를 지자체에 떠넘기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억지성 주장"이라고 꼬집었다.
이 대표는 "부실한 법제도의 문제가 깔려 있다"며 "현행 관리체계가 법적으로 관리되는 방사선 물질에 대한 관리만을 규정하고 있을 뿐 원인을 알 수 없거나 예기치 않은 물질에 대해서는 관리대책을 규정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사태는 방사능 테러나 핵추진 인공위성이 추락했을 때 등에 대한 대책이 없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녹색당 사무처장을 맡고 있는 하승수 변호사는 "우리나라의 법 체계상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국가가 책임지고 지자체는 그중 일부 사무를 분담하도록 되어 있다"며 "그러나 지금은 국가가 그 책임을 방기해 헌법을 위반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녹색당 창당준비위원회는 방사능으로부터 시민과 아이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헌법소원을 제기할 예정이며 현재 국민소송 원고 모집 중"이라며 "국민소송의 대상은 우리나라 정부의 무책임한 의무 방기와 허술한 관계 규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시민들의 동참을 호소했다.
▲ '노원 방사능폐기물 이전 촉구 주민대책위'가 노원구청 앞에 설치한 텐트. ⓒ프레시안(채은하) |
"마구잡이 방사능 산업 확대와 부실한 관리가 사태 불렀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서는 이번 방사능 아스팔트 사태는 허술한 방사능 동위원소 관리 정책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김제남 녹색연합 녹색에너지디자인 운영위원장은 방사선 산업을 확대하겠다며 방사성 동위원소 이용을 장려, 확대하는 정부의 '방사선 및 방사성동위원소 이용 진흥계획'에서 문제 원인을 찾았다.
김제남 위원장은 "2002년 이후 방사성동위원소 이용업체들이 무분별하게 확산됐다"면서 "2009년 말 현재 방사선동위원소 이용업체는 4157개에 달하며 매년 10% 이상 증가 추세"라고 밝혔다.
그는 "이들 업체들은 대부분 아닌 허가가 아닌 신고 업체이고, 정기적 검사의 의무가 없어 이들의 방사성 물질 관리 실태, 오염 실태에 대한 추적이 어려운 실정"이라며 "이번 아스팔트에서 검출된 세슘 137을 산업용 게이지, 방사선 치료, 식품 조사, 습도·밀도 측정기 등에 이용하는 업체만 해도 345개에 이른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이런 업체가 난립하면서 부도, 파산하는 경우가 많고 부실한 관리로 분실, 도난, 방사능 오염, 작업자 피폭 사건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며 "안전규제를 받지 않는 방사성 물질이 전 영역으로 퍼지고 시민 누구나 방사능 오염에 노출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원자력 안전위는 방사능 아스팔트가 수입재활용 고철 슬래그가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했으나 10년 전 당시 아스콘 재활용 가능성이 낮고, 수입된 골재를 사용한 경우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번 경우는 국내 방사능 업체의 기기를 고철로 재활용해 섞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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