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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미를 든 대통령'과 영부군(令夫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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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미를 든 대통령'과 영부군(令夫君)

<기자의 눈> 대통령과 기업가들이 핀란드에서 배워와야 할 것

지난 8월부터 한 공중파 방송사는 매주 일요일 미 ABC 방송이 제작한 '커맨드 인 치프'(Command in Chief: 최고 통수권자)라는 TV 시리즈물을 방영하고 있다.
  
  이 시리즈물의 주인공은 최초의 미국 무소속 여성 대통령 멕켄지 엘런이지만 최초의 '퍼스트 젠틀맨'으로서 퍼스트 레이디들이 도맡던 역할을 치르느라 골머리를 앓는, 대통령의 남편 로드 앨런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런데 우리말 방송은 퍼스트 젠틀맨이란 문구를 '영부군(令夫君)으로 번역하고 있다.
  
  아시아 유럽 정상회의(ASEM)가 개막된 10일 핀란드 헬싱키에서는 가상이 아닌 현실의 영부군이 'ASEM 정상회의 참석 정상 배우자들을 위한 만찬'을 주최했다. 타리야 카리나 할로넨 핀란드 대통령의 남편인 펜띠 아라예르비가 바로 그 주인공.
  
  15년 동거남을 거쳐 '영부군'에 등극한 대통령의 전 보좌관
  
  요하임 자우어(앙엘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남편), 투아손 아로요(글로리아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의 남편) 등 다른 두 영부군도 자리를 함께 했지만 관심은 단연 펜띠 아라예르비에게로 쏠렸다. 할로넨 대통령과 아라예르비 부부야 말로 핀란드의 상징적 커플이기 때문.
  
  할로넨 대통령 보다 나이가 어린 아라예르비는 현재는 법학교수 직을 맡고 있지만 의회에서 보좌관과 전문위원으로 오랜 경력을 쌓았다. 그런데 아라예르비가 모시던 의원은 바로 할로넨이었고 두 사람은 15년간 동거생활 끝에 할로넨이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야 결혼에 골인했다. 게다가 결혼 전 아라예르비는 대통령궁에서 열리는 각종 공식 행사에 '동거남' 자격으로 참석하기도 했다.
  
  우리 상식으로는 상상도 힘든 일이지만 현존하는 국가들 가운데 양성평등이 가장 잘 이뤄졌다고 평가받는 핀란드에서는 이는 그리 드문 사례도 아니다. 할로넨 내각의 각료 18명 가운데 8명이 여성이고 의원 중 여성비율은 38%, 상장기업 CEO가운데 33%도 여성일 정도니 '동거', '연하의 남편', '사회적 지위가 높은 부인' 등은 뉴스거리도 아니라는 것.
  
  물론 지난 1월 재선에 성공해 6년의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할로넨의 이력은 그 중에서도 눈에 띈다.
  
  헬싱키 법대 재학시절 사회주의학생연맹의 제1서기를 맡아 학생운동에서부터 두각을 나타낸 할로넨은 헬싱키 시의원, 국회의원, 법무장관, 보건장관, 외무장관 등 엘리트 정치인 코스를 차례로 밟았다.
  
  할로넨은 의원 시절 이미 혼외정사로 낳은 딸을 키우는 싱글맘이었고 그 이후 자신의 보좌관과 동거를 하면서 아들을 하나 더 낳았지만 이는 그의 정치적 승승장구에 아무런 걸림돌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화려한' 모습은 할로넨 대통령이나 핀란드의 한 쪽 면에 불과하다.
  
  '다리미를 든 대통령'과 '황당' 뉴스
  
  "지난 2002년 한국을 방문한 핀란드 대통령 '타르야 카리나 할로넨'의 검소함은 그가 묵었던 호텔 사람들을 경악케 할 정도였다. 호텔 직원 말로는 그는 핀란드의 자기 집에서 쓰던 다리미와 다리미판을 가져와 객실에서 손수 옷을 다려 입었다고 한다. 또한 '내 머리 손질은 내가 직접 할 수 있다'며 호텔에서 제공한 전문미용사의 머리 손질도 사양했다."
  
  이는 김정수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사무처장이 지난 5월 출간한 '다리미를 든 대통령'의 한 구절이다. 부패 없는 나라 핀란드를 소개하며 할로넨 대통령의 지난 2002년 서울 ASEM 정상회담 참석시의 에피소드를 다룬 것.
  
  핀란드는 가끔 이런 '황당 뉴스'(한국 기준으로 보자면 그렇다)로 우리를 경악하게 하곤 했다.
  
  "시속 50km 제한 구간에서 75km로 오토바이를 몰고 가다가 적발된 노키아 부회장이 모든 세금 및 범칙금에 대한 소득 누진시스템에 의해 11만6000 유로(약 1억 4000만 원)의 과속 범칙금을 부과 받았다" "몇 년 만에 헬싱키 초등학생한테서 충치가 발생해 일간지에 대서특필됐다" "매년 언론에 대통령, 재벌총수로부터 전 국민의 소득세와 재산세 내역이 공개된다" "노점상에서도 신용카드를 받는다" 등등.
  
  물론 '전통적 선진국'과 우리는 원래 다르다는 주장도 일리가 없지 않다. 하지만 오랜 동안 스웨덴과 러시아의 지배를 받다가 1917년 소비에트 혁명 이후에야 나라꼴을 갖춘 유럽의 '신생국가' 핀란드는 그 흔한 식민지 하나도 없을 뿐더러 나무밖에는 별다른 자원도 없어 '전통적 선진국'과도 거리가 멀다.
  
  오히려 2차 대전 중 소련에 맞서기 위해 히틀러와 손을 잡았다가 종전 후 신탁통치를 당하고 전쟁배상금까지 물어냈을 정도로 핸디캡을 지기도 했다. 게다가 IMF 구제금융도 우리보다 6년 선배다.
  
  결국 핀란드가 믿을 것은 요즘 유행하는 말로 '인적 자원'뿐이었다. 할로넨 대통령은 지난 2002년 방한 당시 "핀란드의 경쟁력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산림과 수자원 외에는 천연자원이 거의 없어서 '사람이 가장 큰 자원'이라는 공감대가 사회 전체에 형성돼 있다"며 "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와 보건, 교육시설을 갖추게 된 것도 인적 자원을 중시하기 때문"이라고 답한 바 있다.
  
  강소국의 비결 배울 좋은 기회
  
  각종 국가경쟁력 지수의 단골 1위이자 국제투명성기구의 부패인식 지수 3년 연속 1위에 빛나는 강소국(强小國)의 대명사 핀란드의 저력은 '인적 자원'이고 양성평등, 사회투명성, 사회복지시스템이 이를 뒷받침 하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핀란드를 방문한 노 대통령과 공식수행원, 그리고 동행한 기업총수들은 국빈방문과 ASEM이 겹쳐 5일이나 이 나라에 머문다.
  
  그 기간 동안 "한미 FTA로 사회적 양극화를 해결한다"는 대통령이나 "여자를 뽑으면 출산휴가다 뭐다 귀찮다" "법대로 투명하게 하면 회사 경영 못 한다"는 볼멘소리를 늘어놓는 기업가들의 식견이 넓어지길 기대해 본다. 지나친 욕심일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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