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기간동안 저는 계속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습니다. 아니, 기침을 멎게 하기 위해서 더 사용한 것 같아요. 아이가 너무 저체중이 되어서 서울역 앞 아동병원에 가서 바로 입원했습니다. 그때만해도 그렇게 나쁜 상황이 아니었는데 입원하자마자 축 늘어지더라고요. 폐에 기흉이 생겨서 폐포가 터진다고 … 5일만에 응급차를 타고 신촌 세브란스 병원으로 갔습니다. 가자마자 인턴이 그전에 찍은 폐 엑스레이 사진을 보더니 '간질성 폐렴이 의심된다'고 하더군요. 폐가 굳어지고 섬유화되는 병이라고 했어요. 그렇게 피를 걸러주는 장치를 달고 80여 일 있다가 제가 둘째 아이를 출산하자마자 … 마치 기다린 것처럼… 출산한 다음날 세상을 떠났어요."
21개월 된 아기를 안은 현 모 씨는 목메인 채로 또박또박 말을 이어갔다. 20일 서울 정동 환경재단 레이첼카슨룸에서는 환경보건시민센터와 가습기살균제피해모임이 주최한 '가습기 살균제 영유아, 산모 피해사례' 조사보고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현모 씨외에도 원인 모를 폐질환으로 아이를 잃거나 병원에 입원시킨 피해자들이 나와 증언했다.
현 모 씨는 "둘째를 키우는 입장에서 무엇이 문제였는지 수만가지를 생각했지만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면서 "그런데 올해 초 임산모 신종 폐렴에 관한 소식이 나오는 것을 보면서 너무 화가 났다. 임산모도 중요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아플 때 나몰라라 하다가 이제서야, 게다가 살균제가 원인일 것이라고 하니 더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그는 "원인이 나오기 전에도 어쩐지 가습기가 원인일 것 같아서 버렸는데, 얼마 전에 보니 무슨 생각이었는지 부엌 찬장에 가습기 살균제를 뒀더라"며 자신이 쓰던 살균제통을 들어보였다. 그는 "제품에 보면 '인체에 안전한 성분을 사용하여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습니다', '살균 99.9%-아이에게도 안심'이라고 쓰여있다"면서 "이 말만 믿었는데… 내 손으로 넣은 살균제가 아이를 사망에 이르게까지 했다는 것이… 너무나 죄인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어떻게 이런 제품을 승인해줄 수 있는지 분통하다"고 말했다.
"영유아 5명 사망…피해 사례 조사하라"
앞서 질병관리본부는 지난달 31일 예비독성 실험결과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불명 폐손상의 원인이라는 잠정 결론을 내리고 전국민에게 살균제 사용 자제를 요청했다. 그러나 질병관리본부가 조사 대상으로 삼은 산모뿐 아니라 영유아에게서도 피해 사례가 다수 있다는 것.
환경보건시민센터와 가습기살균제피해자모임이 발표한 가습기 살균제가 의심되는 원인미상 폐렴 피해 사례는 영유아 6명과 산모 2명이다. 이중 영유아는 5명이 사망했고 산모는 1명 사망했다. 이들은 "원인 미상의 폐렴에 걸려 사망한 영유아 피해자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고 지금도 고통받는 피해자가 많은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치사율이 매우 높고, 평균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지 12.3개월 만에 증상이 나타나며 병원 입원 기간 평균 2.7개월 말에 사망하는 것이 특징"이라며 "무분별한 화학물질 남용으로 인한 바이오사이드(Biocode)의 대표적인 피해사례"라고 말했다.
최예용 소장은 "2008년 소아학회의 학술보고와 영유아 피해자들의 증언을 종합해 볼 때 당국은 영유아 피해문제를 익히 알고 있었을 것"이라며 "유아와 산모가 함께 입원해 유아가 사망한 사례에도 정부 발표에는 유아는 언급되지 않았다. 정부는 영유아 피해를 누락시켜 전체 피해규모를 고의로 축소한 것 아닌가"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가족들이 만든 카페가 모은 피해사례만 해도 대부분 사망 사례로 최소 30여 건이 넘는다. 최근 2~3년간에만 100여 건이 넘을 것으로 보이고 조사대상이 길어지면 수백 여건이 될 것"이라며 "영유아 피해규모는 얼마나 되는지, 영유아 외에 어린이, 청소년, 노인들의 피해 사례 등도 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가습기 살균제 안전 검사 철저히 했나…판매처 보이콧 운동"
이미 학계에는 2008년에 소아에게 나타나는 원인을 알 수 없는 간질성 폐렴에 관한 보고가 있었다. 2008년 발표된 '2006년 초에 유행한 소아 급성 간질성 폐렴'이라는 논문에는 "서울의 2개 대학병원에서 15명에게 간질성 폐렴이 발병해 7명이 사망했는데 원인을 알 수 없다. 전국 병원의 조사가 필요하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 나온 다른 피해자 강 모 씨는 "논문을 보면서 기가 막혔다. 그때 피해를 입은 부모와 지금의 부모가 다르지 않고 그때 문제제기한 의사들과 지금의 의사가 다르지 않다"면서 "그때 조사에 착수하고 공론화했더라면 피해자가 이렇게 많을까. 또 동네 병원에서 이게 무슨 병인지도 모르고 시간을 허비했을까"라고 말하며 분노를 표출했다.
또 '가습기 살균제는 인체에 무해하다'고 홍보한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들도 도마에 올랐다. 이들은 아직 가습기 살균제의 주요 성분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환경보건센터 등의 요구에 "질병관리본부에 자료를 넘겼다", "유럽과 국내 등에서 안전성 검사를 받았다"고만 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 소장은 "과연 제조사들이 살균제 성분의 인체노출 안전성 검사를 철저히 했을지 의문"이라며 "과연 일반적인 동물 실험 외에 살균제 성분이 호흡기관 깊숙이 노출되는 실험을 했을지, 또 영유아나 산모 등의 장기 노출 경우를 상정한 실험을 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2010년 국제학술지에는 "가습기 세정제 등에 사용되는 살균제 DDAC의 독성 실험 결과 폐에 직접 주입됐을 때 울부혈 폐부종-염증반응-폐섬유화의 생화학 반응이 확인됐다"는 논문이 발표되기도 했다. 정부는 이에 대해 "국내 유통되는 세정제에는 DDAC가 들어있지 않다"고만 확인했다.
▲ 현재 시중에서 유통되고 있는 가습기 살균제. ⓒ환경보건시민센터 제공 |
문제는 지금도 가습기 살균제는 여전히 시중에서 유통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시중에서 유통되는 가습기 살균제는 국내 제품 3종과 수입제품 4종 등 총 7종으로 조사됐다. 정부는 '사용 자제'를 권고하는 수준이다. 환경보건센터 등은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하는 곳에 보이콧 운동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하고 있는 곳이 있으면 제보해 달라"면서 "직접 판매 금지를 요청하고 인터넷에 판매처를 공개해 판매하지 못하도록 하는 '판매처 보이콧 시민캠페인'을 전개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에 대해 질병관리본부 측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기자회견에서 발표된 영유아 사례와) 기존에 문제가 됐던 원인미상 폐손상이 일치하는지 여부는 임상소견만으로는 확인이 불가능하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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