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적응을 위한 원칙에는 오적응 방지가 가장 중요한데 이번에 발생한 도심 피해는 산사태 우려 지역에 대한 방어시설 부족과 들어서지 않아야 할 지역에 마을을 건설한 사례다. 각 지자체가 파악한 기존 침수 지역은 소방방재청에서 종합 정보를 갖고 있고 산사태 지역은 산림청이 정보를 갖고 있다. 이러한 정보를 공개해 일반 시민들이 알도록 해야 하지만 부동산 하락을 걱정하는 여론과 압력 등 때문에 공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병국 국가기후변화적응센터장)
3일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는 기후변화센터와 기후변화행동연구소가 주최한 토론회 '반복되는 집중호우와 도심피해, 대책은 없는가'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취재진은 물론 일반 시민도 많이 참석해 최근의 산사태나 침수 등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우려를 반영했다.
"유례없는 집중호우, 온실가스로 인한 지구 온난화 때문"
권원태 국립기상연구소 소장은 한반도에 호우가 내리는 빈도가 늘어나는 등 동아시아의 기후가 바뀌고 있는 원인으로 '온실가스'를 꼽았다. 온실가스 증가로 인해 기온이 상승하면 수증기가 많이 발생하는데다, 바뀐 대기 순환 패턴과 불안정한 대류로 인해 동아시아 지역의 여름 강수량이 늘어나고 집중 호우로 이어지게 된다는 설명이다.
권원태 소장은 "동아시아 지역을 보면 비가 내리는 날 수는 크게 변화하지 않으나 평균강수량, 강수 강도나 강수 극한값이 모두 증가하는 추세를 보인다"며 "앞으로도 21세기 말에는 동아시아 기온이 지금보다 6도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앞으로 기후 변화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권원태 소장은 "이번 집중호우는 비구름대가 동서 방향의 좁은 띠 형태로 형성되면서 서울 내에서도 강수량의 지역적 편차가 매우 컸다"며 "이제는 과거의 관측 자료뿐 아니라 미래의 변화도 예상해야 하고 지역적 편차를 고려해 지역 규모의 방재 적응 대책이 시급하다"고 봤다.
유철상 고려대 건축사회환경공학과 교수도 "강수 특성 자체가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변화할 경우 과거 관측 기록에 기초해 만든 모든 설계조건이 쉽게 무력화될 수 있다"며 "(이번 집중호우)는 상당히 이례적인 상황으로 볼 수 있으나 앞으로도 도시 홍수는 재현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 교수는 "도시 홍수의 대응방안으로 언급되는 저류시설, 빗물 펌프장 등으로 어느정도 홍수 예방이 가능하지만 한계가 있다"면서 "침수발생 시 인명 및 재산피해 최소화를 최우선으로 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강우 예측을 보다 정확하고 세밀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프레시안(채은하) |
"천재지변? 책임 회피하려는 꼼수"
그러나 이번 사태를 '기후변화' 때문으로만 규정할 수 없다는 지적이 많았다. 염형철 서울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과 시민환경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박창근 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이번 수해를 '천재지변'으로 돌리는 서울시를 강경하게 비판했다.
염형철 서울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이번 사태는 기후변화뿐 아니라 잘못된 도시 정책에 의해 도시가 수해에 취약해졌음을 보여준다"면서 "서울시의 경우 1962년 7.8%였던 불투수층(콘크리트 또는 아스팔트 등)은 2009년엔 47.9%로 늘었고 산악과 하천을 빼면 거의 90%다. 요즘은 지하 개발도 많이 이뤄진데다 '디자인 서울' 등을 주장하며 화강암 판석으로 물샐 틈 없이 해놔서 극도로 개발된 종로, 강남 지역에 큰 홍수 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염형철 사무처장은 서초구 등이 특별 재난 지역 지정을 요청한 것에 대해서도 "피해의 원인을 천재지변으로 규정하고 공무원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꼼수"라며 "수해의 원인 조사를 무력화하고 공무원들의 도덕적 해이와 책임을 흐리게끔 하는 '공무원 포퓰리즘'으로 변질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박창근 교수도 "지난 5월 봄지가 와서 구미 해평취수장의 기능이 상실됐을 때도, 왜관철교가 붕괴되고 구미 2차 단수사태가 났던 지난 장마 때도, 이번에 침수와 우면산 산사태가 났을 때도 정부나 서울시는 '100년 빈도의 봄비, 장마, 비가 왔다'고 주장했다"면서 "2011년에는 3번에나 100년 빈도의 홍수가 발생했다는 이야기인가"라고 꼬집었다.
박 교수는 "서울시의 하수관 설계는 간선관로의 경우 비 75mm는 배수할 수 있게 되어 있다"며 "자료를 보면 관악구에는 시간당 110mm의 비가 내렸지만 사당역이 침수된 동작구는 55.5mm, 대치역이 침수된 강남구는 69.5mm의 비가 내렸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런데도 서울시는 시 전역에 관악구에 온 만큼의 비가 온 것처럼 평가해서 마치 이번 침수가 서울 시정의 문제가 아니라 기록적인 강우의 문제인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치수 정책의 민주화, 분권화기 필요한 시점이다"
이번 사태의 원인을 두고는 각각 중점이 달랐지만 기존의 광범위한 치수 대책은 더이상 효율성을 잃었다는 데에는 참석자 대부분이 의견을 같이했다. 유철상 교수도 "대규모 저류 시설이 효과적이기는 하지만 하나의 시설이나 방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으며 지역 특색에 따라 다양한 시설을 적절히 배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염형철 서울환경연합 사무처장은 "수해가 날 때마다 서울시의 치수대책은 대규모 토목공사에 치중하고있다"며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2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서울시 수방 시스템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하수관거 통수면적을 높이는 것이다", "15조 원 정도 들여 10년으로 나눠 증설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을 들었다.
염 사무처장은 "도시 전체를 파헤쳐 1만 500km의 하수관거를 다시 묻자는 발상도 비현실적이고 오 시장 취임 이후 서울시의 부채 비율이 대폭 늘어난 상황에서 사업 예산 총 15조 원을 쏟아붇겠다는 것도 말이 안된다"며 "이는 서울 시민 1인당 연 15만 원, 가구당 40만 원의 세금 폭탄을 10년간 부과하는 것"고 말했다.
그는 "서울시와 같은 시도 광역 지자체에서는 각 마을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 수 없다"며 "그런데도 이들이 치수 예산의 99%를 결정한다. 그러니 몇백억 짜리 대형 프로젝트만 발주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제 치수 대책을 구청과 동 단위로 넘기고 시민들이 정책 결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면서 "이제는 치수 정책의 민주화, 분권화기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병국 국가기후변화적응센터장은 '사전 예방'의 원칙을 강조했다. 그는 "2002년까지 연간 약 1조원의 치수 사업비를 투자하고 2003년 이후 홍수 피해복구에 2조7000억의 예산을 투입하는 실정"이라면서 "일본의 경우 방재예산 대비 복구 예산 비율이 13%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59%로 장기적 투자가 필요함에도 땜질식 투자만 반복되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또 그는 "이번 산사태는 들어서지 말아야 할 지역에 마을을 건설한 사례"라며 "소방방재청은 각 지역의 침수 됐던 곳 정보를 취합해 가지고 있고, 산림청은 산사태 지역 정보를 가지고 있는데 부동산 가격하락을 우려한 (주민들의) 압력 때문에 발표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정보를 공개하고 일반 시민들이 대응할 수 있게 해야한다"고 말했다.
서울시 도시안전본부장 "시민의 기대 수준 너무 높다"
이날 토론회에는 서울시의 재난 안정 정책을 총괄하는 이인근 서울시 도시안전본부장이 참석했다. 이인근 본부장은 토론자들이 "서울시가 '천재', '재난' 등으로 책임을 피하려 하고 있다"고 비판한 것에 대해 "사람이 잘못한 재난이 인재이고, 자연적 재난을 '천재' 아니냐. '어디서 시작된 재난이냐'를 따지고 책임 여부는 별개로 따지는 단어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고 비판했다.
이 본부장은 이번 사태 이후 서울시에 쏟아지는 비난을 두고 "어디까지 위험을 감수할 것이냐에 대한 서울 시민들의 기대 수준이 달라졌다"며 "만약 1970~1980년대에 이렇게 비가 내렸다면 어땠을까. 그 사이에 투자한 덕을 보고 있지만 기대 수준이 더욱 높아져서 옛날과 달라진 것이 없다고 느끼는 것 같다. 그러나 인식 수준에 물리적 환경이 따라가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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