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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 선생님 vs 대학 총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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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 선생님 vs 대학 총장님

김민웅의 세상읽기 <148> 정치꽁트

평소에 박정희를 하늘이 이 나라에 내린 최고의 지도자로 존경해 왔던 아무개 씨는 조간 신문에 난 기사를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국정홍보처의 국정 브리핑 관련 기사였다. 이럴 리가 없지 하면서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어보았지만, 기사의 내용이 그가 원하는 대로 갑자기 달라질 까닭이 없었다. 그는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심사를 억누르기 어려웠는지, 손에 들고 있던 신문을 획 하고 집어던졌다.

기사의 요지는 간단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고등학교 교장이고, 현직 대통령은 대학 총장"이라는 주장이었다. 아무개 씨는 자신이 존경해마지 않은 박정희 대통령의 급을 이렇게 낮추어 본 것이 도저히 용납되지가 않았다. 그의 생각대로라면 기사는 똑 요렇게 되어야 했다. "현직 대통령은 고등학교 교장이고, 박정희 대통령은 대학 총장." 그렇지 않아도 박정희 대통령은 정치은퇴 이후 대학 총장을 꿈꾸었다고 하지 않은가.

사실 고등학교라고 해봐야 어떻게 어떻게 해서 시골학교를 간신히 나온 아무개 씨는 그렇지 않아도 주변에서 대학 소리만 나오면 아닌 척 하면서도 주눅이 드는 처지였다. 학력을 내세울 만큼은 아니었지만 돈도 벌만큼 벌었고 자식농사도 그만하면 꿀릴 형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대학은 그에게 평생의 한 같은 것이었다. 대학만 나왔다면, 아마도 자신의 위치는 지금 사뭇 달랐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한때, 대통령이란 미국 박사 학위는 꼭 가지고 있어야 되는 줄로 알았다. 이승만 박사 외에 대통령은 없다고 생각했던 시절, 박사가 아니면 나라의 지도자는 꿈도 꾸지 못한다고 생각해 왔던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등장은 그에게 박사가 아니라도 대통령이 되는 경이로운 충격을 주었다. 게다가 박정희 대통령은 아무개 씨가 그렇게 부러워해마지 않는 온갖 미국 박사들을 위엄 있게 거느리면서 정치를 하지 않았는가.

아무개 씨는 혼자 핏대를 세웠다. "내 아무리 모른다 해도 국정홍보처에서 전/현직 대통령을 교장으로도 발령 내고, 총장으로도 임명하나? 국정홍보처가 언제부터 교육부 산하가 된 거야?" 물론 그의 말에는 오류가 있었다. 기사는 교직 발령 공고가 아니라, 단지 정치적 비유에 그쳤을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아무개 씨는 "대학총장도 대학 나와야 되는 거 아닌가?" 하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그때 아들이 들어왔다.

똑똑한 아들의 얼굴을 보자 마치 원군이라도 만난 듯이 아무개 씨는 다시 신문을 집어 들고,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기사의 자초지종을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대뜸 사태를 파악한 아들은 빙긋이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누가 교장이면 어떻고 총장이면 어때요? 훌륭한 교장도 있고 엉터리 총장도 있을 수 있는 겁니다. 교장은 낮고 총장은 높고, 그런 거 아니예요."

아무개 씨는 아들의 말에 그래도 아직 분이 풀리지 않은 듯 했다. 더 대단한 대답을 기대하는 듯한 아버지의 눈길에 아들이 멈칫 하다가 말을 이었다. "아버지, 학벌 없는 사회 모르세요, 학벌 없는 사회. 우리 대통령, 대학 총장 하시라고 해도 안하실거예요. 학벌, 원체 싫어 하시니까요." 아무개 씨는 그 말에 자신을 오랫동안 옥죄고 있던 사슬 하나가 풀려나가는 듯 했다. 그래 대통령에 무슨 학벌 딱지냐? 하여튼 가지가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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