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후 서울 방배동 남태령 전원마을은 온통 붉은 진흙투성이었다. 길과 집은 물론 주민들도 온 몸에 진흙을 묻힌 채 쏟아지는 비를 피하지 않고 급히 다녔다. 이날 오전 전원마을에는 우면산에서 흘러내린 토사가 덮쳐 4명이 사망하고 유아 1명이 실종됐다.
이곳 주민은 아니지만 시부모님이 이 마을에 살고 계시다는 한 30대 여성은 "우면산 산사태가 났다는데 연락이 안 돼 급하게 찾아왔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오전까지만 해도 전화가 전혀 되지 않았다"면서 "지금도 전기랑 수도는 전혀 되지 않는데 오늘 밤은 또 어떻게 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남태령 전원마을은 400여 가구의 2층 단독주택들이 모여있는 마을이다. 원래 논밭 지역이었으나 1980년대 후반부터 주민들이 우면산 기슭에 각기 단독주택을 짓고 들어오면서 '강남의 전원 주택'으로 각광받는 곳이 됐다. 주민들도 시인이나 조각가, 건축가 등 전문직 종사자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느닷없는 산사태에 '전원 주택 촌'도 무력했다. 마을 곳곳에서 밀려내려온 차가 들이받아 무너진 담장과 쓰러진 나무, 우그러진 차들을 볼 수 있었다. 마을 인근에 자리잡은 수도방위사령부에서 군인들이 나와 각 집에 쌓인 흙과 빗물을 퍼내는 작업을 벌였다.
▲ 군인들이 주택 지하에 고인 물을 퍼내고 있다. ⓒ프레시안(채은하) |
▲ 산사태 토사에 밀려 떠내려온 파손된 차와 나무. ⓒ프레시안(채은하) |
주민들은 이 사태로 4명이 사망하고 유아 1명이 실종되는 등 인명 피해가 크다는 것에 심란해 했다. 특히 산비탈에 주차된 차들이 토사에 밀려내려오면서 사태가 컸다. 한 주민은 "돌아가신 분 가운데 한 할아버지는 밀려가는 차량을 세우려다가 그대로 휩쓸리고 다른 분은 나무에 맞아돌아가신 것으로 안다"며 "동네가 완전히 아비규환"이라고 말했다.
▲ 토사에 떠밀려 내려온 자동차가 들이받아 무너진 담장. ⓒ프레시안(채은하) |
▲ 우면산 쪽에서 마을 쪽으로 내려가는 비탈길. 이 길을 따라 차와 나무 등이 쓸려 내려가면서 사고가 커졌다. ⓒ프레시안(채은하) |
산사태 피해는 이들 주택의 반지하에 사는 세입자들에게 집중됐다. 이 마을의 반지하층에는 거의 예외없이 토사가 밀어닥쳤다. 반지하층에서 90대의 노모를 모시고 사는 김모 할아버지는 "오늘 새벽 6시부터 물을 계속 퍼냈다"며 "산사태로 토사가 밀려내려오기 전에는 그래도 괜찮았는데 흙이 밀려와 하수구를 막아버리면서 결국 집 전체가 흙탕물에 잠겼다"고 말했다.
▲ 토사가 밀어닥친 한 반지하 집의 실내 모습. 냉장고와 싱크대가 창문을 깨고 쏟아진 흙더미 속에 묻혀 있다. ⓒ프레시안(채은하) |
그는 "지난해에도 침수 피해가 있어서 도배랑 장판을 새로 하고 가구도 새것으로 바꿨는데 올해 또 엉망이 됐다"며 "지금 어머니는 몸을 움직이지 못해 아직 안방 침대에 누워계신데 흙탕물이 침대 다리까지 가득찬 상황"이라고 말했다.
같은 주택에 세들어 살고 있는 그의 옆집도 상황은 마찬가지. 갓 돌이 지난 쌍둥이를 키우고 있는 그는 "집에 흙이 밀려들어와 아이랑 아내는 일단 처남 집에 보냈다"며 "다른 집은 창문이 깨지면서 흙이 밀려들어와 군인들이 흙을 헤치고 간신히 여섯살배기를 구해냈다. 그 일을 생각하면 아찔하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동네에서 26년 넘게 살았다는 한 70대 할머니는 "내 평생 이런 일은 보지도 못했고 생각도 못했다"며 "아무리 비가 많이 왔다고 해도 나무와 흙이 다 떠내려올 수 있느냐"고 말했다.
이번 토사에 차가 떠내려간 40대 남성은 "단지 폭우 때문이라고는 하는데 믿기지 않는다"면서 "요즘 우면산에서 이런저런 공사를 많이 벌였는데 그 영향이 있지 않겠느냐"고 추정했다. 60대 여성은 "이 곳에 살면서 산사태 위험에 관한 이야기는 한번도 들은 적이 없다"며 "전기와 수도가 모두 끊긴 판에 당장 오늘 저녁부터 걱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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