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은 <강철군화>속에 등장하는 용병들을 소설 속 이야기거나 지난 역사 속에 등장한, 그래서 이제는 사라진 존재로 여겼다. 그러나 <강철군화>속 용병들은 이름을 달리하고 무력의 강도를 조금 낮추었을 뿐 지금 대한민국 곳곳에서 창궐하고 있다.
21세기 대한민국 판 '사설 군대', 이들이 일으키는 참사
김진숙이 초인적인 농성을 계속하고 있는 한진중공업 현장이나 노동자들의 파업현장 그리고 재개발 현장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용역직원들이 바로 대한민국판 '용병'들이다. 이들은 사측에 고용되어 파업 중인 노동자들을 제압하거나 재개발에 반대하는 세입자들을 강제로 쫓아내는 역할을 수행하곤 한다. 문제는 용역직원들이 파업 중인 노동자들을 제압하거나 재개발에 반대하는 세입자들을 강제로 퇴거시키는 과정에 불법적인 폭력을 공공연히 자행한다는 사실이다.
그간 대한민국 재개발 현장에서 시행사측 용역직원들이 세입자들에게 가한 불법과 위법행위들은 너무나 많아서 이루 열거하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2009년 벽두에 벌어진 '용산참사'만 하더라도 시행사측이 고용한 용역직원들의 폭력과 위협을 견디지 못한 세입자들이 이들을 피할 목적으로 망루(望樓)를 지었고,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말미암아 목숨을 잃은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참사의 직접적인 원인은 경찰의 공권력 남용이었지만, 참사의 간접적인 원인은 용역들의 등쌀이었던 것이다.
재개발 현장에서 맹위를 떨치던 용역들이 새롭게 진출한 시장이 노사분규 현장이다. 노사분규가 있고 분쟁이 첨예하거나 노동자들이 파업 등의 방법을 사용하는 많은 현장에 사측이 고용한 용역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마치 사설(私設)군대처럼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잔혹하고 맹렬하게 노동자들을 제압한다.
▲ 업무 복귀를 거부하고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있는 타워 크레인 중간에서 장기 농성에 돌입한 한진중공업 조합원들을 300여 명의 용역 직원이 강제로 끌어냈다. ⓒ노동과세계(이명익) |
재개발이나 노사대립의 현장에 난무하는 사측 용역직원들의 온갖 탈법·위법·불법 폭력행사를 경찰은 구경하거나 방관한다. 이건 정말 기이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사적(私的)폭력의 행사를 엄격히 제재해야 할 경찰이 임무를 해태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재개발이나 노사분규 현장도 국가권력이 미치는 곳이니만큼 국가가 필요한 때와 장소에, 필요한 만큼의 공권력을, 정당하고 합법적인 방법과 범위 내에서 행사하는 건 당연하다. 환언하면 국가는 재개발현장에서 위법행위를 하는 세입자들을 퇴거시키거나 공장을 불법점거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해산시킬 유일한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필요한 때에는 이를 행사-물론 이 같은 공권력 행사는 가급적 자제되는 것이 옳고, 궁극적으로는 입법을 통해 공권력 행사의 필요성이 줄어들어야 할 것이다-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용역들이 세입자들을 추방시키거나 노동자들을 진압하는 걸 공권력은 구경하고 있다가 마지막에 용역들을 돕거나 용역들을 대신해 추방과 진압을 마무리 짓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일찍이 막스 베버(Max Weber)는 국가를 "특정의 영토 내에서 폭력의 합법적 독점체"이자 "오늘날 강제력을 사용할 권리의 유일한 원천"으로 정의했다. 베버의 정의를 따르자면 대한민국 내에서는 국가 혹은 국가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국가기관만이 정당하고 합법적인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
따라서 재개발 현장에서 시행사에 고용된 용역들이 휘두르는 사사로운 폭력이나 노사분규 현장에서 사측에 고용된 용역들의 위법적인 폭력행위는 절대로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 이를 계속 방관해 무법천지를 허용한다는 것은 국가가 폭력의 합법적인 독점체로서의 지위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같다. 지금이라도 노사분규 현장이나 재개발 현장에서 자행되고 있는 용역들의 위법적인 폭력행사는 철저히 근절되어야 한다. 오직 국가만이 가지고 있는 폭력의 합법적인 행사권한을 용역들에게 위임할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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