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25일 국회 한미FTA특위 위원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만찬회동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노 대통령은 평소 소신대로 한미 FTA 추진 배경을 설명하고 "한국 사람들의 손은 신의 손"이라며 성공 가능성을 자신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과 특위 위원인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 사이에 한바탕 설전이 벌어졌다.
당초 이날 만찬회동은 한 시간 반 정도 진행하는 것으로 예정됐지만 약 세 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작심'하고 참석한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이 '할 말'을 다 한 것이다.
심 의원은 애초부터 "밥이나 얻어먹고 설교 듣는 자리면 갈 필요도 없다. 같은 시간에 열리는 성공회대 신영복 교수 퇴임 콘서트에 이미 초청받았다"면서 "하여튼 가서 할 말은 다 하겠다"고 '전의'를 밝혔다.
심상정 "대통령이 무슨 종교적 낙관을 갖고 계신 것 같다"
심상정 의원은 만찬 종료 직후 <프레시안>과 나눈 통화에서 "나는 가만히 있는데 대통령이 갑자기 노동 문제를 꺼내더라"며 "한미 FTA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이삼십 분 간 노동 문제로 이야기를 나눴고 언성도 좀 높아졌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태호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께서 비정규직 문제를 먼저 꺼낸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오늘 주제와 상관이 없는 이야기였고 한참 이야기가 오갔지만 설전이 벌어진 정도는 아니다"고 말했다.
한 참석자는 "토론 끝에 노 대통령이 '내가 비정규직 문제를 꺼냈지만 본전도 못 찾았다. 심 의원이 토론을 잘하긴 잘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비정규직 문제를 놓고 이야기가 오갈 때까지만 해도 대체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유지됐다고 이 참석자는 전했다.
"분위기 싸늘해져"
하지만 FTA 에 대한 본격적 논의가 진행되면서 분위기가 달라진 것으로 알려졌다. 심 의원은 "여당과 정부 참석자들의 발언을 듣다가 '마치 대국민 홍보와 설득을 논의하는 범여권 대책회의를 하는 것 같다'고 문제제기를 했다"며 "이런 자리에 자주 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좀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심 의원은 "대통령이 '한국 사람의 손은 신의 손이라면서 이제 곡식도 쑥쑥 잘 자란다'고 이야기하면서 한미 FTA도 잘 될 것이라길래 '대통령이 종교적 낙관을 가지고 계신 것 같다'고 말했더니 '인신공격은 삼가 달라'며 얼굴을 붉히더라"고 말했다.
결국 마지막에는 대통령의 심기가 극도로 불편해졌고 일부 여당 의원들은 사색이 될 정도로 긴장이 고조됐다고 일부 참석자들은 말했다. 한 참석자는 "만찬 종료 시에는 대통령이 상당히 화가 나서 인사도 제대로 안 하고 헤어질 뻔했다가 겨우 악수를 나눴다"고 전했다.
대통령 "FTA 하는 나라는 잘 살고, 안 하는 나라는 그렇지 않다"
노 대통령은 만찬 시작에 앞서 "상당히 (한미 FTA 협상의) 쟁점들이 정리돼 가는 것 같다"며 "궁금하게 생각하는 문제에 대해 저나 (한덕수) 한미FTA체결지원위원회 위원장이나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성의를 다해 여러 가지 말씀을 드리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미FTA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열린우리당 홍재형 의원은 "(한미) FTA는 10년, 20년 후를 내다보는 꿈이고 도전으로, 대통령께서 결정하셨다"며 "국민들 중 회의적인 분도 있고, 반대하시는 분도 있고, 지지하시는 분도 있지만 국회에서 거르고 한미 간에 윈-윈할 수 있는 협정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 위원장의 이같은 발언은 "한미 FTA는 고도의 통치행위"라는 최근 한덕수 대통령 FTA특보의 발언과 일맥상통 하는 것으로 '과연 국회 한미FTA특위가 행정부의 독주를 견제하고 검증할 수 있겠느냐'는 일각의 의구심을 재확인시키는 대목이다.
또한 노 대통령은 "일각에서 한미 FTA 추진에 다른 정치적 의도가 숨어 있다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는 한 의원의 지적에 대해 "생각이 다를 수는 있어도 FTA를 갖고 정치적 의도 운운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선의를 갖고 진실로 이 문제를 다뤄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대개 (FTA를) 하는 나라들이 잘 살고, 하지 않는 나라들이 그렇지 못하다"며 "경제성장률에 있어서도 (FTA를) 하는 나라와 하지 않는 나라 사이에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 사람의 손은 신의 손…FTA도 성공할 것"
노 대통령은 "지금까지 우리가 많은 개방을 했지만 모든 것을 한국 사람들은 다 이겨냈다"며 "실패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한국 사람의 손은 신의 손이라고 생각한다"고까지 말했다. 이에 대해 정태호 대변인은 "그 정도로 우리가 많은 개방의 기회들을 잘 이겨내 왔다는 신뢰의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노 대통령은 "협상과정에서 정부가 방심하지 않고 빠트리지 않도록 국회에서 잘 챙겨 달라"며 "아무 전제조건 없이 토론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공청회가 무산되기도 했다"고 반FTA 진영에 일부 책임을 돌렸다. 노 대통령은 "좀 진지하게 대화를 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노 대통령은 "일각에서 미국의 압력 때문에 FTA를 추진하는 것이 아니냐는 문제제기가 있는데, 미국의 압력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우리도 우리의 생각이 있고 미국도 미국의 생각과 주장이 있을 수 있는데, 미국이 말한다고 해서 모두 압력이라고 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날 만찬회동에는 홍재형 위원장을 비롯한 여야 한미FTA특위 위원 12명이 참석했다. 한나라당 특위위원 8명은 "청와대는 '바다이야기' 논란의 와중에 나경원 대변인을 고발했다"는 이유로 전원 불참했다.
정부 측에서는 이병완 비서실장, 한덕수 대통령 한미FTA 특보,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 윤대희 경제정책수석, 정문수 경제보좌관 등이 자리를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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