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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전 '6월항쟁'과 10년전 'IMF사태' 재현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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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전 '6월항쟁'과 10년전 'IMF사태' 재현하려나?

[한미FTA 뜯어보기 83] 통상절차법, 3권분립의 구현을 위하여

1. 통상절차법이 3권분립에 위배된다고?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10일 연합뉴스와의 특별회견을 통해, 작전통제권과 한미FTA를 둘러싼 최근의 논란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그 중에서도 특히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이 발의하여 사회적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는 '통상절차법'에 대한 입장을 분명하게 밝혔다.

발언 요지인 즉, 통상절차법은 국회가 조약체결권을 가져가는 것이며 3권분립의 원칙에 맞지 않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권영길 의원이 발의한 통상절차법은 무엇이길래 대통령의 특별한 회담에서 '특별한' 주제의 하나로 채택되었던 것일까? 그리고 한국사회를 충격에 빠뜨릴 것이 거의 분명한 한미FTA에 대한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일까?

2. 한·중 마늘협상을 통해 되돌아보는 '행정부의 통상독재'

권 의원이 발의한 통상절차법은 한마디로 <'통상'에 관한 기본절차>를 규정하고 있는 법이다. 세계화의 진전으로 개방화의 강도는 더욱 높아지고 있고, 개방이 실제로 진행될 경우 국민경제에 주는 충격과 사회적 갈등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지난 IMF 사태를 통해 '규제되지 않은' 약간의 금융개방만으로도 한국경제가 얼마나 큰 충격에 빠질 수 있는지, 그리고 국민들을 얼마나 큰 고통 속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지를 그야말로 뼈저리게 체감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개방과 통상의 충격이 그만큼 강력하고 깊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는 아직까지 통상에 관한 '기본법'조차 없다는 사실이다. 권 의원의 통상절차법은 바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대안적 입법이다.

그동안 한국의 통상정책은 <행정부의 통상독재>라고 불릴 만했다. 국회(국민들)에 충분한 정보는 제공되지 않았으며, 조인을 마치고 와서 '대외신인도' 등을 거론하며 국회 비준을 사실상 협박하곤 했다. 심지어 해당 국회 상임위원회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을 뿐더러, 국회를 상대로 '거짓말'을 일삼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지난 2000년과 2002년에 벌어진 '중국과의 마늘협상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행정부의 통상독재가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대중적으로 알려진 일이기 때문에, 잠시 그때의 일을 환기해보자.

원래 한국은 수입되는 중국 마늘에 대해 '관세'를 매기고 있었다. 이는 '긴급과세조치'(세이프가드)의 일환으로 정상적인 것이었다. 이에 대해 중국은 2000년에 한국의 핸드폰 수입 중단을 선언하는 '오버액션'을 취했다. 중국이 이와 같은 조치를 취하자 외교통상부가 중국 정부에게 중국마늘에 관세를 매기지 않겠다는 '이면합의'를 해버린 것이었다.

외교통상부의 이면합의 사실이 2002년에 와서 밝혀지면서 국민적 비난여론이 들끓었다. 그러자 외교통상부는 더욱 심각한 '짓'을 하게 된다. 재협상을 요구하는 국회의원들의 주장에 대해 중국과의 협상은 '국제적 강제력'을 가지는 것이기 때문에 되돌릴 수 없는 결정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정리하면, 외교통상부의 행태는 3가지 측면에서 참으로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첫째, 국민들 몰래 이면합의를 했다는 사실 △둘째, 관세 여부에 대한 권한은 외교통상부 권한이 아니라 원래 산자부 산하 '무역위원회'의 권한이라는 점에서 '월권'이었다는 점 △셋째, 통상교섭본부장이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에 증인으로 참석해 국회의원을 상대로 '명백한 거짓말'을 했다는 점이다.

이 가운데 특히 마지막 대목과 관련해서 보자면, 중국과의 마늘협상은 '국제적 강제력'을 갖는 것이 아니었다. 이는 2004년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의 집요한 추궁에 의해 '거짓말'이었음이 탄로났다.

한마디로, 외교통상부는 국민적 비난여론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국민을 속이고, 심지어 국회를 '능멸'하는 것조차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이를 두고 '행정부의 통상독재'라는 표현보다 더 적합한 문구가 존재할까.

3. '통상절차법안'의 '역사적' 의미와 주요 내용

흔히 통상협정은 절반은 대외협상, 절반은 대내협상이라고 표현되곤 한다. 왜냐하면 통상협정이 체결될 경우 타국에 비해 국내의 '비교우위' 산업은 경제적 이득을, '비교열위' 산업은 그로 인해 피해를 입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통상협정은 다음의 세 가지 조건을 반드시 충족시켜야 한다.

△첫째, 사회 전체적으로 실보다 득이 크다는 '효율성의 조건' △둘째, 통상/개방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람들에게 충분한 보상과 대책이 이뤄져야 하는 '공정성의 조건' △셋째, 위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이해 당사자 및 전문가들의 참여를 보장하는 '민주적 참여의 조건'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간 한국의 통상정책은 '일부 재벌'의 이익을 위해 공공산업, 중소기업과 농민의 희생을 강요하는 방향으로 진행됐다. 결과적으로 통상을 통해 국내적인 '부의 수탈'이 이뤄진 셈이다. 통상절차법은 이러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대안적 입법이다. 통상절차법은 주요하게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 첫째, 국무총리 산하에 '통상위원회'를 설치해 기본계획 수립, 국내경제에 발생하는 통상영향평가의 실시, 피해분야에 대한 대책을 수립할 것.

- 둘째, 피해당사자 및 국민적 의견수렴과 자문을 위해 대표자 자문위원회, 소관별 자문위원회, 전문가 자문위원회 등을 설치할 것.

- 셋째, 특정 조약을 추진하고자 할 때 타당성, 목표, 통상영향평가, 국내대책, 이해당사자의 의견수렴 등을 포함하는 '조약추진계획'을 수립하여 국회에 동의를 구할 것.

- 넷째, 협상절차 과정에서 국회 및 관련 자문위원회에 정보를 보고 및 공개할 것. (정당한 사유로 통상위원회 3분의 2 찬성으로 의결 시에는 비공개 가능)

- 다섯째, 가서명된 조약안에 대해 국회의 동의권 및 재협상 요청 권한.

- 여섯째, (국회법 일부 개정을 통해) '국회 통상특별위원회'라는 상설특별위원회를 신설할 것.

통상협정의 체결은 국내적으로 봤을 때 반드시 이익을 보는 분야와 피해를 보는 분야가 발생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통상협정은 실제로 이익이 발생하는지(효율성 조건), 피해보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지(공정성 조건), 그리고 더욱 중요하게는 '당사자들의 의견'이 반영되는 방식으로 진행(민주적 참여의 조건)되어야 한다.

4. '탁월한' 미국 협상력의 비결은?

노무현 대통령은 한미FTA를 추진하는 이유로 '미국식 법과 제도'의 우월성을 주장하곤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권 의원이 발의한 통상절차법 자체가 미국의 '무역법'을 기본 모델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헌법을 통해 통상협정의 기본권한이 의회에 있다. 이에 따라 통상협상은 의회가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에게 일시적으로 '위임'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미국은 1934년 <상호무역협정법>의 제정 이후 몇 차례 법 개정을 통해 의회의 권한을 강화해 왔다. 가장 최근에는 2002년 <무역법>의 제정을 통해 통상협정으로 인해 발생하는 국내실업 대책, 피해분야 기업대책, 농민대책 등이 명시되어 있을 정도다.

미국의 무역대표부(USTR)라는 기구가 바로 대통령이 의회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행사할 때 실무를 총괄하는 기구다. 권 의원이 발의한 통상절차법에서는 이와 유사하게 국무총리 산하의 '통상위원회'를 두도록 하고 있다.

미국은 무역법의 규정에 의해 의회가 협정의 진행과정에 참여하고, 행정부는 의회에 대해 보고 및 협의 의무를 갖고 있다. 이 때 발행되는 각종 보고서들이 연차보고서, 현황보고서, 총체적 영향평가보고서 등이다. 또한 통상정책/협상과 관련하여 이해당사자 및 국민들로부터 자문, 의견 수렴에 대한 대통령의 의무가 명시되어 있으며, 민간차원의 700여 자문위원 그룹과 26여 개의 자문회의를 운영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미국의 협상단은 '국내 정치적 견제'의 틀 내에서 협상을 진행하게 되며, 이해당사자들을 포괄하여 '총체적인 이익'이 발생할 수 있도록 하는 협상전략이 발전하게 된다. 또한 통상영향평가 등의 실시를 위해 경제적 이익/손해에 대한 분석이 발달하게 된다. 또한 한국처럼 실질적으로 협상단 '몇 명' 수준에서 협상전략이 구사되는 것이 아니라, 각종 협회 전문가들을 포함한 700여 자문위원 그룹과 26여 개의 자문회의를 통해 상대국가의 협상전략, 협정문 등에 대한 '종합적' 분석을 하게 된다.

이렇게 보면, 국제통상분야에서 나타나는 미국의 '강력한' 협상능력은 단지 미국의 군사력과 외교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국내정치적 견제'가 가능하게 만드는 견고한 제도적 틀과 이해당사자의 의견이 반영되는 참여구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며칠 전 한미FTA반대 범국본은 미국 정부가 미국 업체에 공개한 협상원문을 공개했다. 공개된 문서에 따르면, 미국 업계는 미국 측이 만든 협정문 초안을 검토한 뒤 특정 조항의 '문구 수정'까지 제안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이는 앞에서 미국 무역법에 대한 서술에서 밝혔던 것처럼 너무도 '당연한' 것이며 또한 '합리적인' 행위다. 미국이 각계각층의 자문위원회와 이를 통해 업계와 이해당사자의 의견을 반영하는 과정은 동시에 '협상력'을 극대화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해당사자의 '참여'를 거추장스럽고 방해되는 그 무엇 따위로 인식하는 '참여정부'의 수준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대목이다.

5. '3권분립'과 '헌법정신'의 진정한 구현을 위하여

노무현 대통령은 특별회견을 통해, 권 의원의 '통상절차법안'이 3권분립을 위배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대통령에게 있는 협정체결권을 국회가 가져가겠다는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먼저, 노 대통령의 발언은 행정부의 수장이 입법부의 권한을 침해하는 발언을 했다는 점에서 '과도한' 개입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헌법에 대해서도 상당히 '편협한' 해석을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왜 그런지 살펴보자. 대한민국 헌법은 조약의 체결·비준에 관하여 '대통령'과 '국회'의 권한을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다.

"대통령은 조약을 체결·비준하고, 외교사절을 신임·접수 또는 파견하며, 선전포고와 강화를 한다." (헌법 제73조)

"국회는 상호원조 또는 안전보장에 관한 조약, 중요한 국제조직에 관한 조약, 우호통상조약, 주권의 제약에 관한 조약, 강화조약,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 또는 입법 사항에 관한 조약의 체결·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 "(헌법 제60조 1항)


헌법에 의하면, 대통령은 조약에 대한 '체결권'과 '비준권'을, 국회는 '체결동의권'과 '비준동의권'을 갖고 있다. 즉, 우리가 '국어'를 제대로 독해한다면, 통상협상에 대해 국회는 대통령의 권한에 '걸맞게' 조약 체결의 전(全) 과정에 대해 동의 권한을 갖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가 '진짜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는 헌법에 규정된 국회의 체결·비준 동의권을 뒷받침하는 법률과 제도적 장치가 사실상 전무하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 결과를 잘 알고 있다. 국회는 '거수기'로 전락한 가운데 한·중 마늘협상에서 보듯 국민과 국회를 상대로 이면합의, 월권, 거짓말까지 일삼는 '행정부의 통상독재'가 관철되고 있는 것이다. 국회와 행정부의 총체적인 직무유기가 초래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중요한 것은, 하루빨리 '통상에 대한 기본법' 그 자체가 '절박하게' 필요로 한다는 인식을 국민 모두가 공유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3권분립과 헌법60조가 규정한 헌법정신의 진짜 핵심이다.

6. '통상절차법'이 꼭 제정되어야 하는 이유

많은 사람들은 한미FTA가 한국사회에 가져다 줄 충격의 폭과 깊이에 대해 'IMF 사태'의 그것을 훨씬 능가할 것으로 예견하고 있다. 그것이 전(前) 청와대 경제비서관 정태인 씨가 그토록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서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 한미FTA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미국이 감성적으로 싫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도, 개방 그 자체를 반대하는 것도, 수출의 중요성을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 그 모든 것을 인정한다고 해도 한미FTA가 가져다줄 폐해가 너무도 크고 깊기에, '충분한' 심사숙고와 제도적 안전장치, 그리고 국민적 참여 및 합의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안의 중요성으로 미루어 어쩌면 1905년 을사늑약에 버금가는 국가적 존망이 걸린 '엄청난 일'이 지금, 고집불통으로 단단하게 무장한 노무현 대통령과 행정부의 '통상독재적 방식'에 의해 졸속으로, 그것도 반(反)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국민과 국회를 능멸하는 방법을 통해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한미FTA의 체결 시한을 2007년 상반기로 상정하고 있는 듯하다. 2007년은 독재정권에 맞선 6월항쟁 20주년이자, '준비 없는' 금융개방으로 인해 IMF사태를 맞은 지 10주년이 되는 해다.

노무현 정부가 한미FTA를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강행한다면, 어쩌면 내년 2007년은 20년 전 6월항쟁과 10년 전 IMF사태가 '한꺼번에' 재현되는 해로 역사에 기록될지도 모를 일이다.

'통상절차법'의 제정은 그러한 역사적 희생을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 현재 우리가 채택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고, 가장 민주적이고, 가장 강력한 대안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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