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말 공개된 일본의 새 중학교 사회과 교과서를 분석한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으로 한 차례 논란을 빚은 이들 교과서들은 독도 외의 역사 서술에 있어서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모두 '개악(改惡)'됐다는 분석이다.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역사문제연구소·동아시아역사연구소·전국역사교사모임 등 역사학계는 20일 오후 서울 장충동 만해NGO교육센터에서 심포지엄을 열고, 지난 3월 말 일본 문부과학성의 검정을 통과한 중학교 역사·공민 교과서를 조목조목 분석했다. 이 교과서들은 오는 8월 채택 과정을 거쳐 내년 4월부터 일선 학교에서 사용된다.
▲ 지난 3월 일본 문부과학성의 검정을 통과한 중학교 역사 교과서. ⓒ연합뉴스 |
'왜곡'은 한국 고대에 관한 서술에서도 드러났다. 대표적인 식민사관으로 꼽히는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일본이 4~6세기 한반도 남부를 통치하며 백제 등으로부터 조공을 받았다는 주장)'이 이쿠호샤(育鵬社)와 지유샤(自由社) 등 일부 교과서에 기술됐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김은숙 한국교원대 교수는 "최근의 연구에서 이를 인정하는 연구자는 없으며, 한일역사공동연구회에서도 공식 폐기를 선언했지만 교육출판과 제국서원 교과서를 제외한 나머지 교과서의 검정신청본에서 임나일본부설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라고 지적했다.
일본의 강제 병합에서 있어서도 '한국의 안정이 필요했다'며 불가피론을 제기하는 등 곳곳에서 왜곡이 발견됐다. 대표적인 우익 교과서인 이쿠호샤 출판사는 한일의정서 체결을 두고 "한국의 영토를 타국(러시아)으로부터 지키기 위해"라고 기술했고, 강제 병합 과정이 국제사회로부터 인정받았다고 서술하는 등 침략의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신주백 연세대 교수는 "이번 검정 결과에도 일본 식민지 지배의 수탈성과 강제성에 관한 서술의 후퇴, 항일운동에 관한 언급 회피라는 서술 경향은 바뀌지 않았다"면서 "오히려 침략과 지배 자체를 미화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고 분석했다.
신 교수는 "이들 교과서는 '근대화'라는 이름으로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고 있으며, 일본의 지배 정책은 자세히 나열하는데 반해 한국인의 저항에 대해선 추상적이고 간단하게 언급해 역사 이미지 자체를 왜곡시켰다"고 설명했다.
이런 '왜곡'과 '회피'는 일제강점기의 서술 방식을 보면 그대로 드러난다. 예컨대 관동대지진에 대해서는 조선인과 중국인, 사회주의자 학살에 관한 언급을 아예 하지 않았거나 서술을 하더라도 관헌의 개입 부분은 생략했다. 마찬가지로 일본군 '위안부' 등 일본의 전쟁 범죄는 모든 교과서에서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이신철 성균관대 교수는 "일본군 '위안부'는 과거 거의 모든 교과서에 기술됐었지만, 일본 우익의 집요한 공격으로 이를 다루는 것 자체가 민감한 사안이 되면서 출판사들이 기술 자체를 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비교적 객관적인 역사 서술을 해 우익들로부터 '극좌 교과서'로 공격받았던 일본서적신사가 도산하면서 필자들과 출판사들의 자기 검열이 강화됐다"며 "이런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역사 서술의 심각한 후퇴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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