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7월 1일부터 반려동물 진료비에 10%의 부가가치세가 부과된다. 정부가 지난해 12월 국무회의에서 통과시킨 부가가치세법 시행령 일부개정안에 따라 개나 고양이와 같은 반려동물에 대한 모든 진료에는 부가세가 포함된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주인들은 기존의 진료비에서 10%의 비용을 더 부담해야 하는 것.
세 살된 말티즈를 키우고 있는 A씨는 "동물 진료는 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그렇지 않아도 한번 진료 받는데 부담이 적지 않은데 앞으로 부가세까지 포함된다니 걱정된다"며 "굳이 부가세를 매기는 이유를 모르겠다. 강아지를 키우는 게 사치라는 이야기인가"라고 꼬집었다.
당장 오는 7월부터 시행되지만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이들도 많다. 스피츠를 키우는 B씨는 "예전부터 동물병원에서 반대 포스터가 붙어있는 건 봤는데 시행되는지는 몰랐다"며 "얼마 전에 강아지가 새끼를 낳아 앞으로 병원갈 일도 많은데 걱정된다. 사료값도 오르는데 진료비는 물가에 포함되지 않는 모양"이라고 비판했다.
"기본적인 진료까지 모두 과세대상?"
▲ 반려동물 진료비 부가가치세 철회 연대가 만든 포스터. ⓒ반려동물 진료비 부가가치세 철회 연대 |
강종일 한국동물병원협회장은 "기생충 약 처방이나 광견병 접종 등까지 포함, 반려동물 진료 전체를 포괄해 부가가치세를 부과한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12월 국무회의에서 코성형, 쌍커풀 수술 등 일부 5개 항목만 부가가치세 부과 대상으로 포함된 성형외과 진료와 달리 동물 진료는 항목을 가리지 않고 전체가 포함됐다는 것.
강종일 협회장은 "성형외과에 대해서는 일부 항목을 한정해 부가세를 부과한반면 반려동물 진료는 기본 진료까지 모두 포함된다"며 "적어도 동물 진료도 과세 대상을 정해서 부가세를 부과해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비판했다.
또 여타 동물 관련 법과의 충돌 문제도 있다. 이 시행령은 '축산물위생관리법' 상의 가축에 대한 진료는 부과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단서를 달고 있고 이 법이 규정하는 가축에는 개, 고양이는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나 축산법에서는 개를, 가축전염병 예방법에서는 개와 고양이를 가축으로 분류하고 있고 광견병 예방접종의 경우 과태료까지 부과해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강 협회장은 "아직 '가축'에 대한 규정도 완비된 상황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개·고양이 소유주 36%가 저소득층…부자감세하더니"
이번 조치를 두고 온라인에는 "부자 감세 하더니 동물에게서까지 세수확보하려 한다"는 식의 비판이 많다. 한 누리꾼은 자신의 블로그에 "종부세 없애고 부자감세 하면서 세수가 줄어드니 반려동물 진료비에 부가세를 매긴다"면서 "4대강에 삽질하느라 돈 많이 들어가겠지"라고 비판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에 대해 기획재정부는 세수 확보 차원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기획재정부 부가가치세제과 관계자는 "세수 확보가 아니라 과세 정상화 차원"이라며 "원래 사람에 대한 질병치료 목적을 빼놓고는 다 부가가치세를 부과해야 하는 것이고 이에 따라 정상화를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부가가치세로 확보되는 세수가 얼마냐'는 질문에는 "파악해 보지 않았다"라고 답했다.
대한수의사회 등은 이번 부가가치세 부과로 정부가 거둬들일 수 있는 세수는 70억 가량이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들은 "개와 고양이의 진료비는 연간 약 1000억 원으로 여기서 발생될 부가세 수입은 연간 약 70억 원에 불과할 것"이라며 "납세자들의 반발에 비해 국가의 세입은 미미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뉴시스 |
"버려진 동물 수 늘이는 결과만…생명권은?"
또 이러한 세금을 내야할 개, 고양이 소유주들의 상당수가 저소득층이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대한수의사회가 지난 2006년 한국갤럽에 의뢰해 조사한 자료에는 우리나라 개 고양이 소유자의 36%가 월소득 200만 원 이하의 저소득층인 것으로 나타났다.
강 협회장은 "1970년 대에는 반려동물을 기르는 것이 일종의 사치나 부의 과시였을지 모르나 지금은 문화 자체가 달라졌다"며 "핵가족화가 진행되고 독거노인이나 1인 가정 등이 늘어나면서 외롭고 허전한 마음을 달래려고 기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시각장애인 인도견이나 청도견(청각장애인을 돕는 개) 등에 대한 진료에도 부가세가 붙게 되는 데 이 역시 문제"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이번 조치는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버려진 동물의 수를 증가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2007년 1만5373 마리였던 서울시 유기동물 수가 2008년 금융위기 후 늘어나 지난해에는 1만8624마리로 증가한 것처럼 상당수 개와 고양이가 높은 진료비 부담 때문에 버려지는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에서 부가세 부과가 이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
강 협회장은 "2008년도에 약 8만 마리 이상의 반려동물이 길거리에 버려졌고 이들을 정부에서 포획해 치료 및 안락사하는데에도 약 82억 원이 소요됐다"고 말했다. 그는 "부가가치세를 부과하면 이러한 처리 비용 자체가 느는데다 버려지는 동물 수 자체가 늘어날 것"이라고 봤다.
"반려동물 보호 장치도 없으면서 세금만 내라?"
동물보호단체에서는 보다 본질적인 문제를 지적한다. 기획재정부에서는 "대부분의 주요 국가에서도 애완동물 진료 용역에 대해 이미 부가가치세를 과세하고 있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으나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는 "현재 우리나라는 반려동물의 보호를 위한 법률적, 제도적 장치들이 초보적인 수준"이라고 반박했다.
이들은 "치료비보다 새로 동물을 사는 게 몇 배나 싸게 드는 현실"이라며 "동물들은 쉽게 구매되고 치료비 때문에 방치되거나 아픈 채로 버려지기까지 하지만 이런 비인도적 장치를 막기 위한 장치는 없다"고 지적하면서 "서구의 예를 들려면 이들 나라의 반려동물 문화, 동물에게 최소한의 생명권을 보호하는 제도를 먼저 살펴라"고 반박했다.
수의사들도 비슷한 문제를 지적했다. 한국동물병원협회는 "동물 진료에 부가세를 부과하는 EU국가들은 오래 전부터 동물보호법이 완전히 정착됐고 항생제 등 동물 치료약품은 수의사 처방에 의해서만 사용되고 있다"면서 "그러나 우리나라는 동물용 약품을 쉽게 구입할 수 있고 수의사 진료 없이 '자가진료'가 가능하도록 해 약물 오남용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강종일 협회장은 "부가가치세에 근본적으로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동물을 기르는 사람들에게 세금을 걷으려면 동물을 안전하게 안심하고 키울 수 있는 사회적 여건, 법과 제도를 만들고 난 뒤에 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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