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시 "보상금 차등지급…언론사 접근 금지하라" 공문
28일 이천 축산농민들에 따르면, 이천시는 최근 양돈협회를 통해 각 농가에 매몰지 관리에 관한 공문을 내려 보냈다. 이 공문에는 축사 및 매몰지 관리를 철저히 하라는 지시와 함께 "사후관리를 소홀히 하는 농가는 살처분 보상금을 제한하고 가축 입식 자금 등 지원 사업을 차등 지원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 시는 "매몰지에서 침출수가 발생하면 해당 농가가 흡입 장비를 이용해 침출수를 뽑아내야 한다"며 "(농가의) 관리 소홀로 확인 시 가축의 입식을 제한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밖에도 시는 "사전 허가를 받지 않은 언론사(방송국, 기자)의 접근 및 촬영을 금지하라"고 지시하는 등 언론 노출에 대한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시는 지난 25일에도 축산농민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하면서 "교육에 참여하지 않으면 재입식에서 불이익을 주겠다"고 밝혀 농민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 이천시가 양돈협회를 통해 축산 농민들에게 보낸 공문. ⓒ프레시안 |
"가축 묻고 생계 막막한데…시, 돈 가지고 농민 협박하나"
가뜩이나 구제역 사태로 생계가 막막해진 농민들은 "시가 축산농을 죄인 취급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대월면 농민 김모(73) 씨는 "멀쩡한 돼지를 전멸시켜놓고, 왜 이제와 그 책임을 농민한테 떠넘는지 모르겠다"며 "가뜩이나 힘든 농민들을 돈으로 협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씨는 "농가가 알아서 침출수도 뽑고 관리하라는데, 기계도 없는데 침출수를 어떻게 빼라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시에서 책임지기 싫으니까 농민들에게 떠넘기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천 일대는 매몰지에서 돼지 사체가 돌출되고 침출수의 지하수 오염이 제기되는 등 '매몰지 부실 조성'으로 논란이 된 지역이다.
▲ 구제역 사태로 가축이 모두 매몰돼 텅 비어버린 축사. ⓒ김흥구 |
이번 구제역 사태로 인한 '위탁농'들의 위기감은 더 크다. 위탁으로 돼지 2000여 마리를 키워온 김 씨는 지난 1월 키우던 돼지를 모두 땅에 묻었다. 그러나 위탁농이기에 살처분 싯가 보상도, 이자 감면 등 각종 혜택도 받지 못했다.
위탁농가에 대한 정부의 거의 '유일한' 지원이던 생계안정자금도 턱없이 부족했다. 김 씨는 "애초 1400만 원 정도 나온다고 했는데, 그조차도 이래저래 다 제하고 163만 원만 들어왔더라"라며 "상황이 이런데 그조차도 깎겠다고 협박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라고 울분을 토했다.
키우던 돼지를 모두 땅에 묻었으니 수입은 몇 개월째 '0'인 상태인데, 당장 전기요금도 내지 못해 한전으로부터 단전 통지서까지 날아왔다. 김 씨는 "대부분의 농가가 축사나 사료를 대부분 대출로 마련하는데, 당장 대출 이자도 갚지 못해 축사가 경매로 넘어가게 생겼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10년 넘게 위탁농 생활을 해온 김 씨 부부는 축사 옆 비닐하우스에서 생활하고 있다. 부인 문모(72) 씨는 "축사 짓는 것도, 사료값도 모두 빚이라 남의 돼지라도 키웠던 건데, 이렇게 막막해질지 몰랐다"며 "매몰하면 이튿날 바로 생계비를 준다고 했는데…이럴 줄 알았으면 멀쩡한 돼지 묻지 않을걸 그랬어…"라고 말을 흐렸다.
'벼랑 끝' 몰린 위탁농…"보상 넉넉하다고? 그건 부농들 얘기"
바로 옆 마을에서 역시 위탁으로 돼지 1700여 마리를 키워온 농민 이모(56) 씨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보상이 충분하다고 하지만, 위탁농에겐 일절 혜택이 없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구제역으로 가축을 살처분 한 농가들에게 싯가 보상과 함께 생계안정자금, 대출금 상환 연기 및 이자 감면 등의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남의 돼지를 대신 사육해주는 위탁 농가에겐 이런 지원이 충분치 않은 실정이다. 이 씨는 "우리 농장도 대형 양돈기업의 돼지를 위탁해 키웠는데, 결국 그런 부농들에게만 혜택이 가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 지난 2월 이천시 모가면 원두리의 한 구제역 매몰지. 누런 침출수가 흘러나와 굳어 있다. ⓒ김흥구 |
그는 축산농가에게 매몰지 사후관리의 책임을 전가하는 시 당국에도 불만을 드러냈다. 이 씨는 "재입식 교육을 하러 갔더니, 시 공무원이 일이 많다며 전화 문의도 하지 말고 알아서 (매몰지 관리를) 해결하라고 하더라"라며 "모두가 힘든 건 이해하겠지만, 당장 우리는 먹고 살 걱정부터 해야하는 마당에 보상을 들먹이며 협박해선 되겠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천환경운동연합 김미야 사무국장은 "매몰지를 부실하게 조성해 탈이 많았던 이천시가 그 책임을 농민에게 떠넘기고 있는 셈"이라며 "보상금도 국비로 지원하는 것이 때문에 시가 함부로 차등 지급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이천시 축산임업과 관계자는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현실적으로 매몰지 관리를 지자체에서 모두 담당하기 힘들다"며 "농민들도 책임의식을 갖고 철저히 관리하자는 차원에서 공문을 내려 보낸 것이다. (보상금) 차등 지급까진 하고 싶지 않지만 매몰지 관리가 부실하게 진행되면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위탁농가의 생계안정지원금이 줄어든 부분에 대해서는 "이동제한 시기와 축산 규모 등을 고려해 지급하는데, 이런 요소들을 따지다보니 한 번에 지급되지 않거나 금액이 줄어들기도 한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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